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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현 Jul 13. 2022

뭐? 돼지고기가 돼지로 만든 거라고?!

고기를 거부하는 육식파 아이의 사연

“엄마 돈가스는 뭘로 만들었어?”

“돼지고기로 만들었지”

“그럼 돼지고기는 뭘로 만들었어?”

“……돼지로 만들었지”


아이는 오물오물하던 입을 멈추고 물었다. 돼지? 아기돼지 삼 형제 할 때 그 돼지??



충격을 받았나 보다. 돼지고기가 돼지로 만든 거라는 비밀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걸 몰랐다니 나도 충격) 너무 사실적으로 말해줬나. 돼지가 돼지고기가 될 때 피가 나는지, 닭은 깃털이 있는데 왜 치킨엔 깃털이 없는지, 그럼 대체 살아있는 동물을 누가, 어떻게 고기로 만드는 건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하던 딸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살면서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않던 육식파 첫째 딸은 이제 불쌍한 동물은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연소 채식주의자가 우리 집에서 탄생하는 경이로운 순간인가.

고기는 맛있다

그날 이후 뜬금없이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돼지고기가 돼지로 만든 건지 알고 있었냐고 물어서 할머니를 당황하게 만들고, 돼지야 소야 꼬꼬닭아 미안해하면서 감정을 잡던 우리 . 잘됐다 싶어 나는 그동안 아이가 기피했던 미역줄기 볶음, 브로콜리, 멸치 등을 먹일  있었다. 풀때기 반찬을  딸은 돼지 말고 소시지나 베이컨을 달라고 하고,  말고 너겟,  말고 미트볼 스파게티를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게 다 고기야….


딸아이의 귀여운 투정을 보면서 문득 나도 한때 채식주의자 되겠노라 선언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육식의 반란’을 시작으로, 과도한 육식 섭취를 경고하는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이후 충격을 받은 나. 친구와 함께 비건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고 삼겹살 회식을 거부했던 열정이 있던 20대였다. 그러나 그 시절이 아련한 추억이 될 만큼 비건 선언은 현실 속에서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었다.


비건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역시 내 딸인가. 아이는 지금 돈가스를 더 이상 돼지로 보지 않고 너겟을 닭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돼지니 소니 불쌍한 동물이니 하는 말도 쏙 들어갔다. 동물들이 불쌍하다며? 하고 떠보니까 자꾸 다른 말로 화제를 돌린다. 이게 아마 머리와 위장의 불일치 현장이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생각이 난 김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살펴본다. 육식을 하는 것에 과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잘 알고 먹으면 머리와 위장의 불일치 현상에서 오는 혼란을 조금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닌가 더 혼란스러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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