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그녀 방 노크가 부른 참사
4화. 청춘의 방황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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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이다. 야설 아니다. 네 번이나 변한 강산에 기억 껄끄러운 청춘의 방황마저 추억이 되었다. 자유인. 나 아니면 누가 이런 거까지 기록할까 싶어서 일삼아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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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후
1984년 7월
그녀는 한옥을 닮았다. 대로변으로 방 둘인 자그마한 약식 한옥. 기차역에서 100여 미터로 주택으로는 가장 가깝고 대로변이라 눈에 띄었다. 그녀는 단칸방 하나를 월세로 얻었다. 역과 그녀 집 사이에서 도로를 접한 것들은 모두 점포다. 구역 중 역에서 가장 멀리 이 가옥만 유독 점포가 아니었다. 점포는 하나같이 도로쪽이 정면인 것과 다르게, 한옥은 끝단이라 남향을 바라고 사선으로 틀었다. 정면이 속이 훤한 유리 아니어서 대문을 나무로 짰고 하늘색 페인트 칠한 지 얼마지 않았다. 이사 온 이후 그녀는 대문 빗장을 일부러 걸지 않았다. 하시라도 열 수 있도록. 발걸음으로 다져진 흙 마당을 대여섯 걸음이면 그녀 방. 주변이 스레트 일색인데 비하여 기와 지붕에 처마. 그 아래로 한지 곱게 바른 방문은 외로움을 웅변하듯 외짝. 손가락 걸어 오른쪽으로 밀면 스르륵 미끌어지듯이 열리는 미닫이다. 한 자 반 폭의 툇마루가 무릎 높이로 치마자락을 펼치듯 방 밑단에 찰딱 붙었다. 한옥은 구색으로 갖춘 마당에서도 한눈에 담을 정도로 아담하고, 방문은 흰색이라 청순하면서도 소복인 양 가련하다. 스무살 그녀는 님 수이 찾아오시라고 어려운 형편에도 대로변으로 고즈넉한 개량 한옥을 선택한 것이었다. 23세. 나는 겨울을 세 번 나야 하는 군 복무를 끝냈다. 마침내 내 고향 원주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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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노피곰 도드샤
어그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데를 드듸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뇨코시리
어긔야 내 가뇬 듸 점가룔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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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의 들뜬 마음으로 님 보러 그녀 집을 찾는다. 그날 한낮의 태양은 자유를 되찾은 청춘만큼이나 뜨거웠고 유난히 밝았다. 온전히 투명한 공기를 배경으로 세상은 총천연색을 한껏 뽐냈다. 하늘 빛 대문까지는 그랬다. 툇마루 아래로 블랙 남자 구두와 그녀 단화가 나란히. 나 아닌 남자를 방에 들인 거. 순간 구두의 블랙이 온세상을 흑빛으로 물들인다. 마음뿐 아니라 갑작스런 암흑은 시력마저 앗아간다. 초점 사라진 눈에 덩달아 중심을 잃은 몸 휘청. 얼마 지나 익숙해진 칠흑이 토해낸 흐릿한 빛으로 혼미한 영혼을 추스려본다. 성깔이야 경양강 산속에서 맨주먹으로 호랑이 때려잡은 무송 못지 않다. 불행 중 다행히 기나긴 군 3년은 독한 인내를 내게 선물했다. 툇마루 디디고 방문 걷어 차고 난입해본들 벌거벗은 여와 남 몸뚱아리. 돌아설까 방문을 두드릴까. 발자국 소리 들릴새라 바닥에 흙을 조심 조심 즈려 밟고 서성이기를 한참. 두드릴까 돌아설까. 대문 밖을 나섰다가 들어왔다가 은하수 줄담배 물기를 다시 몇 대. 망설임과 망설임과 망설임이 먹먹한 가슴을 꾸역꾸역 메운다. 임계를 넘어선 망설임은 끝내 용암 튀듯 손에서 터져버린다
