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청춘의 방황을 끝냈다
1화. 청춘의 방황 비망록
1985년 봄
24세. 고대 2학년 복학
도대체 총장 왜 안 나타나! 안 되겠다. 박살내자!
군대에서 배운 그대로 복학생 넷은 고대 총장실을 때려부수기 시작한다. 영국 고성을 닮은 본관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우측 총장실. 좌 행정실. 외벽은 큼지막한 화강암 석조 사이로 커다란 창을 내었다. 검은 쇠창틀과 유리. 누군 시가전이라도 치루려는 듯 의자를 높이 처들어 내리치며 우장창창 유리를 죄다 아작낸다. 군 회식 막바지면 집단 광란. 온몸 솟구쳐 내무반 침상아 무너져라 체중을 양발에 실어 쿵쾅 쿵쾅 내리찍는다. 누군 탁자를 침상 삼아 위로 올라타 우지끈 뭉개 버린다. 누군 대검 던지듯 잡다한 문구나 소품을 손에 잡히는대로 날린다. 군대에 납치, 군 3년의 원한과 의문의 죽음을 당한 영혼들의 한을 한꺼번에 총장실에 털어 붓는다.
학생들, 이러면 안 돼요. 제발 말로 합시다 말로.
말로 했잖아요. 여기서 며칠 조용히 총장 기다렸잖아요.
.....
전두환이한테 전화해. 경찰에 신고해. 군대 또 보내면 되잖아. 3년 또 썩으면 되지. 4년전에도 그랬잖아.
제발. 이러면 안 돼요.
총장은 대체 왜 안 나타나는 거요? 지금 교내에 있는 거 알아요. 출장 갔다고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야.
한참을 난동 부리고 나서 흥분 좀 죽이고 쉬고 있는데
총장님과 연락 됐어요. 곧 오신답니다.
언제요?
금방요.
총장실은 소파고 탁자고 의자고 죄다 파손되고 뒤집어져 아수라장. 바닥은 깨진 유리 조각 널부러져 궁둥이 붙일 엄두조차 못 낸다. 옆 행정실로 이동. 총장과 4인 대좌.
학생들, 왜 이러는 거지요?
보고 받지 못 했나요?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직접 듣고 싶어요. 진정하고 차분히 말해 보세요.
ㅡㅡㅡ
3년전
1982년 1월 한겨울
영문학과 1년을 마친 나는 영어 단어를 본격적으로 학습할 목적으로 동아출판사 5만 단어 영한사전 한 권을 산다. 방학이라 귀향했고 시립도서관에서 매일 몇 장씩 외우고 찢고 입으로 잘근잘근 씹고 뱉기를 여남은 날. 막내동생이 나를 찾는다.
형. 이거 봐. 아무래도 이상해서 왔어.
노란 쪽지 한 장. 노트 종이 반만한 크기. 입영통지서. 날자를 보니 일주일 후. 나 휴학 안 했는데? 일주일은 또 뭐고? 맏이라 형이 없어 군대에 군 자도 모르고 입영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놀란 나. 다음날 서울행 열차 타고 고려대 문과대 교학과 방문. 방학 중인데 학생들로 붐빈다. 보니 다 똑같은 노란 종이 한 장씩 지녔다. 다들 휴학한 거 아니라고. 학교에서 휴학 처리한 것을 항의하고 있던 것. 교학과 직원.
어쩔 수 없어요. 우리도 힘 없어요.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도 왜 이러는 지 몰라요.
따졌지만 같은 말 되풀이. 학생들 종합해 보니 문무대에서 교육 거부 데모했다고 전두환 정부가 강제로 징집한 거였다. 교육 거부? 아닌데. 교육 받겠다고 한 건데? 문무대 입소 날. 도착. 단체로 좌로 굴러, 우로 굴러. 교육 받으러 온 건데? 따르지 않으니까 퇴소하란다. 우리 학생이지 땅에 기는 지렁이 아니거든. 벌레 취급 말고 사람 교육 받겠다고 하니 퇴소하란다. 학생 대표 몇 긴급 회의. 그리고 학생 모두 수 백 명이 운동장을 빙빙 돈다. 교육 받게 해달라고. 몇 바퀴 돌고 나니 퇴소 철회. 그리고 일정대로 교육 수료. 문무대가 교육 훈련 거부한 거지 우리는 받겠다고 한 거. 사실 관계부터 정반대.
일개 대학의 교무 행정 직원으로선 힘 없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무슨 조직도 아니고 어디 알아볼 데도 없고, 입대 며칠 전이라 그럴 여유도 없다. 지방 출신 많아 당장 서울서 잘 곳도 마땅치 않아 귀향.
그리고 입대. 육군 병장 제대. 문무대 교육 수료에도 불구하고 법이 보장한 복무 3개월 면제 혜택도 받지 못 한다. 30개월 만기 꼬박 채우고도 특명 최대 늦추어 7일 더 복무한다. 헌법, 법이 있으면 뭐 하나. 대통부터 정권 유지하려고 대놓고 불법, 월권. 하긴 이 정도야 전두환한테는 애들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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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정 잔디밭. 군에 납치 당한 학생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녹화사업이란다. 정권 맘에 안 들면 불법 강제 징집해 괴롭히는 사업. 109명 문무대 사건 당시 학생 총대표는 제적. 나는 대표는 아니나 대책 회의 참가. 내가 운동장 돌자고 제안. 교육 받아야 한다고. 명찰 가리고 군모 푹 눌러쓰자고도. 나는 제적은 면했어도 교육 훈련 중 태도 불량으로 강집 명단에 오른 거. 나는 3학년쯤 군 입대하려고 했는데 강집.
