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 128호
소주잔에 맹물을 따라 마신다. 홀짝. 그리고 크으-. 눈가를 찌그러뜨리며 목을 긁어본다. 맞은편에 앉은 친구의 눈이 동그래진다. 웃음을 터트리는 A. 맹물을 누가 그렇게 마시냐는 질문에 마주 웃어준다. 애초에 술을 맛으로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술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소주병의 개수가 늘어감에 따라 점점 발갛게 달아오르는 친구의 얼굴. 눈에선 힘이 풀려가는 것이 보이고, 술기운을 몰아내려는 깊은 숨소리가 점점 커진다. 꽤나 오랫동안 나누지 못했던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중. 그동안은 항상 함께 취하느라 몰랐었는데, 누군가가 술에 취하는 과정을 맨정신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름 재밌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 꼭 말해줘야지-하는데 A의 헛기침이 들려온다. 그 큼큼거림이 너무 생뚱맞다고 생각할 무렵, A가 질문을 해왔다.
“그래서, 술은 갑자기 왜 못 마시게 된 거냐?”
이제껏 누구한테나 그랬듯, 한약을 먹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려는데, A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흐트러져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자세를 바로 한 채 앉아 있는 A. 발개진 볼은 숨길 수 없었겠지만,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초점이 돌아온 A의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파서 그래, 나 요즘 공황장애 약 먹어.”
“ (…) ”
나도 모르게 말을 하고는 시선을 깔았다. 무슨 반응을 보일까. 가장 친했던 친구까지 떠나보내는 것이 아닐까. 얼굴을 들자니 어떤 시선을 받게 될지 무서웠다. 혹시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진 않을까. 얘가 그런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는 것은 도저히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농담이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 그게 낫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술잔을 채우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리고는 쭈욱. 잔을 남김없이 비운 A가 여지없이 눈가를 찌푸리고, 목을 긁는다. 이어지는 A의 말.
“맹물도 술잔에 따라 마시니까 느낌 있네.”
그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장난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A가 눈에 들어왔다. 괜한 걱정을 했다 싶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이제껏 겪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군인 시절 있었던 자살 사건에서 시작해 빵집에서 해고당한 최근의 일까지. A는 어떤 첨언도 하지 않았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단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주었다. 어른에게 땡깡을 피우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다만 그 어른은 주저앉은 아이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함께 퍼질러 앉아 눈을 마주쳐주었을 뿐.
자리가 끝났다. 아직 할 얘기가 많았지만, 막차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계산하겠다며 아웅대던 것도 잠시. 술은 내가 마셨고 넌 물만 마셨지 않느냐는 A의 말에 더는 우길 수가 없었다. 술집을 나오니 공기가 깨끗하다. 땅바닥이 살짝 젖은 것을 보아하니, 그새 얇은 비가 내린 듯하다. 비가 내렸던 사실도 몰랐다니.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나 보다. 술집에서 나와 거리를 걷다 보니 보이는 지하철역 입구. 개찰구를 통과해 같은 방향의 지하철에 올라탄다. A가 먼저 내리기 전까지 우리는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더 꾸려나갔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와 함께, 약속했던 시간을 마무리했다.
