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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현 Oct 27. 2020

엄마가 ‘엄마야’ 하네?

나도 엄마 있거든?

1호가 두 돌이 좀 지났을 무렵. 바닥에 벗어놓은 기저귀를 밟고 쭈욱 넘어졌다. 나도 모르게 ‘엄마야!’ 소리를 질렀더니 옆에 있던 1호가 빵 터져 깔깔깔 웃는다

엄마가 ‘엄마야!’ 하네?


그게 그렇게 웃겼나. 나도 엄마 있거든?


밤새 회식하고 술을 달려도 다음날 아침 일어나 피자를 흡입하고 출근하는 나는 자타공인 체력은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매일 아침 비몽사몽.  머리가 땅에 닿기만 하면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야근도 회식에도 꿈쩍없던 내가 연년생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이렇게 대책 없이 무너지다니.


비글같은 아이들. 잘 때가 젤 예쁘다

 육아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최고 결합체다. 해가 뜨기 전 일어나 우는 아이를 달래서 분유나 이유식을 준비해 젖병을 물리고 밤새 꽉 찬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 하루 종일 안아주고 달래주고 먹이고 재우는 일을 하다 보면 손목이 너덜너덜. 분유와 기저귀를 졸업해도 마찬가지. 매일 하루 세 번 밥을 만들어 한 숟갈이라고 더 먹이겠다고 안 먹겠다는 아이를 잡고 어르고 달랬다가 화를 냈다가 씨름을 한다. 잠은 또 그냥 자나. 안았다 눕혔다 달랬다 화냈다가. 이 모든 것을 모두 두 번씩. 고작 17개월 차이 나는 연년생 둘을 키우다 보니 동시에 혹은 연속해서 스테레오로 펼친다. 한바탕 저녁을 만들어 전쟁을 치르고 목욕을 마친 후 겨우 잠이 든 아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아, 나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네”


중요한 건, 내일도 내일모레도 그다음 날도 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찬이 부족했던 밥상을, 많이 안아주지 못했던 자신을 한없이 탓하게 된다는 것.


결혼 전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엄마가 되고 몇가지를 멀티로 해결하고 두 아이를 동시에 번쩍 안는 등..강해지고 억세진 내가 가끔은 스스로 놀랍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무장해제되는 날이 있으니, 엄마에서 딸이 되는 순간이다. 엄마만 오면 나는 ‘소화가 안되고 손목이 아프고 아까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얼마나 애 먹었는지’ 등등 괜히 투정하는 어린 아이가 된다. 그러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안아주고 척척 반찬을 만들고 잔소리를 하며 집안을 정리한다. 엄마가 오면 집안의 공기부터 달라진다. 엄마도 돌봐주는 엄마. 역시나 엄마는 강한가보다.


엄마에게 투정 부리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던 1호는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돌봄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곤 약간 충격을 받은 듯하다 “엄마는 어른이잖아? 어른도 엄마가 있다고? 할머니도 엄마가 있고?”재차 물어보더니 신기해한다. 어느날은 엄마가 나에게 ‘다 먹은 음식은 바로바로 치워야 한다’며 잔소리를 한바탕 하고 있는데 나에게 다가와 “엄마 괜찮아, 그럴땐 다른 생각을 하면 돼” 한다. 참나. 내가 잔소리할때 너 딴 생각하고 있었구나?


어린시절 나와 젊은 엄마

언젠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지척에서 돌봐주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라는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한 의미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이후 이 글이 더욱 마음에 깊이 와 닿는 것 같다. 엄마의 엄마. 내가 우리 엄마의 젊음을 먹고 자라는 동안에도 엄마에게 엄마가 필요했던 순간이 있었겠지. 딸들은 모르는 엄마의 세계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나 보다.


너도 곧 알게 되겠지 너에겐 강한 엄마도 사실은 실수투성이란 걸. 사실은 어른에게 엄마가 더 필요하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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