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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Dec 18. 2023

꿈 목표 없으면 황당한 일

4화ㅡ실패로 본 성공 비법ㅡ서울대의대 편


국민학교 내내 올 수, 중학교 탑, 고교 2학년 종합 성적 2위. 탑에서 놀던 나는 고3 일 년 내내 헛짓만 했다. 고대 본고사 탈락. 정신의 공황으로 인한 행위의 방황 스타트. 스스로 바닥에 팽개쳐 성대 야간 대학 진학. 혼돈의 극치는 막장 행 막장 열차. 전편에서 여기까지


이외 에피소드 하나


낮에 학비 벌고 밤에 공부한다는 건 꿈도 목표도 아니었다. 그래서 졸업하면 뭐 할 건데? 당장은, 말은 않지만 야간이라 괄시하는 걸 느낀다. 핑계였던 거. 고2 까지 서울대의대 재원이 성대 야간 진학에 이유를 만들었던 거. 굳이 왜? 나 자신을 최고 낮은 곳으로 처박아 보려고. 극한으로 몰아붙인 거


새로 사귄 친한 친구. 형호, 기성, 상철. 너무 좋은 친구들. 바닥이건 뭐건 자유가 좋긴 좋더라. 전라도 광주, 경기, 서울, 그리고 나 강원. 낮 시간 대개 잔디밭에서 카드 게임. 동전 주거니 받거니 종일 해 봐야 주머니 돈 쌈지돈 푼돈. 가끔 명륜 캠퍼스 앞 음악다방. 술은 거의 안 했다. 미팅도 거의 못 했다. 과대표가 주선을 잘 못 하는 게 야간인 거도 있고, 어쩌다 해보니 죄지은 거 없이 주눅들더라. 에라이, 끊고



ㅡㅡㅡ



여름. 낭만의 춘천 행 열차. 화천댐 물가에 텐트 친다. 달랑 우리 팀 하나뿐. 둥가 둥가 기타 치며 대학가요제 히트곡. 낚시로 잡은 고기 매운탕에 소주 마시고, 버너 밥 해 먹고. 일주일. 서울 돌아가자. 엥, 돈이 없다. 전화도 없고, 해봤자 통장, 도장도 없고, 시내 은행 나갈 차비조차 떨거지. 아침, 점심 굶는다. 저녁도 굶고 자고 또 굶고. 어떡하냐? 시균아, 너 강원도인데 아는 사람 없어? 없는데. 하릴없이 호수를 바라보니 저 멀리 산 아래 보트 하나. 300여 미터


텐트 주위 물가에 배를 하늘 향한 도라무통 하나. 그 안에 노 둘. 도라무깡을 반을 잘라 배로 쓰는 거. 옳거니. 얘들아. 나 어디 좀 갔다올게. 강원도 내 땅에 왔는데 내가 돈 해결해야 했다. 내가 수를 내야했다. 어떻게든 차비 마련해야. 어디가? 기다려봐


도라무 배에 올라탄다. 기우뚱. 앗, 뒤집히겠다. 쇠 통 200리터. 그 반쪽이 전부여서 덧대가나 변형 없이 오직 깡통 반쪼가리. 댐에 고기잡을 때 쓸 터. 사람 하나 타서 발 뻗으면 꽉 차는. 중심이 흐뜨러지면 바로 뒤집히는. 조심 조심 올라타 몸으로 센타 맞추고 노를 양쪽으로 젓는다. 앞뒤가 수직이라 전진이 어렵지만 나아가긴 한다. 한 번 노에 반 보씩 어렵사리 시간여 나아간다. 땀 흥건. 내내 어쩌지? 돈을 어찌 마련하지? 목표 지점 도달. 남녀 둘이다. 내 나이 또래. 데이트 하는 거. 아니 사람 하나 없이 외진 곳, 외진 장소, 것도 깊은 물 위에서. 그짓거리 배 뒤집히면 어쩌려고. 둘 다 죽는데. 암만 둘이 있고 싶어도 그렇지 이런데서 데이트라니


둘은 진작 나 발견했을 터. 방향도 그들쪽. 그 넓은 호수에 움직이는 배라곤 나뿐이니 눈에 아니 띌 수 없다. 둘 낯빛이 어둡다. 불안한 거. 도대체 한 시간을 왜 오냐고. 것도 가까이 보니 배 아닌 도라무깡. 어부도 아닌 청년이. 헌데 인물은 멀쩡. 나쁜 사람 인상은 아니다


야, 그림 좋다. 너희 둘 여기서 뭐 하냐?


말 없이 눈 뒹굴. 남자에게


너 돈 좀 있냐


남자가 허겁지겁 지갑을 꺼내 지폐 큰 거 한 장 내어준다


엥, 바로 주네? 한 번 흉내낸 건데? 청춘남녀 둘 있으면 양아치들이 놀리거나 시비 걸 때 이런다. 야, 그림 좋다. 이걸 받으면 강도 아님? 헌데 이 돈 없으면 기차표 살 돈도 없고 또 굶어야 한다. 저녁, 내일 아침. 대책도 없다. 셋은 나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에라, 모르겠다. 돈 있냐 물었지 돈 달란 거 아니다. 지가 알아서 준 거


안 갚어도 되냐?