집에 도착해 방으로 돌아오니 꿉꿉한 공기가 느껴진다. 지금의 내 기분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기다. A와의 약속이 잡히기 전, 이 방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방이 이런 느낌이었는지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 꿉꿉함이 나에게서 뿜어 나온 것이어서 그럴지도. 침대에는 이불이 마구 헝클어져 있다. 그 헝클어짐이 괜히 방 분위기를 더 심란하게 만드는 것 같아 정리하고자 마음먹는다. 팡팡-. 깔끔해진 이불 위에 반쯤 몸을 누이니 떠오르는 하루의 잔영들. 온종일 덜컹거리는 버스에 앉아있었을 때는 오늘의 끝이 이럴 줄은 몰랐다. 이렇게나 맑아진 기분으로 잠을 청하게 되다니. 내심 A를 만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린 것 또한. 그러다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A와 만났던 곳은 번화가인데.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를 마음껏 활보했음에도 불안한 낌새가 전혀 없었던 것. 분명 집을 나서기 전만 해도 약속장소가 번화가라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렸었지 않나. 그것 참 신기하다며, 가방에 들어있던 약을 꺼내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불씨가 있어야 산불이 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늘따라 불씨가 약했던 것인지. 거센 바람이 나를 피해간 것인지. 혹은 A라는 존재가 바람으로부터 불씨를 막아준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눈이 떠졌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다. 약 기운이 끝났다는 것을 느끼며 일어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러기엔 눈을 깜박이는 것이 너무 경쾌하다. 저녁 약을 먹고 잠을 청하면, 약 성분이 체내를 빠져나감과 동시에 잠에서 깨게 된다. 남은 피로감이 얼마나 되는 지와는 무관하게 눈이 떠지고, 약이 머릿속의 혈관을 훑고 지나가면서 남긴 찌꺼기들을 치우느라 멍해진 머리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데 오늘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아침이다. 지난 밤, 약을 먹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악몽을 꾸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괴로운 순간들을 되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덕분에 무거웠던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고, 무엇인지는 모를 매듭이 풀린 듯한 느낌이 든다. 기지개를 있는 힘껏 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 소리에 반응하듯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아들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계셨나 보다.
“밥 해 놓았다, 얼른 먹어.”
김치찌개와 흰 쌀밥. 노른자가 설익은 계란 후라이와 김, 그리고 오징어 무침. 언뜻 특별할 것 없는 메뉴다. 하지만 찌개를 한입 먹어보니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아침부터 다시물을 내려 찌개를 끓이셨구나. 뜨거운 불 앞에서 고생하셨을 엄마를 생각하며 괜히 익살을 부린다.
“엄마, 오늘 아침부터 뭐 이렇게 힘을 주셨어요. 아들 적응 안 되게.”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대답.
“이거 점심이야. 너 간만에 깊게 자길래 안 깨웠어.”
나는 그제서야 지금이 오후 1시가 다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을 넘겨서까지 늦잠을 잤다니. 그사이 온 연락은 없을까. 핸드폰의 잠금을 풀자 수많은 메시지가 보인다. A가 나를 어떤 대화방에 초대한 것. 거기에는 못 본 지 오래된 반가운 얼굴들도 여럿 있었다. 대화의 흐름을 보자니, 오늘 또 만나기로 한 모양이다. 이 녀석 간만에 고삐 풀린 듯이 놀려고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간만에 볼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자니 반가웠다. 이른 저녁 약속이라, 점심을 먹고는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어제 A와 나눴던 즐거운 대화들이 떠올랐다. 내 사정을 들어준 A에 대한 고마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져 맞은편의 엄마에게 어제의 일을 이야기한다. 한참을 재잘댔다. 엄마와 나 사이에서 즐거운 분위기가 피어오르고, 서로의 얼굴에 활기가 띤다. 간만에 즐거운 점심.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의 이야기를 푸느라 점심 식사가 늦어졌기 때문일까. 막상 외출 준비를 하려니 움직임이 다급하다. 정신없이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다. 친구들에게 우중충해 보이기는 싫어, 괜히 눈썹도 정리해본다. 엄마에게 인사를 건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딸랑-하는 종소리. 언젠가 나쁜 기운을 몰아내라며 엄마가 현관문에 매단 것들이다. 어제는 제 역할을 해주었으니, 오늘도 잘 부탁한다. 계단을 내려간다. 종소리 자체가 주는 힘보다는, 엄마가 달았다는 사실에 더 의지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읊조리면서.
내가 자리에 합류하기 전, 친구들은 이미 만나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했단다.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어딘가 모르게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자의 사회에서 생활하며 성인의 모습을 배워온 까닭일 것이다. 친구들이 보기에는 나도 그럴까. 고등학생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른다. 안주와 술들. 그때 A가 시선을 보냈다. 언제 말할 생각이냐고 묻는 듯한 눈길. 그 시선을 받으니, 지금이 적시인 것 같아 입을 열었다.
