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엄마도 허세 하게 한다
“우리 아이는 글을 잘 써요 책도 좋아하고”
엄마가 책 대신 수학, 글쓰기 대신 계산을 잘한다고 했으면 난 수학을 하는 사람으로 자랐을까.
남들 읽는 만큼 책을 읽었을 뿐이고 선생님이 시켜서 한 글쓰기였는데 엄마는 나에게 매번 과한 칭찬을 해줬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 초등학생 시절, 다수의 글쓰기 상을 받았다. 자랑스러워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내가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다수의 글쓰기 대회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책을 사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나도 책을 사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산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었다. 기자가 되려고 언론고시 공부를 하면서 힘들 때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가 글쓰기가 아니라 계산하는 걸 칭찬했으면 지금쯤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 이건 다 엄마 탓이다’
이제 5살, 7살이 된 딸들은 내 칭찬을 먹고 자란다. 우리 첫째는 본인이 영어를 엄~청 잘한다고 생각해서 레드는 ‘뤳’ 브라운은 ‘브롸라우운’으로 혀를 굴리는데 창피하고 귀엽다. 수학은 학습지로 더하기 1만 두 달 넘게 연습했는데 아직도 가끔 어이없는 답을 써서 복창 터지게 만든다. 그래도 맞은 게 더 많기 때문에 본인을 ‘수학박사’라고 한다. 우리 첫째는 못하는 게 없지 수학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얼굴까지 예쁘고! 하면 입가가 씰룩씰룩 어깨엔 힘이 들어간다.
둘째는 이제 5살이 되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지만 5살이라는 것 자체에 허세 등등이다. “인형아 너는 몇 살이니?”라고 말을 걸면 내가 인형에 대고 “나는 3살”이라고 연극을 해준다 그러면 허세가 더 심해져서 “아이고 3살이면 너무 아가네 언니는 5살이야 언니가 밥 먹여줄까?” 한다. 인형이 5살이랑 같거나 많으면 “에게~이렇게 키가 작은데 무슨 5살이야 나랑 키 대볼래? 나 정도는 되어야 5살이지!” 큰소리다. 나는 5살이라는 것 자체만 칭찬해주면 되는데 그러면 5살에 걸맞은 어른스러움을 위해 밥도 더 잘 먹고 양치도 혼자 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들의 허세만큼 나의 허세도 진심이다. 아니 우리 첫째는 레드를 뤳이라고 하더라고? 하며 자랑스럽고 말도 잘 못하던 애가 덧셈을 한다니 그냥 다 기특하다. 마냥 아기 같았던 둘째가 벌써 다섯 살이라니 나 정말 잘 키웠다 허세 뿜 뿜…. 아이들의 허세가 사실은 나의 허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커서 “엄마 칭찬 때문에~”라고 원망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때 당당히 말하겠다. 난 수학도 칭찬하고 글쓰기도 칭찬하고 심지어 나이까지 칭찬했음을. 그 칭찬은 진심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