납치된 학생 중 여섯이 군에서 죽었다고. 의문사. 허긴 나도 신병교육대에서 수없이 자살 방법을 찾았다. 내 의지 아닌 강제로 끌려 왔다는 수치심, 매일 훈련 아닌 개만도 못한 벌레 취급. 시도때도 없이 일상이 구타. 저항해 봤자 약자끼리일 뿐이라는 무력감. 혼자 죽는 게 억울해서 뿌리인 전두환이 부대 시찰하면 소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하고 생 마감하려고 했다. 훈련 마치고 자대 배치 이등병. 자발적 부적응자. 병장 넷이 군화발로 차고 넘어뜨려 짓밟는 구타로 부상. 최전방에서 원주후송병원, 대전통합병원까지 후송.두 달 병원 신세. 대전 병원 군의관에게 불려가 문 걸어 잠그고 구타 당하고. 정치범도 아니고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이런 치욕을 주나. 죄라면 문무대 운동장 몇 바퀴 돌고 교육 태도 불량이 전부인데 그게 법에 없는 징집 사유. 이런 치욕과 굴욕을 안기려고 나를 강제로 군에 잡아 넣은 거. 납치를 못 버틴 청춘 여섯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사고사거나.
모인 학생들은 사망 소식을 듣고는 다들 살아서 돌아온 죄책감을 떠안는다. 이건 아니다,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지금도 피랍 후배들 복무중이고 곧 줄줄이 복학할 터인데 그전에 선배로서 대책을 세워야. 전례로 남겨야. 해서 공론을 모은다. 원칙. 정권의 불법, 월권은 정치 영역. 정치에 뜻 가진 학생들 몫임은 뻔해서 따로 협의할 필요가 없었다. 대학내 문제에 집중. 대학 측이 군사 정권이 시키는대로 학생들 뜻에 반하여 강제 휴학 처리한 것, 대학과 정권이 합작해 납치한 셈. 이에 대한 책임 및 피해 배상은 대학에 요구하기로. 그리고 대표 넷 선발. 그중 하나가 나.
1.문무대 109인 강제 징집 사건이라 칭한다.
2.대학에 요구
2-1.강제 징집 학생 중 군에서 사망한 학생들 위령비를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에 세운다.
2-2.강제 징집 학생 전원에게 복학부터 졸업까지 전액 장학금으로 피해 배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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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인 사건 대표 넷이 총장 면담 요청했지만 피하다가 총장실 개박살 내며 전두환에게 잡아가라고 연락하라고 하니 그제서야 총장이 나타난 거. 총장은 위령비만은 곤란하다고. 안기부, 경찰이 제 집 드나들 듯 교내에 상주하던 시기. 국민을 향해 총질이 현실인 시절. 위령비 자체가 반체제를 뜻하기에 난항. 109인이 모금하고 몇이 나서서 학생회관 앞에 비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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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창이나 대학 측이 그때 경찰에 신고했다면 즉각 감방행 징역 살았을 거.
원치 않는 정치인으로서 삶을 살았을 거.
강제 징집에다가 징역까지. 훈장 둘이나 달았겠다, 정치 찬밥 강원도에서 도지사나 국회의원쯤은 너끈히 하고 있을 거.
군 제대 6개월 전에 진로 결정했다. 2학년으로 복학. 3년의 시간이면 뭘 준비해도 가능한 기간.
정치는 보복 정치 싫어서 일순위 탈락.
당시 인기 탑 3직종. 판검사. 평생 범죄자 상대해야. 아니다. 기자. 잘 나가는 정치부 기자. 난장판 국회서 의원 쫒으며 한 말씀이라도 마이크 대는 게 일, 사회부 기자는 흉악 범죄 전담. 아니다. 기자 될 바에야 정치인 하지. PD. 예쁜 연예인 보는 건 좋은데 시사, 오락, 교양 프로 만들기. 이거는 곁다리 긁기. 주연 아니다. 셋 다 제하고 나니 남는 건 대기업뿐. 그래, 평범하게 살자. 나 노력한 만큼 대우 받는. 대기업 입사해서 사장 되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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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사업ㆍ강제 징집
강제 징집만으로 끝 아니다. 군 보안대의 특별 감시와 통제, 굴욕과 차별로 불이익 강제. 군 입대부터 제대하는 그날까지 내내. 궁금하면 녹화사업, 강제 징집 검색하시라.
나는 소위 불온 서적 한 권 안 읽고, 정치 활동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총장실 박살 사건 이후에도 정치에 뜻이 없었기에 대학 생활은 사회 진출 준비에 충실.
전두환은 이후 법의 처벌 받아 감방 간다.
[독재 구분법 40년전]
칼을 들어야만 살인 아니고
눈에 보여야만 악인 아니다.
독재는 법을 지키지 않는다.
독재는 무고한 청년을 자살로 내몬다.
독재는 평범한 시민을 반독재로 키운다.
독재는 가깝고 독재자는 멀다.
세상 위험한 정신병 환자가 독재자다.
의학적으로 자신이나 주변인을 위험하게 하면 정신질환이다. 아님 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