고개 끄덕끄덕


미안해진다. 녀석은 녀 델꼬 분위기 잡는데 내가 나타나서 꼼짝 못 하니까 체면 구긴 거. 그래도 잘하는 거. 여기서 싸움 나면 쪽배라 백퍼 뒤집힌다. 내 건 배도 아니니 당연하고. 수심이 댐 깊이고 물가까지 300미터. 나는 산다. 나는 장거리용 측영법을 개발해 자습으로 익혔다. 꼬맹이 때 장맛비에 꽉 들어찬 120미터 원주 봉천을 너끈히 건너니 죽어라 헤엄 치면 감당할 거. 녀석이야 산다쳐도 녀는. 해서 빠르고 바른 판단. 똥이 무섭냐 더럽지. 동네 양아치 ㅅㄲ. 얼른 줘서 보내자. 선뜻 돈 주니 고맙고 미안하다. 그렇다고 고맙습니다 느닷없이 태세 전환 어려워


너 어디 사냐?

원주요


엥, 원주. 뭔가 예감이 안 좋다


고등학교 어디 나왔어?

원고요


아, 쓰벌. 안 좋은 예감은 왜 꼭 들어맞는가


몇 회?

22회요


선배. 것도 젤 무서운 1년 선배. 역시 예감은 또 들어맞는군. 후배가 아닌 줄은 알았다. 내가 연대장이라 하도 쥐잡듯이 후배들 군기 반장. 정문부터 교실까지. 후배였으면 나 바로 알아봤을 거. 머리가 길었으니 고등학생은 아닌 거. 어쩌나. 뭘 어째 빨리 튀어야지. 나중에 알게 돼서 선배들 불려가 터지더라도 서둘러 돌아가야. 열차 시간 안 놓치려면


고맙다. 위험하니까 딴 데 가서 놀아라


깍듯하다. 허긴 원고 학생들 착하다. 그때는 과고, 외고 이런 거 없었고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만 시험 봐서 뽑았으니까. 나만 빼고 다 착하다. 허긴 나도 모범생. 고3 때 학교 하자는 대로 다 해서 폭망. 지금은 꼬일대로 꼬여서 선배 상대로 돈 있냐는 양아치. 영차 영차 어기영차. 노를 저어라. 깡통 타고 텐트로 복귀. 친구들과 부리나케 짐 싸서 버스


시균아, 너 돈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났어


서울행 열차


시균아, 돈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났어


이후 잊을 만하면


시균아, 너 그때 돈 어디서 났어?

어디서 났어


선배 돈 후렸다는 걸 차마 말하지 못 한다. 평생 간직한 비밀 오늘 턴다


형호야, 기성아, 상철아

보고 싶어

79년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어

청춘의 방황도 잘 넘겼어

그때 돈 선배가 줬어. 춘천에 나 아는 사람 없냐매. 마침 우리 선배 만났어




ㅡㅡㅡ




자랑 아니란 건 알 거다. 사례일 뿐 황당 맹랑한 일 쌨다. 꿈, 목표, 아무 생각마저 없으면 이런 식으로 흐른다는 거. 목숨 걸고 막장 행 막장 열차를 타도 안 되고, 하다못해 기차삯이 없어도 이렇다는 걸 길게 풀어쓴 거. 성격 다르면 다른 식으로 겪겠지만


고교 때 확실한 꿈, 뚜렷한 목표 가진 학생 많지 않다. 꿈도 목표도 뭘 알아야 갖지. 없거나 애매한 게 정상. 꼭 이루자고 꿈 아니고, 반드시 달성해야 목표 아니다. 미리 정했어도 고교 3년 알아가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만 영 꿈도 목표도 아무 생각마저 않으면 이런 웃기지 않는 희극도 가능하다는 거


공부해라. 백 번 해야 잔소리

백문이 불여일견은 반면교사도 해당

브런치북 '실패로 본 성공 비법'

이거 한 번 보여주면 인생 바뀔 수도

이런 청춘이 한 명이라도 헤메지 않고 제 길 간다면 늙은 나로선 횡재이고 보람


그래도 공부 안 하면 운명이지 어쩌겠나

공부가 전부 아닌 시대

공부 아주 잘하면 어느정도 안전 보장 맞지만 삶이 보장되는 거 아니다

흔히 공부 잘 하는 이 월급 받고, 월급 주는 이 따로 있다

다른 길, 나은 길 얼마든지 있다




♤ 그때 돈 준 선배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야간대학. 훌륭하다. 동창들 착하고 사람들 하나같이 좋다. 마음이 공황이었지 캠퍼스 라이프는 재밌었다. 당시 내 진로가 아니었을 뿐. 낮은 대학이니 뭐니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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