공간이 삶의 반경이 되고 자아 정체성이 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원장님, 내일은 여기에 친구 데리고 와서 숙제해도 돼요?"

"그럼!"
"유후! 신난다"
보육원 리모델링 후 변화된 한 아이의 말과 보육원 원장님의 대화이다.
공간이 시설느낌이 아닌 따스하고 포근한 주거공간으로 변화되었을 때, 한 아이가 자신 있게 친구를 보육원에 초대하고 싶었던 것이다. 보육원에 머무른다는 것을 숨기고 싶을 나이일 텐데 자신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은 어린 마음이라도 내가 머무르는 공간이 멋지고 훌륭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리모델링을 담당했던 교수님의 의기양양함이 아직도 떠오른다. 한 아이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그렇게 당당하게 바꾸어주셨기에 나 또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머무르는 공간과 나의 관계. 그리고 그게 사회적 교류로 이어진다는 것은
공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뜻인 걸까?
나는 쉽게 매료되고 말았다.
#1. 공간이 삶의 반경이 되고 자아 정체성이 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공간이 삶의 반경이 되는 사람들은 사실 특정대상이 아닌 우리 모두이다. 하지만 특별히 더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휠체어를 타는 분이나 시각 및 청각의 장애를 가진 분, 유모차를 끄는 경우, 노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장애인, 임산부 노약자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건물 허가 시 반드시 이 취약 계층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편의시설(장애인화장실, 장애인주차, 경사로, 점형 블록 등)을 둔다. 하지만 나는 앞서 말했듯 이 취약계층이 나는 어느 누구를 위한 특정대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아기였고 임산부였으며 곧 노인이 되어가기에 사실 편의시설은 우리 모두를 위한 시설인 것이다.
아침 출근 시간 붐비는 지하역사 안에서 어느 시각 장애인이 지팡이로 천천히 노란 점형 블록을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지하철을 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른 아침 출근 시간 붐비는 시간에 지팡이 하나와 노란 점형 블록 의지하면서 집 밖을 나오기까지 그 시각장애인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을까?
혹시나 넘어지지는 않을까 누군가와 부딪히지는 않을까 바라보는 내가 노심초사하여 안전하게 스크린 도어 열리고 타는 모습까지 지켜본 적이 있다.
공간이란 글 타이틀 제목처럼 누군가의 삶의 반경이다. 만약 그 시각장애인이 점형 블록마저 없었다면 혼자서 지하철을 탈 수 없었을 것이다. 방향과 공간을 안내하는 노란 점형 블록이 있었기에 오늘 그 시각장애인의 하루는 집이 아닌 집 밖일 수 있었다. 그리고 집이 아닌 집 밖에서 혼자 아닌 함께 사회적 교류를 이어나갔을 것이다.
공간이 삶의 반경을 넓혀주기도 하고 장애를 무장애로 탈바꿈시켜주기도 하며 자아정체성을 향상할 수도 있는 심리적 기능도 있다. 지금은 건축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한 때는 유니버설 디자인, 장애인편의시설 매뉴얼 연구자로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
사회에 나와 복지관에서 허가팀장으로 일하며 공간이 장애가 되고 무장애가 되었던 경험,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던 일화와 에피소드를 나누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간에 대해 하나의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길 그리고 공간에 대해 조금 더 배려있는 시선을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