“나는 술 말고 사이다 마실게.”
시선이 집중된다. 의문에 찬 눈동자들. 테이블 가에 앉아 수저를 나누고 있던 친구가 동작을 멈추고는 멍하게 바라본다. 그 눈길이 마치 그럴 거면 왜 왔냐는 책망 같아, 얼른 말을 이었다.
“최근에 한약을 먹고 있어서….”
늘 하던 핑계다.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써먹어도 먹혔던 핑계.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투덜대던 친구들의 아우성이 점차 사그라든다. 몇몇 격하게 반응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A가 중재를 해준 덕분도 있으리라.
술자리가 시작되니 금방 시끌시끌해졌다. 다들 알코올이 조금씩 들어가자, 고등학생 때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치한 말투와 행동들. 그것들을 도구 삼아 풀어나가는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들. 덩달아 나도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 느꼈던 이질감은 온데간데없었다. 꼭 흙 묻은 당근을 씻어 내리면 주홍빛 과채가 나오듯이, 빈 술병이 늘어갈수록 친구들을 둘러싸고 있던 흙먼지가 벗겨지는 것 같다.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 뒤집어쓴 먼지들을 털어내니, 겉 나이만 들었을 뿐. 여지없는 고등학생들의 대화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대화 중간마다 짠-하는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숨 쉴 때마다 알코올 향이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양은 정해져 있다던가. 다음 장소를 찾아 거리를 걷는다. 즐겁다. 오랜 동창들과 안부를 나누는 것도, 주위에서 열심히 나아가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며 동기부여를 받는 것도. 친구들의 각양각색 술버릇을 지켜보는 것 또한. 이런 기분을 그대로 집에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현관문에 달린 종이 더는 필요 없어질 텐데. 하지만 그런 바램은, 멀리서 익숙한 간판을 본 순간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내가 일하던 빵집의 간판이다. 노랗고 산뜻한 직사각형. 누가 보아도 고소한 빵을 팔 것 같은 분위기.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는 왜 이렇게나 두렵게 다가오는지. 사뿐한 구름 위를 통통 튀어가던 내 기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구름 속 구멍에 발을 헛디디곤 수직 낙하했다. 전 직장이라는 인식이 가져다주는 단순한 거북함이 올라오는 것에서 시작해서, 끝내는 당시 있었던 강렬한 발작에까지. 일련의 감정이 치고 올라왔다. 놀람이 불안함, 또 두려움이 되는 과정.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정갈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호흡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난다. 아직은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주위에 친구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들키고 싶지 않다.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나 때문에 망치기 싫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걸음걸이가 늦춰지고, 친구들의 뒤로 들어간다. 진정제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약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가방을 뒤져봐도 나오질 않는다. 그제야 오늘 약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난다. 어제 약속이 끝나고 책장 위에 올려둔 것을 다시 챙기는 것을 깜박했구나. 준비를 급하게 해서 그런가. 혹은 그날 A와의 약속에서 너무 방심해서 그랬나.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심호흡을 한다. 제발 빨리 좀 가라앉아 달라고. 염원을 하며 가슴팍을 두드리고, 떨리는 손을 맞잡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정의 갈피가 잡히려고 하는데, 앞에서 한 무더기의 시선이 느껴진다.
“야, 너 뭐하냐?”
한 친구의 물음. 숨소리가 좀 들렸나 보다. 괜찮던 친구가 갑자기 그러니 놀랄만하지. 어떻게 둘러댈까. 체했다고 할까? 그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연다. 그게 그러니까-.
“아 너 혹시… 공황 왔냐?”
