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매기삼거리에서 Dec 16. 2023

막장 행 막장 열차ㅡ죽으면 더 좋아

3화. 실패로 본 성공 비법ㅡ서울대의대 편


태백선 열차에 올라탄다. 목돈 벌 목적. 돈 젤 많이 준다는 탄광 막장 행. 갱도 끝 막장에서 탄을 캐는 일. 테레비서 봤다. 눈 빼곤 얼굴이 탄가루 범벅 온통 시커멓다. 갱이 무너져 깔려 죽거나 갇혀 죽거나 수시로 전국 뉴스를 타는 곳. 그럼에도 돈 모으기 으뜸이라 사람이 끊이지 않는 곳


완행 열차. 복도 좌우로 일렬. 한쪽 열에 자리 잡는다. 좌석은 둘이고 그중 하나. 빈좌석을 이리 제끼면 앞사람 뒤통수가 보이고 저리 제끼면 사람 둘을 무릎 맞대고 마주본다. 앞에 젊은 여자 둘. 죽을지도 모를 새 길을 조용히 가고 싶어 창가로 앉았건만 녀들 수다가 귀에서 앵앵. 모처럼 외지 나갔다가 잡은 흥을 놓치기 싫어서겠지


"요즘 갱도 붕괴 사고 안 나네. 남편이 안 죽어서 좋아."


"죽으면 더 좋아. 호호호"


"그건 그래. 보상금 한꺼번에 받잖아. 우리가 탄광에서 탈출할 길은 그 거밖에 없어."


귀 번쩍. 미친 년들. 남편이 죽길 바라다니. 고교 3학년. 고려대 낙방한 17세 청춘은 탄광에 가기도 전에 비정한 현실을 접한다. 막장을 향하는 나와 막장을 바라는 녀 둘. 막장 열차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그건 아니다. 지들끼리 지껄이는 거. 어린 나 따위는 안중에 없다. 농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리 험한가? 여자들이 왜? 칸마다 군상을 가득 실은 쇠 마차 행렬. 쇳덩어리답게 높은 산은 좌우로 째고 막는 산은 굴로 뚫는다. 덜커덩 덜컥 덜커덩 덜컥. 평행 철로는 이음새의 끝 없는 연속이란 걸 알리려고 일정한 소리와 동일한 진동. 간간이 산을 벗어나면 왼편 창 밖으로 소나무 빛을 담아 흐르는 물과 치솟은 암벽. 철길은 산중에서 구불구불, 물가는 활처럼 휜다. 역마다 나 왔어 빼애액 비명 지르며 멈추거니, 거구답게 온힘 다해 삐그극 출발하거니. 다섯 시간여. 역사 주변이 온통 석탄의 산더미. 옳거니. 여기가 탄광인가 보군




ㅡㅡㅡ




황지. 추적추적 비가 나린다. 고대 낙방 이후 휘몰아친 마음의 공황을 씻기는 죽죽 비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날씨마저 나를 버렸다. 우산 없이 역사를 빠져 나온다. 길이 온통 흑색. 석탄이 황토와 섞여 질척질척. 길과 나란히 좁다란 하천 역시 새카맣다. 빗물에 갠 탄이 축대 쌓아 길과 구분한 내로 흘러드니 먹물이 콸콸. 이래서군. 녀 둘 탈출이 꿈인 게


한강의 발원인 황지는 시대에 이르러 검은 주검을 일으켜 나라를 살린다. 반도는 북뿐 아니라 남에서도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국민의 염원은 가요만으론 되지 않았다.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온 동네 사람들이 부지런히 마을 길 쓴다고, 초가 지붕을 스레트로 갈아 치운다고 이룰 일 또한 아니었다. 잘 살려면 에너지가 절실했다. 백두대간 허리춤에서 서쪽의 산들이 석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화력발전소로 옮겨져 태고를 불살라 온순한 물 세찬 증기로 둔갑. 터빈을 돌렸고 초에 십만 리 축지법 전기 출현. 성공 시대로 이끌 공장들이 우후죽순 세워진다. 집마다 밤이면 타오르는 양초를 대신할 요량으로 전봇대에서 전선을 끌어들인다. 두 가닥 퓨즈선과 스위치가 주거하는 두꺼비집을 벽 상단에 만든다. 방 천장에 도달한 전선 끝에 애기 주먹만한 검정 소켓을 매단다. 어른 주먹에서 팔목까지 모양의 둥근 백열등 돌려 끼우면 번쩍 환하다. 해가 방에 뜬 거다


