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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워드:시발놈

동기와의 우정 그리고 경쟁

by 찐보아이

공무원끼리의 미묘한 경쟁이 있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

같이 들어온 동료 주무관이 먼저 승진을 하거나 먼저 좋은 곳으로 발령이 나면 좋았던 사이도 조금은 틀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야 9급으로 들어와서 40세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동기와 경쟁하겠냐 싶냐마는 나와 같이 들어온 동기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40세인 나를 의식한 모양이다.


그를 이 글에서 "패스워드:시발놈--> "패시놈""으로 명칭 하여 이야기해 보겠다.

(**패스워드시발놈인 이유는 그의 패스워드에 저 문구가 들어가서 잊히지가 않기 때문이다)


패시놈과 초기에는 엄청 잘 지냈다. 야근이라도 하고 집에 가는 날이면 서로 문자로 "잘 버텨보자. 오늘도 수고했다"며 다음 날 출근을 격려해주기도 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잘 버텨낸 주말에는 치킨쿠폰이나 커피쿠폰도 보내주며 우정을 다지곤 했다.


그랬던 그가 내가 병원 좀 다녀오고 (수술병가) 몸이 좀 안 좋아 좀 쉬고 나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 (패시놈) OO 주무관님, 전산 보니 OO 출장 걸으셨던데 저도 그쪽에 갈 일이 있거든요. 같이 가실래요? 제가 점심 사드릴게요!


패시놈: "네 그러시죠"


추운 겨울, 지역에서 맛있다는 특곰탕 집에 가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평소처럼 넋두리를 하며 일이 힘드네 마네 하고 있었는데 그는 대뜸 나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패시놈: "그렇게 힘드시면 대책을 세우셔야죠. 아이를 잘 맡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시던지 먼 출퇴근 길을 빨리하실 수 있는 차를 사시던지. 일 잘 따라올 수 있게 공부할 시간도 확보하시고요. 주무관님 지금 맡으신 방화구획 공사요~ 그거 볼 거 엄청 많아요. 저도 한참 공부해요. 방화문 회사는 전화해 보셨어요?"


나: (당황) 아직요. 저도 부지런히 따라가야죠. 몸이 안 따라 주네요.


평소에는 그와 식사하면 유쾌하고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동기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고마운 마음과 사회생활의 즐거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불편한 마음만 한가득 들었다.


(쟤, 왜 저러지.. 뭐 잘못 먹었나? 무슨 일이 있었나??)


알고 보니 내가 병원행으로 결근하는 사이 겨울공사의 시작으로 너무 바빠져서 그는 새벽같이 나오고 밤 10~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팀 우리 과 직원들은 그를 좀 '대단하다, 열심히 한다'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 스스로도 조직에서 인정받는 것이 좋은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으스대는 어깨에 뽕이 들어가고 나에게도 동기 아닌 상사의 느낌으로 차가운 조언을 해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그의 눈에 비친 나는 결근 쭉 하고 9시에 출근해 가지고 몸이 안 좋네 마네 하면서 아이 본다고 4시에 단축근무 퇴근을 해버린 후 공사라 어렵네 마네, 일이 힘드네 마네 하니까 한심해 보였던 모양이다.


(세상 억울하다)


패시놈은 아직 미혼인 데다가 31살이고 지몸하나 건사하면 되지만 나는 애 둘에다가 내 몸하나 온전하지 못해서 월경과다 수술하고 공황장애까지 오고 있는데.


이 와중에 지랄 맞은 팀장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몇 달 지나니까 이제 차이가 나. 동기랑. 실력차이. 방화문 공사 (싶애 놈) 주무관에게 다 설명해 놨으니까 전달받아. 그렇게 진행하면 돼"


실력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로 동기를 순식간에 나를 패시놈과 비교해 버렸다.

내가 걔보다 못 따라간 건 사실이지만

그와 나는 상황이 같지 않다..............


나도 잘하고 싶다.

근데 지랄 맞은 팀장의 비교나 31살짜리 패시놈과의 가짢은 우월의식을 신경 쓰기에는 나는 두 살, 일곱 살의 엄마이며 주부이자 40세여서 온전히 일에 올인할 수는 없는 일상이다.


나는 MY WAY로 가야 한다.

패시놈과의 잃어버린 우정이 좀 아쉽고

지랄 맞은 팀장의 팀원비교도 마음은 좀 상하지만

다행히 그런 이유로 나를 자를 수 없는 국가조직에 속한 공무원인 것에 감사하다.


나는 천천히 성장한다.

패시놈이 더 성과가 좋아서 먼저 승진해도 좋고 조직에서 더 인정받아 같이 들어온 나와 비교가 된다 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천히 성장한다.


나는 나만의 사정과 나만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조금 기운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잘살아라 패스워드 시발놈아.


나는 어느 순간에 나대로 빛날 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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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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