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좇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주 4.5일제 도입과 포괄임금제 개선이 중요한 이야기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정책은 우리 사회의 노동 문화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죠. 과연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공정한 임금 체계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해왔을까요?
흥미롭게도 이런 노동 정책의 변화는 세계적인 흐름과도 이어져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노동자층의 지지'(주로 백인 노동자였으나 최근에는 유색인종 노동자도 트럼프의 정책(불법 입국 노동자 추방)을 지지한다고 합니다.)가 언급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엔비디아가 미국 내 공장 건설 과정에서 겪었던 이야기는 현지 노조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엔비디아는 대만보다 거의 3, 40% 이상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생산성이 낮은 미국 노동자들의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숙련된 대만 기술자들을 데려오려고 했지만, 현지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계획을 철회해야 했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 사회의 흥미로운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흔히 '라떼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 사회의 중장년층(물론 필자를 포함해서요)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그들이 패권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 보면 현재 지구촌에서 가장 합리적인 국가 운영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한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미국이 뿌리 내리게 했다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동시에 노조나 노동 운동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그들 또한 과거나 현재 자신의 급여나 근로 조건에 상당한 불만을 가졌던 근로자인데도 말이죠. 이들의 이런 관념 형성에는 아마도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것은 거대 기업 육성이 바탕이 되었고 그 근본은 '시장의 자유'를 철저히 지켜줬기 때문이라는 편견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미국은 굉장한 '노조' 강국이었습다. 길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에릭 호퍼'가 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을 정도로 말입니다.
다른 나라라면 엘리트가 할 일을 여기 미국에서는 하찮은 노동자들이 해 낸다. 이게 미국의 저력의 일부다.
그러니까 이런 편견은 역사적인 맥락을 간과한 채 형성된 인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노동 인권과 급여 수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태일 열사를 시작으로 수많은 노동 운동가들의 희생과 투쟁이 있었기에 지금 이 정도의 수준의 노동자 인권 보호와 최저 임금조차 가능해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모순이 있습니다. 그런 청년들을 교육시킨 것은 바로 그 부모 세대라는 점입니다.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청소한다", "저 아저씨처럼 노동 한다", "저 아저씨처럼 기름 만져야 한다"라며 육체노동을 폄하하는 교육을 해온 세대가, 정작 청년들이 그런 일자리를 기피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는 일 아닐까요?
일각에서는 특히, 중장년들 중에는 "일자리만 있어도 감지덕지해야 한다"며 기업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공동부유'를 외치며 노동으로 국부를 달성하자는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에서조차 폭스콘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을 막지 못했습니다. 폭스콘(중국명 푸스캉)은 대만 홍하이 그룹 계열의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 생산 기업으로, 중국에 주로 공장을 두고 애플 아이폰 등 주요 글로벌 브랜드 제품을 조립해왔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초반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 사건으로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죠. 이는 이윤에만 치중한 기업을 국가가 방치했을 때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배고품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을 해결해 주고 더 나아가 '애국'이라는 세뇌에 가까운 국가의 '선전'조차 '인간 다운 삶'을 추구하는 또 다른 인간의 본성을 막지 못한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미 과거에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어왔습니다.(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바로 그것이죠) 그 잔혹한 과정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채 의식'입니다. 혹시 현재 노동(근로) 환경이 그래도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당신은 과거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부채를 갚기 위해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더 나아가 자녀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노동 환경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합니다.
건강한 노동자가 위대한 기업가를 만듭니다.
요즘 우리나라 MZ세대는 노조가 있는 회사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더 나은 노동 환경에 대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글로벌한 현상이었습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자유 자본주의 첨병 미국은 겉보기와는 달리 한때 노조 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부 분열과 신자유주의 확산(1980년대 레이건 시절), 자동화 등으로 인해 노조가 쇠퇴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조직화, 노동력 부족, 팬데믹 이후 근로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노조가 다시 힘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조직률은 낮지만, 빅테크 등 신산업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조에 이번 미국 대선 때 바이든은 노조와의 공개적 연대, 친노조 정책 내세웠고 노동자 우선 정책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또한 노동자와의 직접 소통, 보호주의와 일자리 보호 메시지 강조, 바이든 정책에 불만 있는 노동자 표심 흡수하는 정책을 동원했습니다. 바로 '불법 이민자 추방'에 따른 자국 노동자 보호가 바로 그런 기조의 일환이었습니다.
이제 막연한 노동 운동과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서, 우리는 보다 성숙한 노동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과거의 희생 위에 서 있는 현재를 인정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AI가 시대의 화두인 요즘 시대에서 혹자는 AI와 로봇을 가리키며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노동자는 필요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구성원 대다수가 노동자(사무직, 개발자, 연구원도 노동자입니다.)인 우리 인간 사회에서 그 위대한 기업가가 만든 물건의 '소비'는 누가 할까요? 그것도 로봇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