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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Mar 10. 2019

천국의 화두
(노킹온 헤븐스 도어 1997)

영화 속 '장면' 돋보기

 서사가 있는 모든 작품은 기본적으로 맥거핀을 심어 놓는다. 줄거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아도 개연성이 없어도 좋다. 작품을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하면 그만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 독전의 '이 선생'처럼 이런 소재는 거의 모든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녹아 있다.


 영화 '노킹온 헤븐스 도어'를 끝까지 보게 하는 힘은 바로 '바다'다. 목적의식이 아주 뚜렷한 영화다. 초반부터 마지막에 뭐가 나올지를 알고 보는 영화. 그 자신감의 근거가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다.


 조폭이 따라붙고 총질을 해대도 죽는 사람도 피도 나질 않는 영화, 조폭 두목이 주인공을 놓아주는 영화. 보고 있으면 어쩐지 헛웃음이 나왔던 하는 영화. 3분 남짓한 '앤딩 장면'으로 일주일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영화. 


 영화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들을 내세워 그 물음에 답한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루디의 말을 듣고 마틴과 루디는 죽기 전에 바다를 보러 간다. 차를 훔치고 은행을 털기도 하고 인질극을 벌이기도 하며 바다로 향한다. 그 모든 일탈은 악의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천국에서 이야기를 나눌 주제인 바다를 보려는 두 남자의 ‘죽은 뒤의 사활’을 건 아이러니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비칠 뿐.


 영화에서 말하는 ‘바다’는 허무한 인생을 돌아볼 때 역시 허무로 돌아가는 가치인 돈과 명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천국에서는 돈과 명예보다 생전에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을 가졌는지, 열정적으로 빛이 났는지가 중요해진다. 천국의 화두는 그가 이룬 결과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과 그가 보낸 생의 ‘전 과정’이다.


 소멸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삶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에는 당장에 가진 재산이 아니라 추억과 기억 그리고 혼신을 다한 열정에 대한 떳떳한 기억들이 스친다. 주마등에 스치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 어떤 가식과 위선 그리고 스러질 부와 명예가 아닌 순수한 영혼의 외침과 그에 대한 기억들. 주마등으로 스치는 게 자기가 가진 돈, 차, 지위 '따위'인 사람이 있을까.


 마틴이 루디에게 한 말. "천국에서는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어, 그곳에서는 생전에 보았던 바다의 아름다움과 물속으로 빠져들기 전의 햇빛에 대해 말하지.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이는 바다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 이런 바다를 떠올리고 영화를 본 내가 황량하고 우중충한 앤딩 장면의 바다에 잠시 의문을 갖다가 이내 수긍하게 되는 이유다. 


 관객과 주인공 모두가 기다린 ‘바다’는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다. 삶의 전 과정을 응축하는 매개로서의 바다다. 영화에 등장하는 거친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 황량한 바다는 ‘허무’가 아니다. 영화나 그림 같은 일회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다. 순간의 '점'이 아닌 연속적인 '선'  아름다움인 것이다.


 바다는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바다는 지금 이 순간 점으로 존재하지만, 수억 년의 세월이 녹아있고 무수한 것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져 간 결과다. 따라서 그것이 점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 점으로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점의 복합물. 즉 선으로 이뤄져 있다.


 아름다운 바다의 광경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은 천국에서 바다의 아름다움에 관해 실컷 떠들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을 보낸 바다라는 점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바다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여정을 이야기하느라 쉴 새가 없을 것이다. 바다를 보러 가자고 결심한 후부터 아름다운 선을 수도 없이 그어온 것이다.



 천국에서 하게 될 이야기는 바다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바다를 찾아갔던 여정에 관한 것일 테다. 생애 마지막 순간, 그런 기억과 함께 우리는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 천국의 종은 ‘과정으로서의 바다’를 본 자만이 울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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