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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현 Oct 21. 2022

내가 대신 아팠으면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하여

아주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었다. 몇 달 전부터 숙소를 예약하고 맛집을 알아봤다. 여행은 계획보다 더 즐거웠다. 문제는 마지막 날 밤. 근처 편의점에서 불꽃놀이 용품을 사서 밖으로 나간 그날 일이 생겼다. 화려한 불꽃에 감탄하고 있을 때, 둘째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둘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 보니 아이의 발가락 사이에 타고 있는 불꽃 한 조각이 보였다. 조각을 꺼내려는데 내 손가락이 주춤할 만큼 뜨거웠다. 아이가 들고 있던 불꽃에서 떨어진 조그마한 잿덩이였다. 조각이 끼어있었던 엄지와 검지 사이를 들여다보니, 살이 깊게 파여있었다. 큰일 났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문제의 불꽃놀이.
응급실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달려온 속초 병원.  남편과 나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꾹 참으며 접수를 하고 아이를 꼬옥 안아 진정시켰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조치를 했다. 간호사와 의사에게 불꽃놀이를 하다가 다쳤다는 것을 설명하는 내내 죄책감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바로 서울에 있는 화상전문 병원으로 갔다. 결과는 심재성 2도 화상. 심한 흉터가 생길 수 있고, 가피가 생길 경우 수술이 필요한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피부가 굳어 발가락이 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최악의 말들을 듣고 나선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상처부위를 알코올 솜으로 닦아서 살점들을 정리하는 과정은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상처부위를 닦아내는 치료는 그 이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가서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안 닦을 거야 집에 갈 거야" 라며 울부짖었다. 간호사 두 명이 발버둥 치는 아이의 몸을 내 몸으로 누르고 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발을 잡았다. 나는 아이 옆에서 작은 손을 잡고 의미 없는 부탁을 했다. 선생님 살살해주세요. 내가 대신 아팠으면.


병원에 다니는 동안 다친 발에 붕대를 감고 다녔다. 근처 의료기기 상가에서 붕대 위에 신는 의료용 신발을 사서 신겼다. 가게 몇 군데를 돌아봐도 아이의 작은 발에 맞는 신발이 없어서 조금 큰 신발을 조여서 신였다.한창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의 발에 족쇄를 채운 것 같았다. 다 나 때문에 말이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조금 큰 의료용 신발을 신고 다녔다

아이가 아프면 나는 진심으로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위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제일 가까운 가족인 엄마 아빠, 친한 친구가 아플 때도 진심으로 위로하고 슬펐지만 대신 아프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매번 딸아이들이 아플 때면 열이 나거나 작은 감기, 소화 불량에도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나보다 약하고 작은 존재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경험은 내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나약한 존재를 위한 책임감 때문일까? 나는 내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생을 희생하면서도 더 희생하지 못해 안달이다.


또 아이를 키우고 나서 나는 자주 기도하는 일이 생겼다. 내 의지로 제어가 불가능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갑자기 차 사고가 난다면? 갑자기 나쁜 사람이 나타나 아이에게 해를 가한다면?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세상에서 제일 조심성 없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자부하는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고 조심할 수 있는지 스스로도 놀랐다.


큰 변화는 다른 아이의 아픔을 봤을 때 엄마가 되기 이전보다 더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운이 나빠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남의 아이도 나의 아이같이 느껴져 더 쉽게 감정 이입하고 격하게 화가 난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에게 진심으로 위로하게 된다. 누군가 맘 카페가 가장 무섭다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엄마들의 그런 감정이 한 곳 모아지면 그 어떤 것도 무섭지 않아 지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약자를 향한 공감능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별, 나이, 인종 등 나와 다른 사람을 내집단과 나누어 서로 싸우고 차별하는 이 혐오의 시대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험은 따뜻한 세상으로 가야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한 요즘 저출산 시대에 1가구 1자녀를 장려한다고 하면 모두 나를 혐오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겠지만, 나는 그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이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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