똑. 똑. 똑
죄라도 지은 듯 들릴 듯 말 듯 방문 노크. 제아무리 그래봤자 쿵쾅 쿵쾅 날뛰는 심장의 박동은 세 번의 노크와 공명하여 내 귀로는 천둥 소리. 응답을 기다림은 또 얼마나 길며 서러운지 지금이라도 당장 대문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다. 이윽고 열리는 방문 사이로 배만 덮은 이불과 발 둘. 남자.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다급히 내 손을 잡아 끌고 마당에 내려와 맨발로 내 앞에 마주선다
왜 왔어. 남자 신발 보이면 그냥 가라고 했잖아. 빨리 가
목젖 울림 없는 숨소리만으로 속삭인다. 제아무리 그래봤자 나라는 존재를 방안의 남자가 알면 안 된다는 것을 사자의 울음으로 나를 나무랐던 것. 대한의 남아로 태어나 이런 치욕은 결코 없었다. 모든 건 태양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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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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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삐용
나는 빠삐용을 닮았다. 밀림에서 작업하는 영화 장면 봤을 거야. 악어 잡는 그 부분. 거기서 죄수들이 노역하잖아. 최전방 철책 GOP에서 군복무가 아주 흡사해. 자유의 열망, 탈출 불가, 노역 일상. 다른 점. 영화 평지 대 현실 산꼭대기, 여름과 한겨울 체감 온도 영하 30도, 악어 두 마리와 멧돼지 떼로. 죄수들이 그렇듯 군 생활 또한 단조롭지. 우선 경계 근무. 북과 남을 가로막은 수직 철망. 철망 위로 둥글게 만 가시 돋친 철조망. 그 아래로 소롯길과 10여 개 초소. 밤이면 병사 2인 1조로 초소 투입. 격발기 하나 소지, 수류탄은 가슴에 걸고, 실탄 각 200발씩 허리에 찬 탄입대에 넣고 소총 들고. 초소 도착. 전방으로 폭풍과 파편을 쏟아내는 크레모아가 철조망에 걸려 있어. 거기서 나온 선에다 누르면 폭발하는 격발기 연결. 소총 두 정은 총구를 북으로 향하여 거치. 초소는 흙 잔뜩 움켜쥔 잔디를 네모지게 삽으로 떠서 배꼽 높이로 켠켠이 쌓았어. 북향으로 앞과 양 옆은 막고 뒤는 튼 ㄷ자. 더도 덜도 아닌 초병 둘이 들어서면 딱인 공간. 그 자리서 날마다 밤마다 꼬박 6시간을 북만 바라보길 일 년. 밤 2교대. 경계 마치면 막사로 돌아와 단잠. 낮으로는 주간 경계 초소. 밝은 낮이라 초소 둘 뿐. 시야 확보하려면 높아야 하기에 계단이 있고 비 피하게 지붕까지 설치한 목조. 주간엔 어쩌다 이 초소로 투입되면 행운. 지긋지긋한 작업 열외라서
주간은 작업. 장마면 가파른 언덕의 소롯길부터 초소 죄다 어디건 흙이라 빗물에 쓸어내리지. 여름 내내 보수. 철망은 사각 구멍에 끼운 돌과 실 같이 가는 전선 설치. 돌. 간첩이 침투할 때 철망 건드리면 바닥에 떨어지도록. 철망을 철가위로 썩둑 끊으면 선도 함께 물려서 끊어지도록. 그러면 막사 안 상황실에서 불빛 번쩍번쩍. 군 복무 내내 간첩은 없고, 애먼 멧돼지, 노루, 오소리가 철망에 부딪거나 선 씹거나. 이걸 사시사철 매일 점검하고 보수하고. 겨울이면 눈 치우기는 기본. 난로에 땔 화목 구하러 일이 키로 산 타서 톱으로 영차영차 참나무 베고 등짐져 나르고 토막내 쌓고. 봄이면 겨우내 찬 공동 변소 똥 퍼내고. 이등병 쫄따구 때 놀랐던 건 군인은 똥도 군복과 같은 국방색이라는 거 그때 알았어. 굶으면 죽으니까 사시사철 쌀, 부식 보급 받으러 산 아래 계곡까지 미끄럼 타듯이 내려가야 해. 