그리고 따라오는 말. 이거 완전히 정신병자였네.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게 무슨 말이지?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경박한 웃음소리가 불규칙한 리듬을 따라 울려 퍼진다. 심장박동이 점차 꼬여간다. 웃음의 박자에 따라 박동하려는 듯, 제자리를 벗어난 심장의 운동에 몸이 덩달아 따라간다. 마구 요동치는 손발.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그리고는 웅웅. 마치 이명처럼 귓가에 맴돈다.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자기들끼리 왁자하게 웃는 친구들. 뭐가 그리 우스워 서로의 몸을 때려가면서까지 웃어대는 걸까.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본다. 쟤들에게는 그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 의문이 풀렸다. A구나. 그래서 저렇게 당황해하는 것일까. A가 나에게 무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귓가는 이미 비웃음의 격한 파동으로 가득 차, 조심스럽게 내뱉는 작은 울림 따위 밀어내버리고 만다. 언제 말한 것일까. 그러려고 나 빼고 먼저 만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 앞이라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를 씹을 때는 A도 저렇게 웃어 댔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디론가 뛰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다는 표현도 이상했다. 어떤 강한 집념에 다른 생각들이 날아가 버린 것이랄까.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것이다. 약을 먹어야 한다. 이렇게 거칠게 뛰고 있는데, 가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너무도 밉다. 어떻게 집으로 가는지도 잘 모르겠다. 가장 안전한 곳을 향해 뛰는 짐승처럼, 그렇게 절박하게 집으로 뛰어간다.
방문을 거세게 밀어 연다. 낡은 미닫이문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약을 찾는다. 긴장한 동공에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 한동안 갈팡질팡한다. 어렵게 집어 든 약통에서 알약을 집어삼킨다. 지금의 쿵쾅거림이 발작으로 이어지기 전에 약효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 기도를 비웃듯이 나는 추락한다. 나를 밑으로 끌어당기는 손길이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목을 붙잡힌다. 곤두박질친다. 나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그 순간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바닥까지 떨어진 후에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말. 바닥이 보이지 않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이 정도면 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비웃듯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떨어진다. 올라갈 엄두는 내지도 말라는 듯. 가장 무서운 것은 떨어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언제까지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
나쁜 생각들이 뿌리 없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떻게든 진정하기 위해 약 한 알을 더 삼킨다.
문득 지금의 내 처지가 너무 서러웠다. 갑자기 들어온 아들의 이상한 몰골에 불안한 눈빛을 보내는 엄마의 부름도 무시한 채. 이렇게 방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꼴이라니. 찌그러진 탁구공. 그게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구석에 버려진 존재. 누군가의 뒤꿈치에 밟혀서는 모퉁이에 방치된 존재. 제자리를 찾아갈 수는 있을까. 잔뜩 찌그러진 채 새까만 먼지만 덮어쓰는 것은 아닐까. 무섭다.
뜨거운 기운이 머리끝으로 모인다. 거칠게 끓어오른 호르몬의 움직임. 약 한 알을 더 삼킨다.
휴대폰은 아까부터 울리는 진동으로 바쁘다. A에게서 전화가 온다. 받지 않는다. 지금 걸려온 전화가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잠시 찾아온 침묵. 휴대폰이 한 번 더 울린다. 깜빡하고 불이 들어온 휴대폰 액정에는 A의 이름이 떠 있다. 이어지는 긴 문장. 그러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다른 친구들이 나를 배려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괜히 상처 주는 행동을 해서 미안하다고? 그래. 애초에 네가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답장을 할 수 없었다. 그때를 떠올리기도 싫었다. 깔깔거리며 웃어대는 친구들.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정신병자. 그래 난 정신병자야.
눈물을 삼킨다. 또 한 알의 약을 삼킨다.
생각이 끊어진다.
머리가 너무 뜨거워.
숨이 쉬어지지 않아.
눈앞이 흐린 건 눈물 때문인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잘 들리지 않아.
몸이 앞으로 빨려 들어간다. 차가운 방바닥이 느껴진다.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몽글한 물체를 통과하는 것 같다. 온몸이 뜨겁다.
