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라고요? 그냥 웃지요~

우리는 홀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by 개똥밭

최근 국민의힘 소속 인천 시의원 이단비의 막말 사건은 현대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능력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SNS에서 시민과 논쟁을 벌이며 "넌 학벌도 안 좋지?", "나 변호사인데 너 직업이 뭐야?"라고 비아냥거린 그의 모습은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능력주의의 폭정)에서 경고한 능력주의의 독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학벌과 직업을 무기 삼아 타인을 깎아내리는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성취를 절대화하며 사회적 조건과 운을 무시하는 능력주의적 사고의 전형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 논쟁의 단골 소재는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 같은 '자수성가' 성공 신화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들을 순수한 개인 능력의 결과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를 노동자도, 소비자도 없는 무인도에 떨어뜨려보라. 그곳에서 그들은 위대한 기업가가 아닌 작은 곤충에도 질겁하며 당장 오늘 생존을 걱정하는 무쓸모 도시 샌님일 뿐이다"


이는 필자가 가끔 이를 주제로 누군가와 논쟁을 벌일 때 자주 쓰는 비유입니다. 개인의 성취는 결코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회적 인프라, 교육 시스템, 소비자들의 구매력, 투자자들의 자본,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없다면 어떤 천재도 혁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실제로 잡스는 양부모의 안정적인 중산층 환경에서 성장했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의 부유한 가정 출신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천재성은 분명 부모가 물려준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탁월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성공이 개인적 노력과 사회적 조건의 복합적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능력주의의 문제는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와 민족 단위에서도 나타납니다. 최근 한 교양 영상에서 제기된 흥미로운 질문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기독교와 불교의 기념일을 모두 법정공휴일로 지정한 한국의 상황이 과연 우리 민족만의 유다른 '종교적 관용' 때문일까요?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우연의 산물입니다. 불교는 조선시대 탄압을 받았지만 오랜 세월 우리 무속과 합쳐져 민족 종교에 가까울 정도로 사회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고, 기독교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미군정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상황적 우연의 결과이지, 우리 민족의 특별한 덕성이나 관용 정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고백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2017년 휴스턴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그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저를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지만, 자수성가했다고 하지는 말아달라. 이는 우리가 스스로 성공할 수 있다는 오해를 준다." 20달러와 냄새나는 옷만을 가지고 미국에 온 그도 보디빌더 동료들로부터 이불, 접시, 수저까지 받으며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누구도 혼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그의 메시지는 성공한 자가 갖춰야 할 겸손과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줍니다.


능력주의의 진정한 위험은 성공한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성취를 당연시하게 만들고, 실패한 자들에게는 모든 책임을 떠넘기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사회 전체의 연대와 협력을 훼손하며, 결국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습니다. 이번에 '이단비'라는 사람이 이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회는 개인의 노력과 재능을 인정하되, 그것이 사회적 조건과 운, 그리고 타인의 도움과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깊이 이해합니다. 진정한 성숙함은 자신의 성취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그 성취가 가능했던 조건들에 감사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능력주의의 착각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공정하고 연대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지금 우리나라가 왜 이토록 분열되었는지, 우리 못지않게 분열되어 혼돈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 상황까지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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