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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Nov 02. 2023

미아리 어깨가 직무를 유기한 이유

2화. 청춘의 방황 비망록

1984년


대학 2년. 군 제대 직후 코스모스 가을 학기 복학. 서울 월계동. 군대 동기와 반지하 월세 자취


친구야, 오늘 술 한 잔 살께

그래? 어디로 갈건데

따라와 봐


땅이 창을 반쯤 가린 자취방을 나선다. 버스 타고 미아리. 언덕 꼭대기. 길게 늘어선 색시 끼워 술 파는 유흥업소들.. 고막고막 하꼬방 수준. 부로꾸 벽에 시멘트 바르고 스레트 지붕은 아귀 입 모냥 커다란 간판에 가려 주의 깊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지붕재 따위 아무도 관심 없으니 전국 어디든 집이든 가게든 부로꾸 벽이면 지붕은 으레 스레트니까. 그집이 그집인 셈. 첫 술집에 들어선다



ㅡㅡㅡ



어서 오세요!


텅 비었다. 실내는 소파 테이블 세트 둘이 전부. 각기 양쪽 셋 앉는. 테이블마다 붉은 조명이 어슴프레. 이른 저녁에 꺼지지 않으려는 햇살이 오히려 밝다. 옳거니. 분위기 딱이다. 뒤쪽 테이블에서 수다를 떨던 아가씨 둘도 얼핏 맘에 든다. 눈빛 반짝 입가에 미소. 심심도 덜고 돈도 벌 기회. 게다가 첫 손님으로 청춘 둘이니 화색이 돌 밖에. 나와 친구는 앞쪽 테이블에 자리 잡는다. 마담이 메뉴판을 들이민다.


양주 대 자 한 병. 과일 안주 큰 거!

아가씨는요?

이 집 아가씨 다 불러!


호기로운 외침에 애타게 기다리던 옆 테이블 아가씨 둘 조르륵


아가씨 두 명 더 있어요.

그래? 그럼 다 불러. 마담도 여기 앉고

나는 안주 준비해야지요. 여섯이면 테이블 꽉 차요. 마담은 초장에 대박 손님으로 신바람 난다. 양주 한 순배 돌리니 금새 바닥이 보인다


양주 더 시킬까요?


배시시 웃는 아가씨. 눈은 내게 맞추되 마음은 이미 마담에게 가 있다. 주문 재창하려고. 허긴 내  허우대에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말투로 큰 손님인 걸 대번에 알아챈 거. 싸나이라면 녀의 기대를 저버리면 자격 없다. 게다가 넷. 더욱이 녀들은 몸 파는 여자 아니다. 자자 해도 나름 기준이 있어 사람 봐가면서 응한다. 사내답게 큰소리로


양주 큰 거 넷, 마른 안주, 과일 안주 추가!


양주는 태 나와 처음이다. 것도 아가씨 끼고. 것도 넷씩이나. 오늘이 무슨 생일도 축하할 일이 있는 거도 아니다. 하지만 부어라 마셔라 취하도록.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 같이 마셨다. 그 귀하고 비싼 양주를



ㅡㅡㅡ



근데 내가 왜 이런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쓰고  있지? 환갑 지난 나이에 점잖치 못 하게. 아, 맞다. 청춘의 방황 비망록.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ㅡㅡㅡ



서너 시간을 실컷 마시고 떠든다. 얼콰하다. 양주, 안주 다 떨어지고 주문이 없자 마담이


양주 더 가져 올까요?

아니, 계산서 가져 와


마담이 내민 계산서를 받아 들고 뚫어져라 본다


돈 없는데?

에이, 장난치지 말아요


아니. 나 정말 돈 없어

장난하지 말라니까요


정말 돈 없다니까


그제서야 마담이 무전취식을 알아챈다


알아서 하시오. 경부르든가


마담이 어딘가 전화


20분여 후


두둥, 남자 등장. 한눈에 경찰 아니다.

어깨 즉 조폭. 어깨가 넓고 가슴은 두텁다. 머리는 적당히 짧다. 인상이 아주 더럽지는 않다


이봐. 술 먹었으면 돈을 내야지

돈 없어


돈 안 내면 어찌 되는지 알아?

마음대로 하소. 조패든 경찰 부르든


너 뭐 하는 놈이야?

나? 학생


어디?

고대


학생증 맡기고 돈 갚아

맡길 순 있는데 돈은 못 갚아. 돈 없어


어쩌자는 거야

알아서 하라니까. 내가 잘못했으니까 패든 경찰 부르든 알아서 해


어깨가 문을 나서고 한참 지나 들어온다. 나는 소파 위로 양팔 걸고 다리 뻗고


친구는 어깨 오기전에 진작 보냈다



ㅡㅡㅡ



야, 임마. 가!


속으로. 엥, 가라니? 돈 안 받어? 너가 하는 일이 그거 아냐? 여기 미아리 맞어? 조폭이 뒤에서 이런 거 해결해 주는 거잖아. 가라고? 학생증도 안 받고?


가라니 무슨 말이야

그냥 가라고!


학생증 달라매?

필요 없어. 그냥 가!


