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우세요? 지금 누구에게든 칭찬으로 말을 걸어보세요. 거창한 거 말고 당연하다 생각하는 거요. --
부부는 돈 문제, 자녀 문제 말고 대화를 나누나요? 그마저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나요?
젊은이는 도전하나요? 그마저 안정을 위한 거 아닌가요?
학생은 꿈이 있나요? 그마저 진로 진학을 위한 거 아닌가요?
어린이는 놀이가 있나요? 그마저 몰래 하는 건 아닌가요?
아이는 형제자매가 있나요? 그마저 둘이나 외동 아닌가요?
노년은 짐을 벗나요? 그마저 홀로서기 아닌가요.
요즘 다들 외롭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편의점 알바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누구나 편의점 들르잖아요.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 있어요. 금방 싸우다 온 사람처럼요. 부지런히 말을 붙여 보았어요. 남녀노소 구분 안 하고.
누구든 편의점 도어를 열고 들어서면 우렁차게, "어서 오세요."
계산하러 저와 정면으로 마주치면 큰 소리로, "반갑습니다."
계산할 때는 경우에 따라 달라요.
많이 사면, "한 보따리 사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1이나 1+1 증정을 모르면 챙겨주면서, "오늘 횡재하셨습니다."
아이를 데려온 부나 모에게는, "아이가 귀한 시대. 아이는 우리 모두의 희망, 우리 모두의 미래입니다. 진심입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최고지? 나도 엄마가 있었단다. 부럽다."
비닐봉지처럼 담을 걸 챙겨 오는 분에게는,
"지구를 사랑하시는군요."
요즘 수제 맥주가 잘 나가요. 4캔에 만 원인데 고른 걸 보니까 상품명이 퇴근길, 맥아더, 흥청망청, 인생에일. 그걸 한 줄로 놓고 하나씩 들어 보이면서,
"만 원의 행복! 맥아더 장군처럼 퇴근길에 흥청망청 인생을 즐기세요."
그랬더니 하하 웃으면서,
"넵, 그 순서대로 마실게요."
위에서 세 번째 줄이 수제 맥주
가끔 이런 장난도 걸어요.
뻔히 미성년자가 아니어도 담배 사면 "오랜만에 신분증 한번 볼까요."
머뭇머뭇 신분증 꺼낼라치면, "아닙니다. 기분 좋으시라고 해 본 말입니다. 하하하"
제가 주인이냐고 묻는 분에게는 양손 들어 엄지 척하면서, "저는 주인이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편의점 알바입니다. 월드 베스트 편의점 알바입니다."
마지막으로 돌아서서 나갈 때 매장이 꽉 차게, "감사합니다."
이런 식이죠. 일부러 말을 붙여본 겁니다. 그랬더니 말이죠. 반응이 생기더라고요. 하나둘 제게 먼저 인사하기 시작해요. 어떤 손님은 입고 검수하느라 바쁜데 제 뒤로 와 등 뒤에서 안녕하세요 인사하고요. 어떤 청년은 다른 동네서 여기 처음 왔는데 제 말 좀 들어줄 수 있냐며 입을 떼더니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짧지만 힘겨운 삶의 고비를 풀어놓더라고요. 두어 달 지나면 손님 상당수와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