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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현 Nov 22. 2021

나연이는 왜 자꾸 따라해?

약자를 대하는 어린이의 자세

6세 딸아이의 반에 아픈 아이, 나연이(가명)가 전학 왔다. 유아 퇴행 현상을 겪고 있는 아이였다. 나연이는 3살 정도의 정신연령으로 행동뿐 아니라 언어구사력 또한 저하된 상태였다. 문제는 아이가 전학 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에 일어났다. 의사표현에 서툰 나연이가 친구의 옷을 잡아당기다가 작은 다툼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친구의 얼굴을 긁게 된 것이다. 그날 나연이는 손가락으로 우리 딸의 눈 주변도 찔렀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엄마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유치원이 분노 행동이 통제가 안 되는 아이를 받아서 본인의 아이가 손해를 보고 있으니, 당장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 그 요지였다 엄마들이야말로 분노가 통제가 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당시 상황이 담긴 cctv를 돌려본 후, 나연이가 일방적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고, 상처가 날 정도로 긁은 것이 아니라 ‘건드린 수준’이라며 엄마들을 진정시켰다. 엄마들은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면 나연이를 퇴학시킬 것, 그리고 놀이시간에도 선생님이 나연이 옆에서 지도할 것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선생님들의 확답을 받아 든 후에야 사건은 잠잠해졌다.


나는 고민했다. 항의 대열에 합류하자니, 아픈 아이를 둔 나연 엄마의 마음이 짐작되어 선뜻 나설 수 없었고 아이들일에 유난을 부리는 듯한 민망함도 들었다. 그러나 반대로 나연이를 감싸주자니, 내 아이가 정말 눈을 찔려서 다쳤다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주저하게 됐다. 아픈 친구와 함께 있으면 손해를 볼 것 같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엄마들은 나에게도 유치원에 한마디 하라며 부추겼다. 내일은 나도 한마디 해야겠다 아니다 아픈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은 오죽할까 오락가락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 딸아이에게 물었다.


나; “나연이는 어때?”

딸: “나연이는 키가 크지”

나: “심한 장난을 치거나 친구들을 때리지는 않아?”

딸: “그건 **이가 더 심해 저번엔 책상에 올라가서 점프를 하는 거야. 그래서 밑에 있던 친구랑 부딪힐 뻔했어 정말 장난꾸러기지?”

나: “나연이는 말을 잘 못하는 것 같더라. 나연이랑 무슨 얘기해?”

딸: “엄마 나연이는 맨날 내 말을 따라 해. 내가 그래서 처음에는 놀리는 줄 알고 기분이 나빴거든 근데 선생님이 나연이는 일부러 놀리는 게 아니고 아파서 그러는 거래. 그래서 내가 나연이한테는 천천히 얘기하거든~ 놓치지 말고 잘 따라하라구. 난 나연이가 좋구 나연이도 날 좋아해”


딸과의 대화를 마친 후 나는 유치원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나연이와 짝꿍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아니 엄마)가 없으면 우리 아이와 짝꿍을 시켜달라고 말했다. 그날 선생님께 전해 들은 우리 아이는 행동이 서툰 나연이를 위해 실내화를 꺼내 주고 장난감을 양보해주는 아이였다. 더불어 그런 행동이  아이에겐 ‘좋은 일,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나연이는 공격적인 아이가 아니라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였다. 항의를 고민했던 짧은 생각이 딸 아이의 천진함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특수학교 설립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뉴스에서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 유치를 반대하는 학부모들 앞에 무릎을 꿇었던 엄마들을 본 적이 있다.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의 절박함, 그리고 내 아이가 절대 손해 보게 할 수는 없다는 다른 쪽 엄마의 단호함. 그건 누굴 위한 싸움일까.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은 그저 서로 돕고 양보하면서 더불어 신나게 놀면서 별 탈 없이 자라나고 있는데 말이다.


아이들에게 어른들 세상의 편 가르기를 알려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세상은 더욱 따뜻해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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