정말이다. 그냥 가라는 거. 술값 포기한다는 거. 한껏 기 끌어 올리던 내가 외려 머쓱. 그렇다면 사과는 해야겠지


미안하게 됐다


그렇게 공술 거하게 먹었다는. 지금으로 치면 양주 대 자 5병, 아가씨 넷에 서너 시간이면 3백만 원은 될 거. 헌데, 그걸 왜 포기해? 경찰 부르는 게 당연하지 않나? 아님, 조폭이겠다 흠씬 두들겨 패든가. 그야 군에서 다진 맷집 있으니까. 그도 아님, 학교 수업 시간에 찾아 와서 깽판 치든가. 그도 저도 아님, 부모님 찾아 가서 협박하든가. 그럼 어떡하든 마련해 줄 텐데? 도대체 뭐야, 왜 날 그냥 보낸 거야? 재수 없다는 말조차 안 했어. 쌍욕도 없고. 이 상황에선 욕이라고 볼 수 없는 임마뿐


어깨는 나타난 시간, 인상으로 판단해 봤을 때 술집이 위치한 고개 아래 평지 미아리 텍사스에서 불렀을 거라 추측. 고개 위에 상주하지는 않았을 거고 조폭 입장에서는 같은 상권



ㅡㅡㅡ



술 고파서 간 거 아니다. 양주 먹고픈 거 아니다.  체질 아니다. 여자 그리운 거도 아니다. 군에서 완전 찌그러진 배짱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깡다구가 살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때 그 술집


마담님, 여성분들, 그리고 어깨님


거액 무전취식 대단히 죄송합니다


벌써 그 지역 재개발 돼서 흔적도 없으니 찾아가 갚을 길마저 없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의문



왜 나를 아무일 없이 놓아 주었을까

40년 지난 오늘도 몰라

뒤지게 맞거나 경찰 갈 각오한 건데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누가 좀 알려 주소

이유가 대체 뭐요?



ㅡㅡ얼마 전 고향 절친 의사에게 조심스레 이 이야기 꺼내 보았다. 너 그날 죽을 뻔 했단다. 왜 나를 손 하나 안 대고 보냈냐니 모르겠다고



ㅡㅡ다 적고 나니 알 거 같다. 그때 내가 왜  그리 무모 엉뚱했는지



1.영웅심



수호지를 여러번 너무 심취해 읽은 탓 같다. 겁대가리 상실에 한몫했을 거. 대여섯 번은 봤을 거. 너무 재밌었다. 화화상 노지심, 청면수 양지, 급시우 송강...호 뜻 여즉 기억한다. 누구보다도 경양강 호랑이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무송. 지금도 또렷. 108명 영웅 스토리. 소설 삼국지가 지략이라면, 수호지는 무협. 전자 천하 구제 도원결의라면 후자 살인죄로 관에 쫒기다 양산박 산속에 숨은 떼거리. 각기 살인의 사유가 있다곤 하나 흉악범일 뿐. 원래 겁 없고 개구진 데다가 수호지 영웅의 환상까지 덧씌운 거. 삐뚤어진 영웅심



2.응어리



군 강제 징집. 군 3년. 죽으려다 못 죽고, 굴욕에 저항 못 한 자괴감. 죽은 자에 비해서 살아서 돌아온 죄책감. 그걸 엄한 데 쏟은 걸 지도. 이후 1화. 고대 총장 어디로 튄 거야 에서 대차게 풀기는 했지만서도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원한의 응어리가 있었던 거 같다



오랜 의문 둘 중 하나.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얼추 풀린 듯



ㅡㅡ나머지 의문 하나는 언제 풀리려나



어깨 분, 마담님, 도대체 나를 왜 그냥 보낸 거요?


혹시 어깨 아닌 동네 건달? 백수?

오, 이거 말 된다. 어깨는 소속이든 뭐든 내세우지 않았다. 지금껏 지레짐작일 뿐. 그러고보니 어깨치곤 으레 의식, 즉 웃통 벗고 문신 안 보여주었다. 말 겁박도 놈, 임마 수준. 쌍욕 안 한 거 아니라 못 한 거. 아님, 사건 키우기 싫었던 거. 제 일 아니고 체구로 겁 줘도 안 먹히니까. 설마 나를 어깨로 본 ? 학생으로 위장한. 그건 아닌 거 같고


가만, 마담이 경찰 신고 안 한 건 유흥업소 약점때문 아닐까? 접대 여종업원+양주. 녀들 경찰 만나면 안 좋거나 가짜 양주이거나 업소 단속 기간이거나 뭐든 경찰 뜨면 안 되는 약점?


그렇군! 이거로구나! 어깨가 아니거나 업소가 문제거나. 녀들 서비스료 포함 몇 백 술값이야 부르는 게 값일 뿐 원가야 얼마 되나. 녀들은 손님 없어 무료한데 마침 대학생 둘과 재미나게 놀았다. 미아리 언덕 꼭대기까지 와 양주 퍼먹는 대학생 몇이나 될까. 따지고 보면 그들도 귀한 양주 공술 먹은 거. 것다가 나가 또 국보급 카 아닌가.ㅋㅋㅋ. 열 번 미팅 한 번 킹카 어렵다는 대학가 전설은 참이다


이렇게 해피 엔딩이 낫것다. 40년이나 지난 일이고 인생 한 바퀴 환갑 넘겼으니 이제 마음에서 털자. 털어버리자.






욕, 비난 해도 달게 받으리다. 그때 흠씬 두들게 맞았거나 법 처벌 받았으면 벌써 값 치뤘을 거요. 그냥 보내주어 씼지 못 한 죄 된 거


따라하지 마시오. 현행범으로 체포. 아님, 장기 파낼 지도. 당시는 정권부터  폭력 시대. 사회, 학교, 가정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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