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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Oct 28. 2020

(배려) 얘기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행복을 파는 편의점


-- 살다 보면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좋을 거 같은, 아는 이에게는 말 못 하는 그런 얘기들 있잖아요. --




심야 01시경.


살짝 취한 20대 초 청년.


제가 친절하다며 아버지 같다고 얘기 좀 들어줄 수 있냐고 하네요.

물론이라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밖에서 담배 피우며 잠깐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 유망주였답니다. 분유 회사인가서 후원하는. 그거로 집에 빚 다 갚았답니다. 아버지가 병이 있어 일을 못해 가세가 기울었는데 후원금으로 저축까지 했답니다.


세상에, 초등학생이! 깜짝 놀랐습니다. 대견하다고 칭찬했지요. 나도 초등학교, 그러니까 우리 때 국민학교 5학년 때 검은띠 따서 태권도를 조금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합하다가 발목을 접질렸답니다. 이상이 있어서 태권도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요. 커서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꿈을 접었답니다. 그리고 중학교 가서 은인을 만났답니다. 담임 선생님이 권투를 해보라고 권했다고. 전국 시합 결승인가에서 주먹에 맞아 바닥에 쓰러지면서 뇌진탕이 왔답니다. 의사가 위험하다고 권투 하면 안 된다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답니다. 그 사이 가세가 다시 기울었고요. 엄마가 건물 청소일로 돈 벌어서 아버지 약값 대고 생활하는데 늘 돈에 쪼들린다고. 그러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더군요.


격투기로 대성할 재목이 어린 나이에 큰 시련을 두 번이나 겪은 거지요. 살다 보면 누구나 위기가 온다고, 일찍 왔을 뿐이라고 위로했습니다. 지금은 뭐 하냐고 물었습니다.


부사관 준비한다고, 곧 시험이라고, 영어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여러 번 치른다고 하더라고요.


운동 신경이 뛰어난 사람이 머리가 좋다, 잘 준비해서 꼭 합격하라고 응원했습니다.


이래저래 얘기가 길어졌고, 아직 손님이 끊기는 시간대가 아니어서 바깥과 카운터 사이를 열 번은 들락날락한 듯. 마음 같아서는 소주 한 잔 사 주면서 들어주고 싶은데 알바라 그럴 수는 없고. 낯이 익지 않아서 이사 왔냐고 물었습니다.


친구가 여기 살아서 만나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이 보이길래 들른 거라고, 자기 얘기 들어줄 거 같아서 내게 말 붙인 거라고, 아버지에게는 못하는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고, 들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힘들 때면 언제든 꼭 들르라고 했습니다. 금, 토, 일 24시~09시 근무 시간 알려주고요.


살다 보면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좋을 거 같은, 아는 이에게는 말 못 하는 그런 얘기들 있잖아요.

근데 내 얘기는 누가 들어주남?

아, 바로 당신! 저야 독자분이 있으니까요.ㅎㅎㅎㅎ

누가 들어주기만 해도 좋을 거 같은, 아는 이에게는 말 못 하는 그런 얘기들. 제 얘기들요.



2019.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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