석탄을 틀에 넣어 꾹 눌러 찍어낸 연탄. 집마다 온돌을 달구고, 밥 짓고 반찬하고, 물 뎁혀 세수하고 머리 감고. 연탄은 오강 크기되 원통형. 수직으로 열아홉 개 구멍을 동심원으로 뚫어 십구공탄이라 불리었다. 나무와 달리 연기가 나지 않아 무연탄이라고도. 이럴진대 석탄은 가히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탄 이전 연료는 나무였다. 전국에 민가를 낀 산이라면 여지라곤 한 평 없이 나무라고 생긴 건 죄다 베어다 땔감으로 썼다. 민둥산. 연탄이 가구마다 보급되면서 대머리 산의 나무 씨앗은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허나 더디다. 매년 홍수 난리. 나라는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고선 작정하고 전국 산에 나무를 심는다. 해를 거듭하면서 숲의 모습을 갖춘다. 이러니 탄은 산의 구세주. 탄소 덩이 나무의 조상 탄이 돌고 돌아 나무를 살린 셈


박정희 대통령은 탄광 개발에 온힘을 쏟았다. 탄을 가득 실은 열차는 양과 속도에 가속이 붙는다. 사람들이 탄광으로 몰렸다. 대개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이유로 탄광촌에 내발로 들어섰다. 청년도 소년도 아닌 얼치기 17세. 난생처음 태백선 열차에 몸을 실었고, 아내가 남편 죽기를 바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먹물 냇물을 처음 보았고, 황토 아닌 새까만 진흙길을 처음 밟았다. 2년 목돈 모으려는 목적 하나로. 사업 자금. 어디에 쓸지는 몰랐다. (지금으로 치면 월 5백만 원×24개월 1억쯤 되려나)




ㅡㅡㅡ




찐득이는 흑진주에 발이 빠져서 길은 어디고 움직이기 어려웠다. 바닥이 블랙 일색인 탄광촌은 곧 공간마저 블랙의 어둠이 뒤덮을 태세. 비 젖은 몸 으스스. 길가 여인숙. 어스름한 불빛 아래 남자들 여럿. 나같은 사람일까? 다들 사연이 있겠지. 주인에게 막장 일 하러 왔다, 어디로 가야 하냐니까 오늘은 늦었다며 여기서 자고 아침에 광업소 사무실로 찾아가란다. 다음날 일찍 일러준대로 길 물어 찾아가니 산 중턱. 탄광 곁에 사무실


ㅡ막장 일하러 왔어요

ㅡ군대 갔다 왔나요?


ㅡ아니요

ㅡ몇 살인데요?


ㅡ열일곱요.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ㅡ막장 못 들어간다


ㅡ왜요? 저 몸 튼튼해요

ㅡ군대부터 갔다 와라


ㅡ두 사람 몫 할 자신 있어요

ㅡ법이 있어서 안 돼. 갱도 안은 못 들어가고 외부에서 갱목 작업은 할 수 있어


ㅡ얼마 주는데요?

ㅡ막장보다 적다


ㅡ얼마나요?

