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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ul 10. 2024

네 친구

28화. 109인 대학 신입생 납치 사건

사진 찍어 보내라 하니 친구 셋은 활짝 웃는다. 고마운 일이다. 넷은 운명이다.


1982년 1월 12일. 춘천 103보충대 연병장. 해마저 맹추위를 이기지 못한다. 양손 주머니에 찔러넣고 허리 구부린 채 빙둘러 선 넷. 고대세요? 고대세요? 서로를 확인하곤 짠뜩 우그린 상을 펴고 활짝 웃는다. 악수를 나눈다. 온탕에 몸 담근 듯 손의 온기가 서로의 몸으로 교차한. 대학 신입생 납치 사건 109인 중 4인은 이렇게 처음 만났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kno37



12사단 신병교육대. 춘천서 신남까지 배로 실어나른다. 소양댐서 배에 타란다. 몇 십 명. 인솔 병 하나. 원주 고향인 사람. 저요. 고등학교 어디 나왔어? 원고요. 몇 회야? 23회요. 넌 저리 나가 있어. 그리곤 배 안에서 엎드려 뻗쳐,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좌석 없는 좁은 공간에서 떼로 구르니 배 들썩들썩. 나는 혼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춘천쪽을 바라본다. 배의 속도를 담아 귀를 스치는 바람이 세차다. 시간여. 선착장 하선. 인솔자 바뀐다. 언덕까지 귀 잡고 오리 걸음! 열 지어 쪼그린 채 궁둥이 뒤뚱뒤뚱 콘크리트 바닥을 오른다. 트럭 탑승. 내리니 연병장. 신병 교육대. 악몽과 저주의 5주가 시작된다. 독재 정권은 강원도 촌놈 넷을 잡아다가 경상도 병력 백여 명끼워넣었다.



https://brunch.co.kr/@sknohs/440



나는 자살할 방법을 찾았다. 구타가 무서워서 아니다. 국민학교부터 태권도로 다진 몸. 자유대련하다보면 발로 주먹으로 때리고 맞는다. 싸움도 꽤 다. 일방적으로 몽둥이 찜질도. 고교 때 체육 선생님. 씨름장 모래판에 우리 반을 앉힌다. 우리나라 활 제일 잘 쏜 역사적 인물은? 손 번쩍. 활명수요. 너 이리 나와! 선생은 씨름장에 꽂힌 길다란 삽을 빼어 양손 들어 머리 위로 높이 처든다. 내리친다. 삽자루 뚝 부러진다. 골통이 나무자루보다 세었던  거. 아님 해골이 깨진다. 부아를 못 이긴 그는 남은 자루로 사정없이 부위를 가리지 않고 몽둥이질. 잘려 삐죽 날카로운 끝으로 배 찌르고, 발로 차고. 체육 선생은 제 서러움을 내게 다 퍼붓는다. 7반은 특수반이었다. 7개 반 420명 중 성적순으로 61명을 뽑아서 모았다. 학교는 모든 걸 7반에 쏟는다. 서울대 많이 보내야 하니까. 과목에 서열이 있었다. 수학, 영어, 국어 순으로 최우선. 물리, 화학, 생물 그 다음. 지구과학, 국사, 세계사. 이런 건 시간 배정이 비슷하다. 윤리가 꼴지. 체육은  아래. 100미터 달리기, 턱걸이 주로 했다. 편 갈라 축구. 서열은 우리가 정한 게 아니었다. 대학입시에서 체육은 필기 시험이 없었다. 대신 체력장으로 100미터 달리기, 단거리 왕복 달리기, 턱걸이, 윗 몸 일으키기. 정한 거리는 시간을 쟀고 정한 시간은 수를 셌다. 꾸준하고 당일 팔다리 부러지지만 않으면 통과. 학생들은 체육 시간이 신났다. 모처럼 햇빛 아래 뛰고 노는 거. 편 나누어 축구 시합. 체육 선생은 달랐다. 학교가 차별했고 가슴 깊숙히 응어리가 자랐다. 그해 우리 학교가 전국 고교 양궁에서 우승한다. 교장 선생님에게 칭찬 받았지만 그뿐. 서열은 변함 없었다. 체육 선생님은 우리에게 으시대고 싶었던 거. 양궁부가  전국 1등 했어. 내가 키운 거야. 대놓고 자랑하긴 그러니까 그 질문을 했던 거. 우리나라에서 활 제일 잘 쏜 역사적 인물. 답 알고 있었다. 이성계. 양궁이 그만큼 역사가 있고, 무인이 활 잘 쏴서 조선을 세웠다. 너희들 공부 잘한다고 체육 선생 우습게 보지 마라. 그런 뜻을 다 담아 그 질문을 했던 거. 거기다 대고 활명수라니. 부채표 활명수. 소화 안 되면 누구나 먹는 흔해 빠진 활명수. 나도 반 친구들도 체육 선생님 한이 그리도 큰 줄 그날 처음 알았다. 웃자고 한 얘기를 삽자루로 받을 줄이야.