트럭에서 쌀 포대, 부식 박스를 내리고, 등짐, 어깨 짐 져 올리고. 경사가 급하고 맨땅이라 반에 반 걸음씩. 소대 막내가 키가 젤 작아서 녀석은 쌀 포대를 멘 건지 깔려서 기는 건지 볼 때마다 애처로왔지만 도와줄 순 없었어. 각자 포대 하나고 둘은 시골서 농사짓다 군에 온 자도 감당 못 할 무게와 부피거든. 계곡에 펌프 고장은 왜 이리 잦고 수리는 또 왜 이리 늦는 지. 후방서 기술병이 오려면 계절 하나는 나야 해. 있으나 마나 계곡서 물 길어다 식수, 생활용수. 목욕은 한 기억이 없으니 못 했던 거. 한 컵의 물로 세수하고 양치했으니 말 다 했지 뭐. 여하튼 남자 40명 산꼭대기에 갇혀 사는데 무슨 할 일이 매일 그리 많은지 신기할 따름
경계든 노역이든 힘은 들어도 나라 지키는 거고 청춘이라서 할 만해. 문제는 본능. 청춘이라 더욱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거.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거. 남성의 성. 내가 지킨 GOP 철책은 민통선 즉 민간인 통제선을 통과해 북으로 수 키로 산꼭대기야. 강원도 산. 산 넘어 산, 산 옆에 산. 자연의 평지라곤 산 사이 실계곡 잠깐. 그러니까 일단 철책에 투입 되면 일 년은 첩첩산중 하나의 산에 갇히는 거. 산 꼭대기 감옥. 빠삐용이 마지막에 외딴섬에 갇히잖아. 거긴 타고 갈 파도라도 있지. 여긴 산이 파도. 산이란 게 숲에 들어가면 방향을 몰라. 혹시 평지면 어김없이 미확인 지뢰 지대거나 지뢰지대 푯말이 걸렸어. 육이오전쟁 때 지뢰가 여즉 뻥 뻥 터져. 멧돼지나 노루가 밟아서. 계곡 사이로 편한 길이 있기는 한데 보급로. 거기로 내려서면 나 잡아가슈 자수하는 거. 그래서 최전방 철책에서 탈영은 없어. 대신 월북. 남쪽으로는 불가능하니까 북으로. 이삼백 미터 눈앞에 훤히 보이니까. 내리막, 평지, 오르막 한 번 뿐. 대신 양쪽 다 지뢰 지대 통과하고 사살 위험. 목숨 걸어야. 그러니까 아주 아주 어쩌다. 일 년 지나 부대가 교대해 후방으로 철수한들 역시 민통선 안쪽. 그 선을 남으로 넘는 건 년에 한 번 휴가와 격년 100키로 행군. 그 외는 복무 3년 민간인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어. 소대 엄마격인 선임하사는 젖 뗀 강아지를 산으로 데리고 오지. 복날이나 철수하고 잡아 먹으려고. 반 년이면 다 크잖아. 짬밥 찌꺼기 걷어 먹이면 부쩍 자라. 한 덩치 하는 세파트 잡종 수컷. 암컷 본 적도 없는 녀석이 쓰다듬으면 냅다 달려들어. 앞 두발로 허벅지를 싸안아 몸을 세우고는 응차응차. 애써봤자 허공. 그걸 처음 봤을 때는 기분 참 더러웠어. 내가 개보다 나은 게 뭐야. 밤낮 가리지 않고 구타. 개는 두들겨맞지는 않잖아. 개만도 못한 내 신세. 응응할 때 병사 하나가 손으로 잡아주더라고. 누구도 말리지 않은 건 그런 공감대. 그래서일 거야. 한 번 사고가 나면 극단으로 치닫지. 살인적인 구타와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학대 견디지 못 해 소총 바닥에 세우고 자기 입에 총구 물고 방아쇠 당기거나, 막사 안에 처들어가서 가학한 놈 향해서 드르륵 총알 날리거나. 주위에 애먼 병사들도 황천길. 잦지는 않아도 잊을 만하면 터져. 막사 왼쪽 부대는 신참 이등병이 철책 넘어 월북. 급히 쫓다가 지뢰 밟아 장교 셋인가 즉사. 우리 소초 위생병이 살점 누더기 수습하고 와서는 구역질로 삼 일 밥을 못 먹더라는. 소나무에 걸린 살점, 여기저기 나뒹구는 팔, 다리를 실로 꿰어 사람 형체로 만들었다고. 오른쪽 부대는 막사가 멀리 보였어. 거기 내무반서 총기 난사, 수류탄 투척. 제대 앞둔 말년 병장 포함 다섯 사망했다고. 무장간첩 아닌 소대 쫄따구들이 벌린 거. 고참이든 누구든 사랑하든 않든 여자가 곁에 있다면, 여자와 말 아니 전화라도 나눈다면 이런 참극은 없지. 엔진 오일 한 방울 없이 똑같은 동작 한없이 반복하는 40여 개 피스톤. 그게 최전방 철책 소대. 안 터지는 게 기적이지