ㅡ잡부라서 많이 적어


ㅡ막장 들여보내 주세요. 태권도 유단자고 체력 좋아요

ㅡ감사가 있어서 안 된다


ㅡ제발요. 저 꼭 막장 들어가야 해요. 돈 벌어야 해요

ㅡ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도와줄 수 없구나


ㅡ다른 탄광도 그런가요

ㅡ어디가나 탄광은 똑같다. 미성년자라 안 된다


침묵으로 한참을 하소연 해도 끄떡없다. 사무실을 나선다. 몇이 갱목을 어깨에 메고 나른다. 햇빛을 보고 안전하니 싼 거고 캄캄한 지하에서 목숨 거니까 많이 주는 거. 운 좋아 갱 붕괴 안 해 살아남아도 오래면 폐에 탄가루 잔뜩 끼는 진폐증 환자. 그래도 몸으로 때워서 이만한 돈 주는데 없으니까 한 번 들어가면 여간해선 발 빼기 어려운 막장. 남정네 따라와 애 낳아 기르며 매일 매순간 까만색 현실에 진저리친다. 탈출만이 유일한 꿈인 젊은 처자들. 다른 광업소 들러도 거절 마찬가지. 여인숙 돌아와 이를 어쩌나. 돌아가야 하다니. 눌러앉으려 작심하고 왔구만 답이 없었다




ㅡㅡㅡ




후기. 성균관대학교 야간대학 무역학과. 40여 명. 직장인만 다니는 줄 알고 입학했다. 원주고 특수반 61명 중 최하위. 아니 전교생 중 가장 낮은 대학. 야간 진학 단 한 명 대기록.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내내 탑에서만 놀다가 스스로를 바닥에 패대기 친 것. 입학해 보니 직장인은 두엇뿐. 나머지 전부 고교 졸업 또래. 낮에 학비 벌어서 대학 다닌다고 야간 입학했는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수강 신청, 하숙집 구하고 등 낮에 하더라. 다 처음인 거. 뭔지도 모르고 한 학기 후딱. 것다가 친한 친구 셋 생기고. 이러다간 진짜 폭망하겠다 싶어 막장 행 열차




ㅡㅡㅡ




전기.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본고사 수학 시험 치루는 중 알았다. 불합격이라는 거. 다섯 문항 중 한 문항도 제대로 못 푼다. 손도 못댄 셈. 수험 시간은 넉넉. 뭘 알아야 풀지. 본고사가 이리 어려운 거였어? 허긴 전교 30등이 올 학교 아니었다. 게다가 수업 시간 외 거의 공부한 거 없잖아. 수학의 정석도 제대로 못 떼었는데 문제는 정석 심화 학습 난이도. 3학년 일 년 내내 잠 지겹게 자고, 연대장 이라고 치악산서 고성이나 지르다 길 잃고, 후배들 정문에서 교실 돌면서 기합 주고 조패다 원성이나 듣고. 죄값 치루는 거지 뭐. 고3 때 어렴풋이 느끼곤 있었다. 이러다 개피 본다는 거. 폭망할 거 같다는 거. 하지만 그게 뭐. 꿈도 목표도 없는 청춘에게 내일은 없었다


반 폐인. 고대 본고사 끝나고 합격자 발표일까지 문고판 소설깨나 봤다. 테스, 대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문학작품들. 마음 다잡으려고 아니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 운명의 날 대기하는덴 소설만한 친구는 없었다. 불합격 이후 폐인이어도 마찬가지. 스스로 방에 유폐 되어 그림같이 누워서




ㅡㅡㅡ




청춘의 방황은 바닥을 모른다. 유전자에 각인된 이성을 향한 갈망을 꿈이든 목표든 이상으로 다독이지 않는 한.

지향점 없는 사춘기는 풀어 놓은 투우와 같았다. 붉은 망토 헛것을 치받다가 대학입시라는 날선 창에 급소를 찔린다. 고대 탈락한 그날 내 청춘은 지독한 방황의 길에 들어섰다




♤ 꿈과 목표의 효용



Boys be ambitious!

Aim high!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꿈, 목표 반드시 이루라는 거 아니다.

가지라는 거. 방향을 잡으라는 거.

근처는 간다는 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꿈이 밤하늘의 북극성이라면

목표는 지상의 산

이도 저도 아님 안드로메다


나이와 상관 없다




♤ 건진 거



불행 중 다행인 건 아예 초장에 아예 바닥을 기었다는 거

끝을 보았기에 이후


1. 자신감 충만


2. 무겁 도전ㅡ도전을 겁내지 않음




※ 부작용



원래 겁 안 내는데 겁 상실. 사람이고 일이고 간에




※ 따라 마시오



무난이 무난하오

반면교사지 일부러 이러면 아니 되오

난 예외적인 경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