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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Mar 02. 2019

장인은 누구인가
(공작 2018)

영화 속 '소품' 돋보기

 '롤렉스'

'저런 게 그리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북한 측 요원에게 준 그 시계가 가짜라는 게 밝혀진다. '그럼 그렇지' 나도 모르게 안도하게 됐다. 


 영화를 다 본 뒤 안도하게 된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거의' 절대적인 가치 판단의 도구지만, '아주' 절대적이진 않다는 것. 한낱 짝퉁 시계가 어떻게 '진짜배기'의 아우라를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영화는 '짝퉁 롤락스'의 의미 변천사와 궤를 같이 한다. 짝퉁시계를 그들만의 진짜배기로 장인(匠人)들의 이야기다.    


 장인(匠人)과 설계자는 다르다. 장인은 직접 손을 이용해 실재하는 사물을 파악한다. 그와 같은 호흡으로 물질을 만들어 낸다. 설계자는 다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도면을 그린다. 설계자는 실체를 예상할 수 있어도 실체를 대면하진 못한다. 실체를 대하고 만들어 가는 건 장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흑금성은 장인이다. 그는 전면에서 행동하는 간첩이다. 광고사업을 가장해 북으로 침투, 핵시설을 사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가 받은 명령이다. 뒤에서 명령을 내리는 안기부 요원들은 설계자다. 일의 영향을 상상하지만 실체를 한 발짝 늦게 접한다. 본질적으로 설계자는 사안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일을 그르치기 쉽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안에 있어 설계자가 장인(匠人) 인양 행동하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안기부는 흑금성에게 남북 협력을 위장해 잠입하라고 지시한다. 그 후, 총선과 대선에서 뜻대로 되지 않자, 애초에 설정했던 '남북협력'의 기조를 무너뜨리고, 북한에게 무력도발을 요청한다. 자칫하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분 아니라, 남북관계가 완전히 얼어붙을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일개 부속에 불과한 흑 극성이 불복종하면서 영화는 반전을 맞는다. 기형이 돼버린 현실을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개인이 부품으로써가 아닌, 주체적인 장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김정일을 설득해 무력도발을 무화하고, 예정대로 남북교류 광고사업이 추진된다. 실체를 모르던 조직은 와해되고, 실체를 다뤘던 개인들은 남았다.  


 남측 간첩 흑금성. 그리고 북한 측 리명운이 다져 놓은 교류협력 역시 크게 보면 조직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 면면을 살펴보면, 조직과는 별개로 개인들의 손길이 녹아든 프로젝트다.  남북교류를 빙자한 북한 감시가 조직의 목표였다. 아니다. 사실은 목표 역시 빙자였다. 북한 감시 역시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때문에 기득권을 놓칠 위험에 처하자, 직접 북한에 무력도발을 요청한 것이다. 애초에 조직에게 일관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신념은 없었다.  


 개인이라고 다를 건 없다. 흑 극성과 리처 장 역시 개인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처자식의 안위. 조국의 번영에 따라 말이다. 그러나 직접 제 살을 맞대며 피와 땀을 쏟아부은 프로젝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목숨도 상관하지 않을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도 쌓였다. 무수한 불신을 무릅쓴, 목숨을 건 신뢰다. 

 "이거 롤락스 아닙니까?" 리 처장 쪽 사람이 놀랐다는 듯 말한다. 흑금성은 사업차 마련한 것처럼 진품과 거의 같은 롤렉스 시계를  리처 장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자 놀라서 말하는 것이었다. '진짜 같은 가짜 롤렉스'는 마치 이들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 겉보기엔 남북교류를 위한 프로젝트. 그러나 서로의 진짜 속내를 계속해 의심하는 이들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과정 속에 신뢰와 확신이 생긴다. 뒤에서 설계만 하는 이들이 얻을 수 없는 잘 떨어지지 않는 촘촘한 확신. 영화 초반에 등장한 '롤렉스'는 '뇌물'이라는 아주 보편적이고 상징적인 기호로 작용한다. 이는 설계자였던 흑금성의 상관의 지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 롤렉스는 더 이상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남북교류를 위해 목숨을 걸만큼 일관되었던 그들의 신념, 그리고 그들이 

나눈 관계가 응축되어 있는 물건이다. 흑금성이 보여주는 넥타이핀 역시 이를 상징한다.


 설계자는 무수히 많다. 영화 속 등장하는 기득권 세력일 수도 있고, 자본을 잠식한 경제단체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은 대부분 거대하게 설계된 세계 안에서 순응하며 살아간다. 롤렉스를 보며 경탄한다. 짝퉁이면 욕한다. 값어치가 낮은 선물은 본체만체한다. 정확히 자본주의라는 설계자의 의도대로다. 초반에 등장하는 '롤락스'를 보고고 웃었다. 피식. 자본주의라는 설계자의 의도대로 였다. 후분에 등장하는 '롤렉스'를 보고 웃었다. 이번에는 울컥 이었다. 영화 내내 보았던 그들의 신념과 불씬 속에 쌓인 신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건에 이야기를 담아 오직 단 하나의 물건을 만든 그들. 진정한 장인(匠人)이다.

 

 세상은 사안에 대해 직접 제 살을 맞대고 부딪히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야 한다. 직접 부딪혀보니 이게 났겠다 싶은 대로 나아가야 된다.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과 손을 잡으면 된다. 


 그럴 때 세상은 바뀐다. 장인(匠人)이 만든 물건처럼 굳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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