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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d Mar 02. 2019

존재 투쟁
(박화영 2018)

영화 속 '대사' 돋보기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영화 '박화영'에서 박화영이 또래 친구들에게 수시로 하는 말이다. 그리고는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다. 엄마라는 호칭을 듣는 값으로 화영은 또래 가출 청소년, 불량 학생들에게 집과 밥을 내어준다. 종래에는 살인 누명까지도 뒤집어쓴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영화에서는 해당 대사가 마치 유행어 인양 자주 나온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는 주제에 남이 부탁하지도 않은 일하는 것 가지고 생색은...'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심화된다. 불량 학생의 폭력은 도를 넘고, 박화영은 잘못을 뒤집어쓴다. 그럴 때마다 화영은 대신 맞기도 하고, 죄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 후에는 마치 약속된 멘트 인양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라는 말을 뱉는다. 전처럼 농담같이 하는 말인데도 어쩐지 쥐어짜는 절규로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당연한 말이다. 너무 당연해서 슬픈 말. 나를 향한 카메라를 지붕 위로, 하늘로, 지구 밖으로 끄집어 올렸을 때, 내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인간의 존재성은 그만큼 허무하다. 그러나 동시에 한없이 커지는 때가 있다. 주변 사람과 어떤 특별한 관계를 맺을 때다. 특별한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서로의 존재는 한낱 개인을 넘어선다. 그 자체로 세상, 어쩌면 우주가 된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이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진 않는다. 동시에 은연중에라도 자기 존재 영향력을 믿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영향력을 체험한다. 그런 점에서 유아기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기간은 자식에게도 부모에게도 중요한 시기다. 태어나 처음 만나는 우주 같은 존재. 바로 '엄마'다.


 유약한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동시에 자존감이 올라가는 일이기도 하다. 영아기 때, 세심하게 보살펴주지 않으면 아이는 죽는다. 청소년 시기 때 역시 각종 위험에 쉽게 노출되며 희생양이 되기 쉽다. 때문에 부모는, 특히 엄마는 어떻게 보면 그 의무를 다한 것 자체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는 그렇게 아이에게 '대체할 수 없는', '없었으면 어쩔 뻔 보는' 존재가 된다. 동시에 아이는 아이대로 누군가의 존재 가치를 부각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움을 받는 것이 '역할'이 돼버린 것이다. 


 화영은 남들보다 일찍 '쓸모없음'이라는 잔인한 현실에 마주하게 됐다. 엄마는 더 이상 화영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화영은 존재가치를 잃었다. 그래서일까. 화영은 가출한 또래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를 강조한다.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고. 

 

 화영이 끊임없이 외치는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 이 대사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외치는 자기 존재에 대한 변(辯)이 아닐까. 화영이 또다시 다른 가출 청소년을 집에 데리고 와 '엄마' 노릇을 한다는 결말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해는 된다. 화영에게 '엄마'는 스스로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하는 삶의 동력 이리라. 화영처럼 자기 존재의 필요성을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사람은 없다. 분명한 건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없어도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는 세상에, 적어도 몇 명쯤은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를 바란다.


 박화영이 비단 청소년 영화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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