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가 시작했다
“엄마는 키도 안 크는데 왜 많이 먹는 거야?”
아이는 가끔 순수한 표정으로 뼈 때리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정말 잔인했다.
안 그래도 요즘 체중이 불어서 다이어트를 하려고 생각(만)하는 중이었는데 딸아이의 한마디가 나를 뜨끔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 내가 먹어서 뭐하나 살만 찌지.... 그리고 다이어트를 정말 시작했다.
밥 먹이기 전쟁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시작됐다. 첫째 아이는 평균보다 작게 태어났는데 모유를 워낙 안 먹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분유도 바꿔보고, 다양한 재료로 이유식도 만들어 봤지만 원하는 만큼만 먹고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시기별로 하는 영유아 검진은 내 성적표 같았다. 낮은 성적이 나오면 그날 하루 종일 우울했다. 나는 모범생 기질의 초보 엄마였는데 육아서에 나온 표준량의 식사를 다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떻게든 한 모금이라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아이의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했다.
잘 안 먹는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유치원생이 되어서도 밥 한 숟가락, 반찬 하나 더 먹이겠다고 나는 협박과 회유를 반복했는데 그중 가장 자주 썼던 협박은 "너 이러면 키 안 큰다"였다. 아이도 키가 큰다고 하면 먹기 싫은 반찬도 조금 집어 먹고 배부르다고 하면서도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었기에 효과적인 회유책이었다. '키가 크기 위해서 먹는' 우리 첫째 눈에 키도 크지 않는 어른이면서 잘 먹는 내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괜히 찔린 나는 어른은 키는 크지 않지만,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얼굴도 예뻐지고 건강해지고 또... 라며 장황하게 대답을 했지만 첫째는 알 수 없는 듯한 미소를 보이고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7살이 된 지금, 우리 아이는 다행히 평균 이상의 작지 않은 키와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음식을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한식이라면 편식하지 않고 꽤 잘 먹는 편이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이것저것 잘 먹고 좋아하는 둘째를 보면 나의 노력이 첫째의 식습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먹이는 일에 집착하는 걸까? 아마도 먹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의무라도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분유나 이유식을 먹일 때 보단 덜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먹이는 일에 집착하는 편이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표현을 아이를 먹이면서 이해하게 됐다. 아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실제로 배는 고팠지만 너무 뿌듯해서 배가 부를 듯한 포만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첫째가 잘 안 먹는 성향의 아이인 것은 나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한 숟가락 더 먹이기 위해서 그릇을 들고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안 먹는다고 할 때 딱 밥상을 치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하지 못한 건 또 내가 엄마를 닮았다. 언젠가 첫째도 키가 더 이상 크지 않게 되는 날이 오고 또 그럼에도 맛있는 걸 찾아 먹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 네가 7살 때 이런 말을 했다고 말해줘야겠다. 그걸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