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nd Mar 01. 2019

실격당한 영웅의 '해피앤딩'
(로건 2017)

영웅의 '상처' 돋보기 

 사람들은 강한 영웅을 원한다. 상처에 아파할 틈 없이 치유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을 도륙하는 그런 영웅. 울버린은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충분했다. 한편 로건은 상처가 금방 치유되지도 않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도 않다. 상처 입고 죽어가는 영웅은 히어로물에 어울리지 않는다. 실격이다.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웅의 상처는 그를 단순한 도륙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최후를 맞이한다는 증표다.     


 로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때려 부수는 여느 히어로물과는 다르다. 로건은 마치 살인면허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영웅’의 실존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영화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외부의 관객에게도 던지는 물음이다. 


 그 물음은 영화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영화를 통해 꽤나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로건의 유전적인 딸 로라는 위협하는 세력들로부터 도망을 가다가 호텔방에서 한 영화를 본다.  그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주인공은 자신을 동경하며 따라다니는 소년에게, ‘사람을 죽이는 것은 평생 따라다닌다.’고 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이는 로건과 로라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을 포위한 무장 세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 로라는 사람을 해친다. 이에 로건은 로라가 사람을 해치자, 함부로 사람을 해치면 안 된다고 나무란다. 이에 로라는 ‘그들은 나쁜 사람이잖아요.’라고 항변한다. 로건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똑같아’라는 말로 답한다.

 

 영화 속 카우보이 역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이 명제는 한 영웅의 심리적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영웅을 찾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로건은 영웅이라는 자존감을 얻지도 못했고, 수많은 살상행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악몽에 시달린다. 정작 수혜를 입은 건 ‘관음’하는 일반 사람들이다. 영웅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아무 거리낌과 불편함 없이 살인을 방관하고 즐긴다.


 그동안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는 처음부터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 지어 놓고, 선은 악을 ‘물리친다.’라는 당연한 줄거리를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영웅은 언제나 선이며, 모두가 인정하는 명분 아래 당연하다는 듯 사람을 죽이고 또 그것을 인정받았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국민의 안녕과 조국의 번영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수없이 세뇌당했을지라도 한 번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인 군인들은 평생 그로 인한 고통에 시달린다. 국가와 단체는 ‘정의’라는 언뜻 절대적이고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수단에 불과한 가치를 통해 영웅이 저지르는 온갖 살인과 부정을 옹호하고 조장한다.  언뜻 자랑스럽고, 행복에 겨워 보이는 영웅의 모습 뒤에는 살인에 시달리고 죽음에 괴로워하는 인간적인 고뇌가 있다. 관객과 사람들은 영웅이 가지는 정당성을 위시하여 폭력과 살상을 안락하게 즐긴다.


 영웅의 정당화는 거의 모든 곳에서 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능력을 전시하고 소모한다. 동시에 타인이 보기를 원하는 가면을 쓰고 전시된다. ‘대단하다’, ‘이런 건 어떻게 알아?’라는 말과 때로는 박수를 받으며 영웅이 된다. 그렇게 약간의 ‘쓸모 감’을 얻고 영혼을 잃어간다. 

 

 로건은 더 이상 인간의 유희를 만족시키는 도구적인 존재로 이용당하는 영웅을 탈피했다. 영화는 쾌락과 남에게 보이는 것 중심으로 이름 붙여진 ‘울버린’이 아니라 한 사람의 ‘로건’으로 조명한다. 영화 로건은 대량 살상을 막고 대량 살상을 하는 영웅의 대서사시가 아니다. 단지 한 명의 아이를 구하고,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눈에 보이는 능력, 누군가에 의해 ‘불려지는’ 이름과 직위에 따라 설정되는 자아는 진짜 자신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울버린’이라고 불렸던 영웅이 약해진 모습은 마치 사회와 인간관계 속에서 닳고 닳은 우리를 닮았다. 타인의 요구와 사회의 기준에 따라 능력을 소모하고,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가면을 쓴 개인의 영혼은 소비된다. 로건은 폭력적인 시선을 벗고 자신으로 자신을 치유하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상처 입을 자유' 

 이 순간을 살아가는 모든 영웅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전 05화 엉덩이는 왜 뜨거운가 (버닝 20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