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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현 Oct 20. 2022

엄마는 키도 안 크는데 왜 많이 먹는 거야?

다이어트가 시작했다  

“엄마는 키도 안 크는데 왜 많이 먹는 거야?”


아이는 가끔 순수한 표정으로 뼈 때리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정말 잔인했다.

안 그래도 요즘 체중이 불어서 다이어트를 하려고 생각(만)하는 중이었는데 딸아이의 한마디가 나를 뜨끔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 내가 먹어서 뭐하나 살만 찌지.... 그리고 다이어트를 정말 시작했다.


밥 먹이기 전쟁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시작됐다. 첫째 아이는 평균보다 작게 태어났는데 모유를 워낙 안 먹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분유도 바꿔보고, 다양한 재료로 이유식도 만들어 봤지만 원하는 만큼만 먹고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시기별로 하는 영유아 검진은 내 성적표 같았다. 낮은 성적이 나오면 그날 하루 종일 우울했다. 나는 모범생 기질의 초보 엄마였는데 육아서에 나온 표준량의 식사를 다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떻게든 한 모금이라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아이의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했다.

잘 안 먹는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유치원생이 되어서도 밥 한 숟가락, 반찬 하나 더 먹이겠다고 나는 협박과 회유를 반복했는데 그중 가장 자주 썼던 협박은 "너 이러면 키 안 큰다"였다. 아이도 키가 큰다고 하면 먹기 싫은 반찬도 조금 집어 먹고 배부르다고 하면서도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었기에 효과적인 회유책이었다. '키가 크기 위해서 먹는' 우리 첫째 눈에 키도 크지 않는 어른이면서 잘 먹는 내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괜히 찔린 나는 어른은 키는 크지 않지만,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얼굴도 예뻐지고 건강해지고 또... 라며 장황하게 대답을 했지만 첫째는 알 수 없는 듯한 미소를 보이고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7살이 된 지금, 우리 아이는 다행히 평균 이상의 작지 않은 키와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한식이라면 편식하지 않고 꽤 잘 먹는 편이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이것저것 잘 먹고 좋아하는 둘째를 보면 나의 노력이 첫째의 식습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먹이는 일에 집착하는 걸까? 아마도 먹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의무라도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분유나 이유식을 먹일 때 보단 덜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먹이는 일에 집착하는 편이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표현을 아이를 먹이면서 이해하게 됐다. 아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실제로 배는 고팠지만 너무 뿌듯해서 배가 부를 듯한 포만감이 들었다.

키 안 크는 거지만 뭐든 잘 먹는 둘째. 걱정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큰다

생각해보면 첫째가   먹는 성향의 아이인 것은 나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 엄마는 내가 어릴   숟가락  먹이기 위해서 그릇을 들고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먹는다고    밥상을 치워야 한다는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하지 못한   내가 엄마를 닮았다.  언젠가 첫째도 키가  이상 크지 않게 되는 날이 오고  그럼에도 맛있는  찾아 먹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 네가 7  이런 말을 했다고 말해줘야겠다. 그걸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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