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인생 첫 돈가스를 만들었다
난 자타공인 똥 손임을 고백한다. 신혼 때 야심 차게 만든 닭볶음탕을 쓰레기통에 그대로 넣어본 적이 있고 미역으로 이유식을 만들었다가 8개월짜리 딸이 깊은 곳에서부터 우웩, 첫 구역질을 경험하게 했다 최근 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더니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대답했다.
요리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귀차니즘이다. 장 봐온 음식을 씻고 손질하고 자르고 끓이는 모든 과정이 나에겐 남들보다 더욱 귀찮게 느껴지나 보다. 먹는 건 잠깐인데 음식을 치우고 뒷정리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니. 결혼 전까지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남이 해준 음식만 먹다가 내가 직접 음식을 하려고 하니, 그간 엄마가 얼마나 귀찮았을지 이제야 알게 됐다. 음식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항상 먹는 것보다 자는 것을 선택하느라 아침 식사는 자연스럽게 넘겼고 먹는 것보다 다른 것이 항상 우선순위에 있었기 때문에 대충 끼니를 때웠다.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맛집을 찾아가 먹으면 그만이었다.
몰랐다. 그런 내가 자식들 먹이는데 집착하는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이 아빠 닮아 밥과 국이 필수인 한식 파일 줄은.
또 몰랐다. 한식당 드문 곳에서 해외살이를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야 할 줄은.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멕시코에서 5년간 살게 됐다. 그리고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게 됐는데, 나에게 가장 큰 위기는 언어도 문화도 아니었다. 도시락이었다. 매일 아침 7시에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는데 매일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 먹이는 것에 집착을 버리는 못하는 내가, 요리 똥 손인 내가, 한국처럼 간편 음식을 구할 수 없는 해외에서, 도시락을 매일 준비해서 보내야 한단다. 청천벽력이다. 개학 며칠 전, 마음을 가다듬고 우선 인터넷에 아이들 도시락을 검색했다. 각종 캐릭터 모양을 닮은 형형 색색의 도시락들이 주주륵 나타났다. 이건 도시락이 아니라 아트다. 점점 더 자신감을 잃어갔다.
"요리가 뭐 별건가, 능력이 아니라 부지런함이야. 그냥 보고 따라 하면 돼"
오랜 시간 동안 내 끼니를 책임졌던 엄마가 용기를 줬다. 첫날 도시락은 주먹밥. 각종 야채로 볶음밥을 만들고 손으로 밥을 굴려 조그맣게 주먹밥을 만들었다. 함께 곁들일 야채를 두고 과일도 예쁘게 잘라 넣었다. 그럴듯한 도시락이 완성되었다. 아이들도 나에게 용기를 주려는 것인지 대부분 먹고 조금만 남겨왔다. 자신감도 조금 생기고,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나는 아침에 조금 더 서둘러 일어나 캐릭터 도시락도 만들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토끼 모양을 만들었더니 뿌듯했다. 맛과 재료는 어제와 같은 야채 볶음밥이었지만...
어느 날 친구네 집에서 돈가스를 먹고 온 딸아이가 나도 돈가스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코로나와 살모넬라 식중독을 겪으면서 외식을 자제하게 되고 또 애들 밥은 먹여야겠고 도시락 아이디어도 떨어진 상황이라 돈가스를 만들어야 할 명분은 확실했다. 귀차니즘을 물리치고 마트에 가서 한가득 장을 봤다.
사실 이 글은 자랑 글이다. 내가 돈가스를 만들었다! 돈가스는 사 먹는 것인 줄이나 알았지 집에서 처음 만들어본 것인데 엄청 맛있다. 현실세계에서 35살의 애 둘 엄마가 이렇게 말하자니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가상세계에서 자랑해봤다. 돼지고기를 사서 병으로 꾹꾹 누르고 밑간을 한 후에 밀가루와 계란물, 빵가루를 묻혀서 곱게 차곡차곡 쌓아 냉동실에 저장해놓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아이들이 엄마 돈가스 맛있다며 입에 쏙쏙 넣는 것을 보니 이래서 요리하는 거구나 싶다.
내친김에 내일은 홈메이드 타코를 만들기 위해 마트에서 토르티야와 재료를 샀다. 다음 주엔 김밥을 말아 줘야지. 끝까지 피하고 싶었던 요리의 세계였는데 아이들 덕분에 이렇게 기분 좋게 입문해버렸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는 것도 이젠 익숙해져서 전날 밤 준비해 놓은 재료로 척척 만든다. 해보니까 별 것 아니다. 종종 아이들을 키우면서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오늘처럼 하기 싫어했던 일을 내가 아닌 타인(가족)을 위해 극복해 나가는 경험을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