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동물을 품고 산다니 너무 귀여운 일이야.
A "나는 강아지인데 언닌 무슨 동물이야?"
B "나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야"
A "아니야 엄마가 누구나 동물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그치 엄마?"
12 간지에대한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어느 날 갑자기 떠올랐는지 '동네 사람 언니'를 동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동네 언니는 원숭이 띠였다. 그 이후에도 둘째는 만나는 사람마다 어떤 동물이냐며 정체를 물었고, 옆에서 부연설명을 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게다가 어른은 개띠가 맞지만 어린이는 강아지 띠라고 우겼다. 어린이는 쥐띠, 소띠, 토끼띠가 아니라 생쥐띠(?), 송아지 띠, 아기 토끼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에 태어나 개띠, 아니 강아지 띠가 된 둘째는 이 사실을 알고 뛸 듯이 기뻐했다. 많은 동물들 중에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가 나의 띠라니. 운명적인 만남에 둘째는 감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째가 가장 아끼는 애착 인형의 이름은 ‘브라운 멍멍이’. 말 그대로 갈색 털의 강아지 인형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조금 더 크면 애완견을 키우게 해달라고 조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둘째 기준 조금 덜 귀여운 동물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곤 했다. 친언니는 2016년에 태어난 원숭이 띠인데 언니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원숭이도 귀여워 그치?" 라며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할머니는 말... 좋아해요?"라고 묻기도 했다. 한번 정해진 동물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둘째는 더욱 강아지 띠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엄마 이건 바로 고기를 굽는 냄새 같은데 맞지? 나는 강아지 띠라서 냄새를 잘 맡아"
삼겹살을 굽고 있는데 부엌을 기웃거리던 둘째가 말했다. 집 안에 진동하는 삼겹살 냄새를 맡으며 나는 마지못해 '역시 강아지는 다르다'라고 맞장구를 쳐줬다. 그리고 강아지의 역할을 다 했다는 뿌듯함을 가지고 그날따라 둘째는 삼겹살을 많이 먹었다.
귀여운 아이와 같이 살다 보니 12 간지조차 귀엽게 느껴진다. 내 주변의 소띠는 정말 소 같고, 호랑이띠는 정말 호랑이처럼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난다. 예부터 한자문화권에서 12가지 동물을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와 십간(十干)을 조합하고 시(時)와 일(日), 달(月), 해(年)에 이름을 붙여 인간과 우주의 조화, 만물의 흐름을 알아보려 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흔히 새벽에 태어난 소띠는 일복이 많고, 오후에 태어난 토끼띠는 꾀가 많다는 등 띠별 동물의 특징과 연결 지어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예상한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띠별 운세, 띠별 궁합이 둘째와 같은 상상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강아지 띠인 둘째가 정말 냄새를 잘 맡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나 동물을 품고 살다니 정말 귀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