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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후일기] 웹툰학원의 등록

나로서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by 찐보아이

드디어 휴직이 실행되었다.

나는 자유다.

몸을 좀 사려야 한다.

경미하게 시작된 공황장애와 월경과다, 그리고 최근에는 부신이 부어있다고 추가검사를 권고받아 대학병원에 가기 위해 소견서를 받아두었다. 내가 공무원이 되어 이렇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공무원 + 육아&살림 + 약간의 잘하려는 내 욕심 + 그리고 40세" 여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사기업에서 육아휴직을 해 본 적이 있고 또 공무원 세계에 들어와 이렇게 "공무원 육아휴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감개무량한데 조금 망가진 몸을 어떻게 회복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 공무원 휴직의 목표는 3가지이다.




1. 첫 번째는 내 몸을 돌 보는 것이다.


2. 두 번째는 육아휴직의 목적에 맞게 아이들을 잘 돌보는 것이다.


3. 세 번째는 공무원 말고 나로서 잘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찾아보는 것이다.




위 세 가지 목표를 잘 설정해 두고 나는 무엇부터 해볼까 생각하다가

일단 병원은 예약해 두었고

아이들은 매일매일 잘 먹이고 입히고 살림하고 있고

그리고 웹툰학원에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웹툰이라기보다는 나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 같아서 웹툰학원에 등록을 했다. 글만 쓰면 재미가 없고 그림이 있어야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웹툰 작가들.

너무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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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치열하고 그림 그리느라 고된 직업이라고 하지만 너무 멋있는 직업 같다.

나는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림을 아주 못 그리는 편도 아니기에 단순한 그림으로 만화를 열심히 그려나간다면 일상의 사소한 기억이나 소소한 정보는 그림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직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이 알게 모르게 내면에 있었다.


그래서 40세에 웹툰학원 상담을 하고 오늘 드디어 첫 수업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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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떨리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책상에 앉아 딱 저 공간을 바라볼 때 너무나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웹툰을 그려나가고 일상의 사소하지만 재미있었던 기억을 만화로 표현해 나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3시간 동안 집안일과 육아와 온갖 잡다한 일들에서 벗어나서 그림에만 집중하고 배워나갈 수 있다는 그 자체에 너무나 설레었다. 좋은 선택을 했다.


어리고 귀여운 여자 웹툰선생님: "그림을 조금 그리셨나 봐요"

나 : "네 건축이 전공이라 건축스케치 정도는 해 보았어요."

어리고 귀여운 여자 웹툰선생님 : "좋네요. 어떤 용도로 웹툰을 배우고 싶으신 거예요?"

나 : "짧은 인스타툰이나 글의 삽화정도를 그려서 책으로 내고 싶어요."

어리고 귀여운 여자 웹툰선생님 : "충분히 잘하실 것 같아요. "

나 : "감사합니다!"

오늘 내가 웹툰학원에서 만난 선생님은 어리고 귀여운 스타일의 여자선생님이셨다. 용기를 주는 선생님이셨다.

어린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선도 배우고 오늘 얼굴형 그리는 것도 배웠다. 친절했다. 밝았다.

선을 알려주는 손이 가늘고 하얗고 어리지만 엄청난 내공이 느껴지는 손짓이 있었다.

나는 항상 마음속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웹툰 작가들처럼 감동을 주고 재미를 주는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근데 그런 세계는 나와는 멀며, 범접할 수 없는 세계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진로라 체념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본 <중증외상센터> 작가가 원작 작가가 의사인 것을 알게 되고

장나라가 나왔던 변호사 관련 드라마 <굿파트너>를 쓴 작가님이 변호사인 것을 알게 되고

또 <내과박원장>을 작가님도 의사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요즘은 멀티의 시대이다.

전업작가만이 스토리를 쓰는 시대가 아니고

의사가 의사이야기를 쓰고, 변호사가 변호사 이야기를 드라마로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시점에서 웹툰 작가가 된다면

건축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40세에 또 다른 진로를 도전해 본다.


지금부터 5년만 웹툰기술 배워도 뭐라도 그려낼 것 같다.


그렇다!

공무원 말고 나답게 잘할 수 있는 것.

나로서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즐거운 것.


더 늦게 전에 해보자.

오늘 그 시작이 나 스스로 너무 멋지고

온몸의 세포가 활짝 웃는 기분이 들었으며

파릇파릇한 새로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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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이렇게 살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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