…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앰뷸런스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투명한 플라스틱이 입과 코를 덮자, 숨쉬기가 편해졌다. 차가 덜컹거리는 느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눈앞에 비친다. 주황색 옷을 입었네. 곁에 앉은 엄마가 보인다. 손을 통해 엄마의 온기가 느껴진다. 따뜻해.
…
코를 뚫고 들어오는 약 냄새. 눈을 뜨니 주위가 온통 하얗다. 마찬가지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뛰어다닌다. 팔이 약간 아릿하다. 고개를 내리니 투명하고 얇은 관이 팔에 붙어있다. 그 끝에는 물주머니가 있다. 한참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곁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병원이야-. 아 병원이구나. 그래서 이런 답답한 냄새가 나는구나. 각종 약물과 먼지가 뒤섞인 냄새. 뭔가 깨끗하면서도 지저분한 느낌이 물씬 난다. 엄마는 내가 이걸 아픈 사람 냄새라고 했던 걸 기억하까? 엄마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한 의사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어지럽지는 않으세요? 속은 좀 괜찮으신가요?”
“…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종이에 뭔가를 체크한다. 한 번, 두 번. 꺼끌한 종이에 볼펜을 긁는 소리. 묘하게 듣기 좋다.
“비상약으로 가지고 계신 약은 함량이 높아요.”
“ (…) ”
“한 번에 너무 많은 약을 복용하셨네요. 남용에 의한 호흡 곤란이에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다행히 심한 수준은 아니니, 링거 맞으시면서 안정 취하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실려 왔는데, 링거로 또 약을 맞네. 어딘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등에 꽂힌 바늘이 얼마나 굵은지가 궁금했을까, 손을 뻗어 만져보려고 하는데, 내 손이 누군가에게 잡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따뜻한 손. 엄마는 아직까지 내 손을 놓지 못하고 계셨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먹먹한 마음이 솟구쳤다. 그렇게 많이 삼킨 진정제 때문인지, 눈을 뜬 직후까지 극도로 잠잠했던 마음에 비가 찾아왔다. 죄송해요. 라는 이름의 빗방울이 똑- 떨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피곤하지 않으세요.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잠은 좀 주무셨어요. 하고 싶은 말들이 내린다. 빗방울들이 모여 물길이 생겼다. 못난 아들 때문에-. 마지막 방울이 떨어지고, 물길은 흘러 목 끝까지 차올랐다. 거세진 물살에 못 이겨 입을 열려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 (…) ”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곧 넘칠 것 같이 흔들리던 물살은 목을 넘어서까지 수위를 높였고.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변해 흘렀다. 터져 나오는 감정에 휩쓸려 마구 휘청이는 몸. 추하게 꺽꺽댄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흘러나오는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손등을 찬찬히 쓰다듬는다. 귓가에는 늘 그랬듯이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나는 며칠간 병원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좀 쉬고 싶다는 내 생각이 받아들여진 까닭이다. 온종일 멍을 때리는 일과가 몇 번 지나갔다. 그동안 병실을 함께 쓰는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기도 하고, 병원에서 나오는 식단을 외우기도 했다. 아침이면 창가에 날아와 마음대로 노래를 부르는 새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간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투명한 관을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이름 모를 안정제 덕택에 이런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갑자기 겪게 된 감정의 요동 후에 찾아온 소강기인가. 꼭 폭설 끝에 남은 포근한 눈 더미 같다고 생각했다. 평화 속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약간의 긴장감도 그 때문인가. 작은 돌팔매질에도 와르르-하고 일어날 수 있는 눈사태에 대한 걱정이 완벽히 가시지는 않은 듯하다.
