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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현 Jul 21. 2022

엄마 나 오늘은 몇 살이야?

아이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묻는다. 엄마 나 오늘은 몇 살이야? 4살이 된 지 얼마 안 된 둘째의 요즘 관심사는 나이다. 드디어 3세 아기 시절을 졸업하고 4세 언니의 세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둘째가 만든 기준으로 3세까지는 아가, 4세부터는 언니다. 


다만, 매일 나이가 많아지길 기다리는 둘째에게 가장 안타까운 점은 두 살 많은 언니를 평생 나이로 이길 수는 없다는 점이다. 언니와 싸우고 억울한 일이 생길 때마다 '빨리 언니처럼 나이를 먹게 해 주세요' 간절히 바라는 것 같은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언니가 언니라서 동생이 겪어야 할 억울함은 동생이 아닌 사람은 모를 거다.

함께 그림 그리는 자매. 자신보다 큰 언니의 키를 항상 부러워한다

아이들 또래 관계에서도 나이는 대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안녕 너 몇 살이야?로 시작해서 ‘우리 언니는 9살인데~! 우리 사촌 형은 13살이거든’ 하는 대결까지. 놀이터에 앉아 있다 보면 이 같은 나이 전쟁은 손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나이 논쟁을 보면서 서열화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싶기도 하다.


나도 아이들처럼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는데 나의 시간은 가혹하게도 빨리 간다. 누군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한참 생각하다가 내 나이를 새삼 깨닫고 놀란다. 30대부터 나이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이제 곧 마흔이라니 내가 언제 이렇게 됐지? 시간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는데 36km/h 도 버거운 내가 40이 되고 50이 되면 그 속도감을 어쩌지…. 4km/h로 느린 시간을 뛰놀고 있는 아이들이 괜히 부럽다.  

나이를 한 살 더할 수 있는 생일이 너무 행복한 둘째

생각해보니 나도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했던 시절이 있었다. 입시와 취업으로 앞날이 불안할 때 나의 40대 50대를 상상하곤 했다. 그때 나는 마흔이 되면 세상의 이치를 아는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마흔은 불혹이라고 하지 않나.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 뜻. 그런데 나는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매일 매시간 정신이 없고 귀는 세상 얇아 작은 바람에도 판단력이 거세게 흔들린다.

“아 오십. 오십에도 무슨 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아 그 나이 되면 그냥 동물 아닐까 싶다. 살아있으니까 사는.. 우물우물 여물 먹듯이 먹고 그러는.”

“살아있으니까 산다 싶은. 우물우물 여물 먹는 동물인 오십 인 여자가 말해줄게. 네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는데.. 음...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 마흔은 어떻게 살지? 오십은 살아서 뭐하나.. 죽어야지.. 그랬는데.. 오십? 똑같아. 오십은 그렇게 진짜로 갑자기 와. 난 열세 살 때 잠깐 낮잠 자고 딱! 눈 뜬 것 같아. 니들도 그렇지?”

[나의 해방 일지] 중에서….

특히 우리나라는 나이에 유독 민감한 것 같다.  만나자마자 통성명과 함께 나이를 밝힌다. 언니인지, ~씨 인지가 정해지는 순간이다. 나이로 인해 호칭이 달라지는 문화는 아마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또 나는 29살에 결혼을 했는데 30대 이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거나 '결혼 적정기'라는 사회적 통념이 나에게 압박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면 나이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아이를 낳아야 하는 나이, 또 둘째를 낳아야 하는 나이로 또 여러 번 압박을 받았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느라 시간의 속도가 이렇게 빠르게 느껴지는 건가 싶었다. 


아이를 두 명 키우고 또 40대를 바라보는 지금, 나는 예전 같이 않은 체력을 느끼며 이제야 내 나이를 실감한다. 아이들의 시간이 흘러서 아기에서 언니가 되고 언니에서 어른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늙어가겠지. 가는 세월 막을 수 없고 먹는 나이 멈출 수 없지만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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