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나
"엄마 우리 하늘나라에서 만나"
"하늘나라?"
"아니, 아니 꿈나라. 착각했다"
아이들의 왕할머니, 나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왕할머니는 그럼 어디로 가시는 거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나는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설명을 해줬는데, 그날 이후 아이들은 '하늘나라'는 딸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화두가 되었다.
무당은 할머니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이곳저곳을 살피고 이불이랑 테이블을 손으로 더듬었다. 할머니와 똑같은 말투로 “내 사탕 어딨어?” 하니까 할아버지는 흠칫 놀라며 “다른 사람들 줬다”라고 했다 곁눈으로 흘겨보던 할머니(무당)는 가기 싫다, 죽기 싫다며 오열했다. 전화로 이날 상황을 이야기해주던 엄마는 할머니가 준비도 없이 갑자기 죽어서 많이 억울할 거라며 오열했다. 할머니는 정말 무당의 몸을 빌려 이야기한 건가. 정말 억울하고 가기 싫으셨을까?
지난 주말 할아버지와 산책한 후 국수를 드시고 집까지 걸어오실 정도로 정정하셨던 우리 할머니는 며칠 후 거짓말 같이 돌아가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죽을 때가 됐지’ 라거나 ‘내가 빨리 죽어야 너네가 ~~ 하지’와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우리 손녀 대학 가는 건 보고 죽을 수 있을까?’ 하시다가 ‘우리 지윤이 엄마 되는 건 볼 수 있을까?’ 하시다가 ‘우리 증손녀들 학교 가는 건 볼 수 있을까?’ 하셨다.
딱 2년만 있으면 증손녀 학교 가는 거 정말 보실 수 있으셨는데...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죽음을 말씀하시면서도 기력 회복을 위해 때때로 장어를 드셨고 몸이 허하다고 고기와 회를 챙겨드셨다. 미국산 물건이 제일 좋은 것인 줄 아셨던 우리 할머니는 삼촌이 사다 준 ‘미제’ 영양제도 끼니때마다 종류별로 한 움큼씩 빠지지 않고 챙겨드셨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섭섭하게 할 때면 어김없이 ‘내가 죽을 때가 됐다보다’ 하는 추임새와 함께 ‘내가 죽으면 두 번째 서랍 오른쪽에 손을 쑤욱 넣어라. 요롷게 더듬더듬하면 돈뭉치와 통장이 있다 통장 비밀번호는 ****이다’라고 틈틈이 말씀을 하셨다. 엄마는 ‘또 시작이네 엄마가 젤 오래 살 거야’라며 툴툴거렸고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그런 말들은 그저 할머니의 작은 협박성 투정 같아 보였다.
장례를 다 치르고 엄마는 혹시나 하며 할머니의 두 번째 서랍을 열고 손을 더듬더듬했고 구석에서 고무줄에 묶여있는 현금 뭉치를 찾았다. 엄마는 현금으로 지노귀굿을 시작했다. 지노귀굿. 무당이 죽은 사람에 빙의해서 자손이나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게 하는 굿이다. 할머니는 미신이라며 질색하는 자식들 몰래 살아생전 샤머니즘을 곁에 두고 사셨고 엄마한테만 몰래 굿을 부탁해놓은 것이었다. 나에겐 너무나 생소했던 지노귀굿을 검색했다가 ‘사람이 죽으면 일어나는 일’, ‘사후세계’, ‘49제의 의미란’과 같은 콘텐츠를 봤다. 사후세계...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죽음.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영원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겠지.
첫째는 어느 날, 영화 '라이온 킹'을 보고 우리 왕할머니도 무파사처럼 하늘에 있는 별이 되었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둘째는 '하늘나라'가 바로 별 근처에 있는 나라냐고 물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죽음 이후의 세상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다른 건 다 모르겠지만 어떤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언젠가 꼭 다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할머니를 만나서 할머니의 말랑말랑한 팔을 만지면서 할머니의 투박한 장조림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할머니가 허허 웃는 그 얼굴이 너무 그리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쯤 우리 할머니도 그곳에서 할머니의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의 엄마도 만났으면 좋겠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 할머니를 다시 만날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