IC, 제목에 낚였네. 무섭다. 군 이제 그만하자. 똑똑똑 그녀 방에 노크가 참사를 불렀다며? 첨엔 들을 만하더만. 그거 들으려고 여태 기다리고 있거든
R아써. 그만한 이유가 있어. 그만큼 절실하다는 거. 탈출구가
본 줄기로 돌아와서. 거북아 거북아까지 했어
● 총각
복무 일 년 지나면 휴가 15일. 민통선 통과하면 산 사이로 논, 그다음 군인 상대로 상점들, 군인 가족 민가. 제법 번화하나 일 년만에 하산한 군인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국방색만 보다가 색상 치마 두른 여자 마주치면 심장 두근 아랫도리 불끈. 도덕관, 인성 이런 거 따지기 전에 몸부터 반응하는 거. 나 20대초. 무쇠도 녹이는 청춘 아닌가
말년 휴가였다. 복무 중 휴가 세 번 다 15일씩. 그중 마지막. 두 번 휴가가 그랬듯이 집에 도착하고 이틀 푹 쉰다. 삼 일째부터 일주일 집안일. 집 수리하고 대청소하고. 이거 여기서 다 풀 필요는 없고 여튼 그랬다고만 알자. 남은 6일. 드디어 때가 왔다. 기차역을 향했고 문화극장을 지난다. 여기서부터다. 남성 전문 상가
총각, 잠깐 쉬었다 가
유혹의 첫 마디는 늘 같다. 여덟 자. '총각'이라 부르는 건 너 결혼 안 했으니 괜찮아. 더구나 머리 짧으니 군인. 여긴 군사 도시. 살갑다. 셀 수 없는 나날의 경륜에서 우러난 호칭. '잠깐'. 본격적으로 공략. 잠깐이야, 잠깐이거든, 잠깐 그럴 수도 있잖아. '쉬었다'. 그냥 쉬는 거야. 별일 아니야. 너 휴가잖아. 휴가는 쉬는 거잖아. 넌 쉴 자격 있고도 남아. 이쯤이면 반 무장 해제. '가'. 돌아가는 거야. 부대로 가야 하잖아. 지금 아니면 기회 없어. 단 한 자가 단검 되어 심장을 후빈다. 완전 무방비. 반말은 자연스럽고 친근하며 자신감. 총각이란 말 자체가 누님 이상급 여자가 결혼 안 한 남자를 호칭. 존대면 오히려 거리를 두는 느낌. '총각, 잠깐 쉬었다 가' 한 줄은 지상 최고의 광고 카피다. 어둠의 세계이기에 드러내지 못 할 뿐. 이를테면 최진실의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예요 급. '쉬었다'는 '놀다'로 대체하기도. 좀 놀아 본 자로 보이면. 총각 놀다 가. 단도직입
이뿐인가
그 말과 동시에 완력과 탄력. 양팔로 한 팔을 말아서 꼭 껴안는다. 잡아끈다. 인도에 난 골목으로 끌고 간다. 군에서 첫 경험하는 총각 많다. 작정하고 왔거나 온순하면 풀어주거나 조임을 늦춘다. 가히 백두장사급 힘과 기술 둘 다 갖춘 선수. 1.골목은 인도 끝 아니고 중간이라서 우선 남자 몸통을 90도 방향 틀어야. 2.골목 안으로 끌고 들어가야. 온몸을 골목쪽으로 기울여 중력에 인력을 보태서 힘껏 잡아끈다. 그러려고 애초에 샅바 잡듯 팔과 팔을 얽어맨 거. 이걸 뿌리칠 청년 많지 않아서 버티질 못 하고 골목 안으로 빨려든다. 술까지 먹었다면 잡채기 한 번으로 완패. 대한의 총각 다수는 이렇게 허무하게 동정을 잃는다. 속된 말로 총각 딱지를 떼게 된다는 전설은 전설이 아니다. 그 길을 피하는 게 동정을 지키는 어쩌면 유일한 길이건만 함께 휴가이거나 후방이면 외출 나온 고참이 강제로 데려간다는. 혹은 제 발로. 한 번 뗀 동정은 가치를 잃어 찾게 된다는. 할머니 아니다. 젊은 여성도 아니어서 대개 사오십 대. 그 정도는 되어야 남자를 알고, 안면에 철판도 깔 줄도 안다. 수작, 흰소리, 필요하면 거짓말도. 체력도, 지략도 받쳐주니까. 무릇 대한의 중년 여성은 돈이 필요하다면 변신의 천재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가 남자 꼬시기라면 여자 중년의 변신은 돈 꼬씨기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조심하세요. 넘어져요
녀에게 주의를 준다. 나는 벌써 딱지 뗀 총각이구만 당기는 힘이 너무 쎄다. 자빠질 거 같다. 녀가 동물적 감각으로 알아채고 두 팔을 다 푼다. 앞서서 도로를 건너며 따라오란다. 어랏, 길 건너편은 아닌데? 이쪽만 골목 골목 색시집인데?