엄마는 날마다 얼굴을 비추신다. 평화와는 별개로 다시금 찾아온 악몽에 눈을 뜨면, 항상 곁에 엄마가 계신다. 아침 일찍 오시느라 부족했던 아침잠을 청하시는지, 종종 눈을 붙이고 계시면서도 자리를 지키신다. 그럼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직 그 어떤 것도 물어오지 않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이 일어난다. 내가 준비되기까지 기다려주시는 거겠지. 이제까지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풀이한 준비. 오늘, 나는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짐짓 가볍게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가 깎아주신 사과를 우물거리면서. 이제는 지나간 일이라- 하는 늬앙스가 느껴진다면 다행일 텐데.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읽곤 하시는 분에게 이런 게 통할는지는 미지수. 아니면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 위함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은 A와 다른 친구들을 만난 이야기부터. A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자 나도 모르게 몸이 흠칫 떨린다. 그 낌새에 과일 깎던 눈을 들어 올리는 엄마를 짐짓 못 본 척하며, 이야기를 잇는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공황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그런데도 내가 아픈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것. 빵집 앞을 지날 때 불안했던 것을 들킨 것. 친구들에게 조롱 섞은 웃음을 받은 것. 그리고 정신병자 소리를 들은 것까지.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서 약을 그렇게나 많이 먹어버렸다고.
“엄마, 내가 전에 말했던 찌그러진 탁구공 이야기, 기억나요?”
“응.”
“지금 내가 꼭 그 탁구공 처지가 된 것 같아.”
“ (…) ”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후-. 심호흡을 한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것 같아. 앞으로 내가 뭔가를 시도할 수는 있을까 싶어. 이대로 찌그러진 채 구석에 박혀서는 잊혀 진 존재가 될 것 같아. 먼지만 잔뜩 뒤집어쓴 채. 그러다 내가 잔뜩 일그러졌다는 사실조차 까먹고는, 모든 걸 포기할 것 같아. 그게 무서워.”
“ (…) ”
나 어떡하면 좋을까요-. 뒷말을 삼킨다. 신경질적으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이야기를 잇는 내내 그 손가락을 좇던 시선을 돌린다. 창밖에 햇살이 찾아와 남실댄다.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새가 한 마리 앉아서는 노래를 부른다. 귓가에는 엄마가 과일 깎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예쁘다. 꼭 영화의 한 씬 같아. 영화 이름은 뭘로 하는 것이 좋을까.
“찌그러진 거면….”
한참이나 꼬리를 물던 잡념은, 엄마가 입을 떼면서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깨지지는 않았다는 거네?”
“ (…)! ”
그리고 찾아온 침묵. 혹시 이야기가 더 들려오지 않을까 기다려보지만, 이어지는 것은 사각사각하고 사과 껍질이 벗겨지는 소리뿐이다. 멍해졌다.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뭔가에 뒤통수를 맞았을 때가 이럴까. 진부하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명확한 의미를 품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왜 이제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찌그러졌다는 것에 너무 집중했던 탓일까. 단지 찌그러졌을 뿐, 깨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완전히 깨져 산산이 조각나버린 탁구공은 어쩔 수 없지만, 찌그러진 건 다시 펼 수 있잖아-. 껍질이 벗겨져 뽀얗고 과실이 드러난 사과들이 접시에 속속 자리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사각거리는 소리 속에, 어쩌면 엄마가 정말로 하고 싶었을 말이 뒤따라 들리는 듯하다.
…
그 뒤의 병원 생활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되돌아보더라도, 매일 찾아오곤 했던 새가 어느 날부터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과, 엄마가 깎던 과일이 사과에서 배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몇 통이고 내 몸에 들이 부어지던 링거의 이름도 알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그저 그런 포도당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헉- 헉- 거친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심장은 자신이 한 번에 뿜어내는 혈액의 양이 한정되어있음을 토로하듯 강하게 쿵쾅댄다. 그럼에도 불안하지 않다. 되려 상쾌하다. 내 곁을 따라 흐르는 작은 시냇물의 소리가 그 청량함을 더한다.
나는 지금 달리고 있다. 장딴지가 끊어질 듯이 아프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폐부가 그 면적을 넓혀 갈비뼈를 뚫고 나오려는 듯, 가슴팍에도 통증이 찾아오지만, 불쾌하지 않다. 달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이 고통도 처음 달리러 나온 날의 그것보단 훨씬 나아졌다. 첫날에는 고작 15분 뛴 것으로 하루를 꼬박 누워있지 않았나.
