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에게 허락을 받았는가?

좌측의 1명은 우측의 10명을 위해 희생해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는가?

by 개똥밭

문득 김훈 작가가 고층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추락하는 노동자들을 "목숨이 낙엽처럼 떨어진다" 표현한 글을 보고 마이클 센델의 정의론에서 보았던 '도덕적 딜레마'라는 단상이 떠올라 오늘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산업재해(30년 경제 활동 중 절절히 체험한)를 '도덕적 딜레마'란 화두를 풀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오랬동안 '산업계에서 일어나는 사고 즉, '산재'를 경제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봤습니다. 1970년대 경제개발 시대의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라"는 정서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온라인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하지만 과연 누구의 허락을 받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일까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런 도덕적 딜레마를 날카롭게 파헤쳤습니다. 그가 제시한 '기차 문제'를 떠올려보죠. 멈출 수 없는 기차가 선로 위 다섯 명을 향해 달려갈 때, 레버를 당겨 한 명만 있는 옆 선로로 방향을 바꿀 것인가? 대부분은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센델은 묻습니다. 그 한 명에게 누가 허락을 받았는가?


이는 현실에서도 반복되는 딜레마입니다. 영화 『언싱커블』은 뉴욕의 핵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고문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극한의 딜레마를 다룹니다.(이 영화 꼭 한번 보세요. 요란한 액션이나 가혹한 폭력 없이도 사람의 심리를 쥐어 틉니다.) 주인공은 테러 용의자는 물론 그의 무고한 아내와 미성년 딸까지 용의자 앞에 끌고와 고문하겠다고 윽박 지릅니다. 심지어 주인공 '사무엘 젝슨'은 그저 '협박'이 아닌 실제 고문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물론 주변에서 용의자 가족에게 까지 행하는 '고문'은 폐륜이라며 말리지만, 그는 "그 알량한 '양심, 도덕율'을 위해 수백만 명의 생명을 포기할 것인가?" 라고 되묻습니다. 이처럼 영화는 치열하게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답을 관객에게 묻습니다.


영화『론 서바이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프간 침투 작전(실화) 중 우연히 마주친 양치기들을 앞에 두고 미군 특수부대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들을 살려두면 탈레반에게 발각될 위험이 커지고, 죽이면 민간인 학살이라는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하니 말이죠. 결국 이들은 도덕률을 선택해 민간인을 살려두었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양치기들이 탈레반에 신고하면서 특수부대원들은 전멸 위기에 몰렸으니까요. 도덕적 이상의 선택이 현실에서 참혹한 결과를 불러온 것입니다.


우리 경제 사회 시스템에서 대표적인 '불가피한 희생'이라는 '산업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발전이라는 '더 큰 선'을 위해 누군가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잡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오늘도 건설 현장에서 추락하는 노동자, 화학공장에서 독성물질에 노출되어 건강을 목숨을 잃는 작업자들에게 누가 "당신이 희생되어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나요? 설사 '동의'를 받았다고 해도 과연 그것이 순수한 자의에 의한 선택일까요?


'불가피한 희생'은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교통사고가 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회적 합의를 봅니다. 만약 '사고(희생)'이 정말 불가피하다면 사고를 최소화 하는 사전 예방조치와 사후 상당한 보상 조치가 뒤따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 정의'의 최소 조건입니다.


이제 그만 '경제 발전'이란 미명 하에 누군가를 제물로 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라면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안전한 곳에서 이들을 관망하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부채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나의 '안락'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부채의식'을 외면 하는 순간, 그리고 이런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정의'라는 단어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겁니다.


우리의 진정한 발전은,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시 하지 않고 대책을 세우고 그 희생에 부채의식을 느끼고 공유하며 모든 구성원이 함께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일굴 때 비로서 이루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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