어디 가요?
나는 술이 고프지 않다. 몸과 마음이 고프다. 술 여유 없다. 휴가 15일에서 남은 건 6일. 부대 복귀일 빼면 5일뿐. 여기는 성을 사고 파는 곳. 무작정 따르는 건 위험하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건 서울만이 아니다. 말년에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 제대에 지장. 하늘이 무너져도 아니 될 일. 길이 아니기에 물어볼 밖에
길만 건너면 돼요. 진짜 예쁜 아가씨 있어요
그래. 진짜 예쁘다는데 무슨 할말이 있나. 총각 잠깐 쉬었다 가. 다음에 정해진 2차 멘트 즉 광고 카피다. 뿌리치는데 예쁘다면 거짓 확율 90%. 돈 안 놓치려고 막 던지는 거. 밑져야 본전이니까. 이조차 최전방 군인에겐 먹힌다. 예쁘다는 말, 아가씨란 말 들은 게 언제더란 말인가. 총각은 순진해서 진실을 알리도 없다. 녀 맞닥뜨려 거짓이 드러난들 엎지러진 물. 좁은 방을 탈출하려면 닳고 닳은 달인의 중년 녀를 통과해야 하는데 포기가 낫다. 생물이라 교환 이런 건 애초에 없다. 정 아니면 한두 시간 노가리로 시간 때우다가 어우야 살았다 빠져 나오는 수밖에. 중년 녀는 내게 진짜 예쁘단다. 진짜를 붙이면 90% 진짜다. 이들도 상도의라는 게 있어서 진짜라는 말 함부로 않는다. 진짜 예쁘다. 대검 찌르듯 가슴에 꽂힌다. 진짜+예쁜+아가씨. 길만 건너면 손에 잡힐텐데 무슨 반항을 할 수 있으랴. 얼른 차도를 건널 수밖에
● 별리
빠삐용은 그렇게 그녀를 처음 만났다. 호객 녀의 말 이상이었다. 미모에 더해 내 스타일. 게다가 팽팽하게 조여 끊어지기 직전의 기타줄은 퉁기는 손가락에 그대로. 이런 느낌 처음. 휴가 복귀 전날 한 번 더 들른다. 아쉬운 대화지만 마음을 재우기도 공명으로 증폭도 하는 기타 울림통. 그랬다. 그녀는 선율뿐 아니라 선도 아름다운데다가 품에 폭 안기는 기타였다
한 달 후 제대. 집에 일 일 년치는 말년 휴가 때 이미 끝냈다. 서둘러 그녀를 찾는다. 이번엔 돈을 안 받는다.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억지로 지폐 쥐어 주니 짐짓 화를 내며 아무때나 오고 싶으면 들르란다. 돈은 필요 없다고. 친구하자고. 단 하나만 주의해 달라고 당부한다. 방문 앞에 남자 구두 보이면 아무 말 말고 돌아가라고. 보름여 우리는 온몸으로 우정을 키웠다
아아, 내가 왜 노크했을까
후회 막급. 사과부터 해야 했다. 수일 간격을 두었고 그녀 집. 텅 빈 방. 가구도, 붙박이 걸이에 옷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열린 방문으로 애꿎은 햇살만이 사방 벽지와 바닥 네 귀퉁이까지 속속들이 핥는다. 옆 방 사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이사 갔다고. 계약 기간이 한참 남았는데 갑자기 떠났다고 투덜. 중년 녀 찾아가니 자기도 모른다고. 캐묻고 부탁해도 완강히 잡아뗀다. 9월 복학 임박해 어쩔수없이 서울행. 방학되어 다시 찾았지만 그녀는 영영 보이지 않았다