얘기가 샜다. 매 정도는 단련 되었다는 거 말하다 보니. 훈련소에서 두들겨 맞아 아픈 거야 참으면 된다. 약한 애들도 견디는 구타를 내가 못 버틸  없다. 저항하지 못 하는 수치심이 비수 되어 나를 찔렀다. 불법, 월권, 절차를 지키지 않은 납치. 조교는 평등했다. 누구든 차별없이 구타했다. 이뿐 아니다. 모멸의 기합은 일상이다. 거시기 머시기에 상상 못 할 구절을 더한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 심지어 ㅆㅣㅂㅏㄹㄴㅕㄴ. 멀쩡한 청년을 여자로 둔갑 시켜 희롱한다. 부당한 걸 알지만 대들지 못 한다. 그러다 정말 맞아 죽는다. 억을한 주검. 그러지 않아도 그리 죽는 이 군에서 흔하다. 은폐해 드러나지 않을 뿐. 설사 대들어 봤자 바뀌는 건 없다. 떼 구타로 키울 뿐. 이를 아는 이가 소총으로 실탄 갈기거나 내무반에 수류탄 투척. 내가 어찌하든 나를 이런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독재자는 멀쩡하다. 그래서 더 미친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한 마리 개다. 아니, 개는 멍멍 짓기라도 한다. 나는 한 마리 지렁이였다. 군홧발로 밟으면 밟히는.



ㅡㅡㅡ



훈련소에서 셋은 버팀목이었다. 잠깐 담배 한 대 함께 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었다. 교육, 훈련 중 스쳐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었다. 혼자라면 나는 견디기 어려웠을 거다. 대갈통 걸고 PX 가서 빵 사다가 똥간에 숨어서 나누어 먹는다.



https://brunch.co.kr/@sknohs/259



자대 배치. 넷은 찢어진다. 몇 달 후 한 친구를 다시 만난다. 최전방 철책은 소대 단위로 산꼭대기에 고립된다. 훼바 내려와 보니 같은 대대였던 거. 중대가 달라서 급수대 가야 만난다. 서로 보자마자 입 저절로 활짝 벌어져 웃는다. 나는 자대 후 첫 웃음. 말 나눌 시간도 담배 한 대도 빡빡하지만 그 친구만 보면 숨통이 트인다. 친구는 유일한 낙이고 희망이었다. 자살도 못 하고 어정쩡. 나는 부적응자 고문관이 되어 있었다. 병장 넷에게 둘러쌓여 집단 구타 당한다. 군 병원 다 거쳐서 대전통합병원까지 이송된다. 두 달 후 다른 대대로 전출. 갑작스런 구타 사고로 친구와 작별 인사조차 못 나누었다. 다른 친구 하나가 같은 중대. 헌데 이 친구는 나 오기 전에 다른 사고로 타 대대로 전출. 얼굴도 못 봤다. 나머지 한 친구는 목소리는 들었다. 고참이 되었고 GOP에서 둘 다 소대  상황병. 책상에 딸딸이 전화기 한 대. 상급 부대와 소대장을 전화로 연결해 준다. 그러다 친구가 이웃 소초라는 걸 알게 되고. 수시로 통화하면서 웃음 꽃. 별거 아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참 좋다.



ㅡㅡㅡ



전역. 복학. 학과가 다 다르다. 나 영문과, 영어교육학과, 국어교육학과, 사회학과. 영교과 친구와 가깝다. 일부 과목 겹치고, 군에서 얼굴이라도 보았다. 나는 영교과 건물에 가서 살다시피. 그 친구 보려고. 같이 자취. 그러다 사회 진출.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고. 나는 46세파산했다. 사업에 미쳐서 7년, 10억 빚 갚느라 10년. 합 17년 세월. 넷뿐 아니라 고교 친구, 회사 동료. 아는 사람은 전부 다 연락이 끊긴다. 그러고나서 은퇴. 어머니 장례식에 나는 누구도 부르지 못 했다. 남동생이 공무원이라 조문객, 화환은 넘쳤으나 내가 연락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고향이다. 부고 알리면 이래저래 오겠지만 보낼 염치가 없었다. 기왕 이리된 거 형식 던지고 엄마와 영원한 이별에 몰입하기로 했다. 


2월. 내가 전출 갔던 친구에게 첫 전화. 8년전 은퇴 직후부터 나는 고교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옛 추억을 불씨로 새 우정을 불태웠다. 이제는 을 만나야 할 때. 그들을 빼면 청춘의 나는 반쪼가리. 비루했던 장소, 죽음으로 치욕을 씻으려 했던 시기에 그들은 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 기억을 셋이 쥐었다. 해서 전화한 거. 기다렸다는 듯이 약속 잡고 서울 인사동서 재회. 둘은 대학 때 잠깐 봤으니 40여 년. 자취 둘도 소식 끊긴 지 20여 년. 보자마자 횔짝 웃는다. 입이 귀 밑까지 벌어진다. 한 명씩 안아본다. 청춘에 처음 쥐었던 그 몸이 초로 되어 내 품안에 들었다. 뜨거웠다. 얼굴은 웃었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친구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친구야 고마워. 참으로 고마워. 살아주어서. 반겨주어서. 보통 군대 동기들처럼 나는 동기란 말은 쓰지 않는다. 전우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가만보니 친구들도 똑같다. 그 마음 안다. 그래, 그때 우린 너무 아팠.


4월. 두 번째 만남. 고대 교정 고 김두황 추모비 앞. 납치대학생 중 여섯 사망. 의문사. 나는 안다. 그들 대다수가 자살, 아니면 구타사나 관련된 주검이라는 것을. 어제. 빗속에서 셋이 만났다. 나는 글피에 국문과 친구 찾아가기로. 서울 집인데 화천 오가며 농사짓는다고. 둘이 오붓하게 정 모으며 살아온 이야기 듣고 싶다. 카톡에 올려준 사진. 내 마음 어찌 알았나. 얼굴 크게 잡았다. 활짝 웃고 있다. 고마운 웃음이다.



전출 간 친구 / 상황병 친구

세면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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