전환점을 돈다. 한 바퀴.
직장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그간 모아놓은 돈이 꽤 있어서 망정이지. 돈 없는 백수의 생활만은 면하게 되었다. 아, 앞의 말을 조금 바꿔야겠네. 직장은 아직 구하지 않았다. 내 속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보다는 훨씬 그 빈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놓여지면 불안한 감정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면 눈을 감고 달리기를 하는 상상을 한다. 나는 뛰고 있다고, 전환점은 벌써 한번 지났다고. 잦아진 호흡에 폐부로 몰려든 공기의 방향을, 머리가 아닌 다리로 돌리는 상상을 한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자면, 놀랍게도 불안함이 상쾌함으로 바뀔 때가 있다. 뭐랄까. 자신에게 거는 최면이랄까. 왜, 억지로 만든 웃음은 가끔 정말로 행복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시 눈앞까지 다가온 전환점. 두 바퀴.
이쯤 되면 달리기를 멈추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어떻게든 넘어가 보려 한다. 이 순간만 넘기면. 미칠 듯이 힘든 지금만 넘기면-. 찌그러진 탁구공을 펴기 위해 끓는 물에 담그듯이, 담금질을 계속한다. 자꾸만 꺼져가려고 하는 심장에 풀무질을 더한다. 풀무질에 힘입어 출발한 혈액이 심장을 벗어나 다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허벅지 근육이 동난 산소에 허덕이더니, 흘러들어온 적혈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그 일련의 과정을 떠올리고 있자면. 언제 머리를 들고 올라올지 모르는 불씨들이 사그라들곤 한다.
그리고 세 바퀴.
마지막 전환점을 지나. 한동안 전력 질주를 한다. 15초가량 이어진 최후의 풀무질이 끝나고는 주저앉는다.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숨을 고른다. 어제는 10초밖에 더 뛰지 못했는데. 아마도 내일은 20초까지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털퍼덕 앉는 것으로는 몸을 달래기 역부족이었는지, 그냥 벌렁 누워버린다. 이 마지막 순간만큼은 주위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렇게나 지쳐 보이는 사람이, 땀으로 온몸을 범벅한 채 누워있는 것은 나름의 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킥킥.
달리기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좋다. 큰일을 하고 돌아가는 기분. 이런 마음이라면 통닭이라도 한 마리 손에 들고 가야 하나. 휴대폰을 본다. 엄마의 메시지가 와 있다. 저녁을 해놓으셨다고 하는데, 그게 또 간만의 김치찌개라니. 통닭은 아무래도 다음으로 미뤄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진동이 울린다.
픽-. 웃음이 난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A의 연락. 한참을 읽고, 또 한참을 읽는다. 그리고 답장을 한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기지개를 쭈욱 편다. 이렇게 하면 이제 막 펴지려고 꿈틀대던 것이 조금은, 그러니까 정말 조금은 더 펴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젖힌 고개 위로 노을이 보인다.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완벽한 석양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아까보다는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에필로그
누군가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물을 바라본다. 정확히는 그 위에 얹어진 하얀 공을 바라본다. 아니, 저걸 공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 이리저리 일그러져서는 더 이상 구체가 아니게 된 것도 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턱을 괴고 그것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기괴한 행태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밑에서 올라오는 기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딱히 재미있지는 않은데.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뜬다. 하지만 누군가는 끈기 있게 기다린다. 얼마나의 시간을 흘렀는지 모르겠다. 물 위의 하얀 물체가 이리저리 꿈틀대더니, 돌연 팡-하는 소리를 낸다. 끓어오르던 물이 사그라든다. 잠잠해진 물 위에 하얀 공이 떠올랐다. 누가 이것을 보고 아까의 흉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는지 싶을 정도의 완벽한 구체. 그 위엔 하얀 선이 한 줄 남았다. 흉터인지, 혹은 엷은 미소일지 모를.
-에필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