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 이대로 괜찮은가요?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배우는 말 중에 하나는 "아이 예쁘다~"이다. 아이를 칭찬하거나 아니면 아이에게 누군가를 칭찬해주라고 시킬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우리 아이는 말문이 터지고 나서 '엄마' '아빠', '물'을 배운 후에 4번째로 '아이 예쁘다'를 배웠다. 어눌한 발음으로 "아이~"를 한 옥타브 높였다가 '예뿌..'까지 말하면 우리는 박수를 치면서 잘했다고 좋아했다. 사실 '아이 예쁘다'에서 '예쁘다'는 외모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어른 말을 잘 들었을 때, 친구에게 양보를 했을 때, 밥을 잘 먹을 때, 인사를 잘했을 때 등등 착한 일을 했을 때는 모두 아이 예쁘다는 말로 대체가 가능하다. 왜 그럴까?
요즘에도 나는 아이들에게 습관적으로 예쁘다는 말을 쓴다. '말 예쁘게 해야지'라거나 '예쁘게 인사해봐' 같은 말 등이다. 형용사로도 습관적으로 쓰는데 '예쁜 마음'이나 '예쁜 자세'같은 경우다. 특별히 외모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예쁘다는 표현이 아직 말이 서툰 아이들에게 정말 '예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딸들은 본인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고, 또 예뻐지기 위해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정 부분 나의 말 습관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우리나라는 유독 예쁜 얼굴에 집착한다. 대한민국은 성형수술 강국이고, 세계 곳곳에서 성형관광을 가는 곳이 되었다. TV나 영화, 드라마, 광고 심지어 길거리에도 모두 날씬한 몸매, 매끈한 피부를 가진 여자들이 넘쳐난다. 예쁜 얼굴을 떠올리면 쌍꺼풀 진 큰 눈과 오뚝한 코, 흰 피부, 앵두 같은 입술의 정형화된 얼굴이 떠오른다.'강남미인'이라는 유행어는 모두 성형수술을 통해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아름다움'이 획일화된 정도가 한국은 유독 심한 편이다. 반면 외국의 미의 기준이 약간 다르다. 물론 세계 어느 곳이든 큰 눈과 오뚝한 코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외국에선 조금 더 개성 있는 얼굴, 풍만한 가슴 탄탄한 허벅지와 엉덩이 구릿빛 피부로 매력을 발산한다.
유독 한국에서는 매스컴을 통해 여자는 S자 몸매의 날씬해야만 하는 존재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 뚱뚱함은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희화화하는 소재로 사용되어왔다. 뚱뚱한 여자가 조금만 건드려도 남자가 공중으로 날아가거나, 소개팅에서 뚱뚱한 상대를 만나 뒷걸음치는 식이다. 한평생 한국에서 K-여자로 살아온 내가 물결치는 뱃살과 셀룰라이트를 당당히 드러내고 비키니를 입거나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은 채 활보하는 외국의 여자들을 보고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반면 우리나라 여성의 10명 중 6명은 본인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과체중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농담으로 휴양지에서 한눈에 한국인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자부하곤 하는데, 팔과 다리를 덮는 래시가드를 입고 있거나 비키니 위에 커버업을 잘 갖춰 몸을 가린 사람, 모자를 쓰고 타지 않게 대비를 한 사람을 찾으면 십중팔구 한국인이다.
최근 몇 년간 영국·미국의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보디 포지티브 운동(Body Positive·내 몸 그대로를 사랑하고 가꾸는 운동)이 진행됐고, 이를 발 빠르게 받아들인 광고·마케팅 영역에서 한 차례 붐이 일기도 했다. 보정을 거치지 않은 평범한 몸매의 여성을 모델로 쓰는 기업들은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행인 것은 최근 한국에서도 외모지상주의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소수의 사람들이 여성 인권 향상을 주장하면서 탈코르셋 등 굵직한 여성주의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난 아이들에게 의식적으로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바른 자세, 올바른 말, 씩씩한 태도, 자신 있는 말투, 공손한 표현 등 예쁘다는 말 대신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한다. 작은 변화가 아이들의 생각, 세상의 선입견을 변화시킬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외모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두 딸은 외모보다는 내면을 가꾸고 자신의 개성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