곰곰히 따져본다. 구지가 구두 남은 그녀를 마음에 둔 조폭이었을 거. 강제로 이사 시켰을 거. 업소끼리 몸 파는 여자를 사고 팔았다. 사정상 스스로 그 세계로 뛰어들거나 조폭이 팔아 먹으려고 납치도 드물지 않았다. 철통 감시, 무자비 폭행. 산꼭대기처럼 방에 갇힌 노예. 그녀는 달랐다. 독자로 방을 꾸렸다는 건 감시 대상 아니었던 거. 구두 남이 각별히 챙긴 걸 거. 어떻든 호객하는 거간꾼은 필요하다. 그 바닥 전체를 조폭이 관리. 먹이 사슬, 공생 관계 얼기설기
성을 사고 파는 건 불법 아니었다. 위생증. 파는 이 성병 치료를 위해, 사는 이 예방 목적으로 보건소에서 정기 검사 받을 의무만. 위생 아닌 성매매 허가장. 성매매금지법은 세월 한참 지난 후. 납치는 꾸준히 언론 보도 되었지만 대대적인 단속은 들은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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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보면 조선 한때 정읍사를 음란으로 금지가 낭설만은 아닌 듯. 구지가야 그렇다는 건 널리 알려진 바. 둘 다 고려이니 조선보다 성 개방적이었던 거. 고려 불교는 세속이라 여겼을 거고 조선 유교 점잖빼는 공자님은 용납 어렵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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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여 단편이여?
1인칭을 3인칭으로 바꾸면 소설 아닌감?
꼭 상상 곁들여야?
그럼, 더 골때리는 청춘의 방황을 합치면 소설 되것구만
허구 같은 실제는 소설 안 되남?
실제 같은 허구만 소설?
기록이여 작품이여?
스토리야 그럭저럭 하니 묘사, 상징, 비유 이런 거와 인간의 속성, 본성 이 따위를 보태면 작품성 좀 생기지 않을까. 그래도 이거론 내가 봐도 한참 모자란다. 이거 연재 브런치북 '청춘의 방황 비망록'부터 완성하고나서 더 생각해 보자. 가만 이거도 매듭 하나일 뿐이고, 사회, 은퇴에다가 어릴적까지 일렬로 엮으면 성장 소설은 되겠네. 시대상 어우르면 60년 두 세대 대하. 이를테면 첫 권 첫 화가 '엄마는 딸 셋 낳고 죄인이 되었다'. 브런치스토리팀이 뽑아서 조회수 급증. 은퇴하고 '절도 합의금 2,000배' 조회수 폭발. 가능성 확인. 눈길 잡아채는 이런 꼭지들 모으면 수 십은 될 터. 소설 같은 스토리들. 아니 삶 자체가 하나의 극. 생애 동키호테로 살았응께. 청춘에 엉엉 우는 사랑과 시련과 방황, 사회에서 필생의 도전과 실패와 성공과. 정의와 순수. 그리고 노년에 내 철학하기. 실험으로 점철한 일생
오, 이거 얘기 되네. 7년째 내 삶 1/3 가량 기록했는데 대하로 초점 맞추면 2/3로 역전. 글 800여, 브런치북 28권. 1,600여 시간. 글쓰기 훈련 이 정도로 끝내고 연재 브런치북으로 이빨 빠진 부분 채우면서 본격 써내려 가면 1년이면 될 기다. 뭐든 들입다 파면 뭐라도 나오는 법. 서두르진 않는다. 별거면 어떻고 아님 또 뭐 어때. 현재 즐겁고 더불어 즐기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