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nd Mar 09. 2019

감수하시겠습니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018)

영화 속 '제목' 돋보기

 애니메이션은 원체 잘 보지 않는다. 그 앞에 실사 영화가 있었고, 원작 소설이 있는 걸 알았다면 그 편으로 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제목'에 있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사실 제목만 봐도 제목으로 뭔가를 말하려 하는 것 같은 티가 팍팍 난다. '무슨 자신감일까...?' 대놓고 패를 드러내 보이는 건 도박에서도, 작품에서도 좋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수많은 콘텐츠들 사이에 눈이 높아진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 말이다. 


 여주인공인 사쿠라가 명확히 제목에 대한 의미에 관해 직접 말을 해주는 부분이 있었다. 한 마디로 '닮고 싶다'라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덧붙여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죽은 부모나 타인의 신체 일부를 먹는 풍습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망자가 생전에 지녔던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라는 설명을 한다. 


 식상했다. 이미 많이 들어 본 예시이기도 했고, 제목뿐 아니라 대사로도 반복될 정도로 깊은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목'에 기대를 안고 본 영화라 그런지 맥이 빠졌다. 


 물론 내용 자체는 충분히 좋다. '나'의 존재는 곧 '타인'의 존재로부터 오는 것. 그런 점에서 나와 다른 타인의 속성은 그만큼 나의 존재성을 부각해주며, 자신이 가지지 못한 속성과의 결합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것. 이처럼 영화는 어느 누구도 쉽사리 개념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 오묘한 감정들을 구체적으로 와 닿게 전개해 나갔다. 덕분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일주일 간 찝찝했다.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동기인 '제목'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영화에서 묘사된 내용과 교훈과 아주 일맥상통하는 딱 그만큼의 설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정말 그게 전부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그러다 우연히 든 생각. '왜 하필 췌장이지?'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다. '너의 뇌를 먹고 싶어'나 '너의 대장을 먹고 싶어'라고 하면 어감상 이상해서 일수도 있다. 여학생(사쿠라)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남학생(나)의 '강한 췌장'을 먹어버리고 싶다. 의 의미를 함축하는 귀여운 표현일 수도 있다. 근데 남학생(나)은 왜? 굳이?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직접 드러나지 않은 제목이 함축하는 의미를 좀 알 것 같았다.  사쿠라의 췌장은 별로 좋지 않다. 그 때문에 사쿠라는 죽어 간다. 왜 근데, 하필 그런 좋지 않은 췌장을 먹고 싶다고 했을까. 신체를 먹는 풍습은 '장점'을 받기 위해 먹는 것인데 말이다.


 사쿠라와 나(남학생)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녔다. 때문에, 그 성향이 상대에게는 장점이 된다. 그러나 그 자신에게는 단점일 수 있다. 사쿠라의 밝고 외향적인 성향은 내성적이고 친구가 없는 남자에게는 좋은 성격이다. 반면 사쿠라 자신에게는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항상 씩씩해야 하고, 밝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스트레스가 된다. 


 모든 성향이나 특성은 그렇게 양날의 특성을 지닌다. 중요한 건 적재적소, 적용이다. 독은 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량으로 알맞은 경우에 사용할 경우 같은 독이라도 해독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모순된 제목에 대한 답이 아닐까 한다. 사쿠라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성향이 '나'에게는 약초로 쓰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쿠라 역시 마찬가지.      


 사람의 성향은 적절할 수 없다. 이미 성향이라는 말 자체가 중립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경향을 같고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서 '과하다'랄 만큼 특성이 축적된 것을 말한다. 중독이다. 그런 독이 독으로 작용하지 않으려면 다른 성향의 타인에게 나눠주면 된다. 서로에게 독과 해독의 역할을 동시에 가지는 인간들. 식상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관계의 미학은 서로 기대는 모양의 사람(人), 그 자체이지 싶다.


           

이전 08화 장인은 누구인가 (공작 20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