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매기 삼거리에서 Oct 28. 2020

(감사/배려) 행복이 머 별건가요

행복을 파는 편의점


-- 행복이 머 별건가요? 그때그때 만들어 쓰는 거지요. 줄임말로 마음 씀씀이. --




편의점이 판매점이니 친절은 기본입니다. 모든 고객에게 인사 세 번. 입장 시 우렁찬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 계산 시 어서 오세요 or 반갑습니다. 계산 후 감사합니다+먹는 거면 맛있게 드세요, 아니면 안녕히 가세요, 감기 몸살약 사면 약 드시고 금방 나세요 등등.  


고객별 1 : 1 관심 보이기와 덕담, 칭찬해 주면 더 좋구요. 대학교 지근거리 아파트니 학생들이 대다수라 학과, 학년, 고향, 군대 근무지 물어봅니다. 외국인 유학생이 많아서 나라별 개인별 관심 주구요. 특히 중국 학생 많아 성, 이름을 불러주면 꽤 좋아합니다. 중국말 물어보고 배워서 중국말로 인사합니다. 한국어 틀린 발음 교정해 주면 고마워합니다. 한국어 어학당에서도 가르치기 어려운 거도 있어요. 핫꼬부리, 꼬깔콘, 스트리트 토스트 등 골라 오면 상품명 뜻이나 유래 알려 주면 재밌다고 합니다.


입학 전후 어학당에서 한국말을 의무로 배우는 학부생에 비해서 박사 과정, 교수는 한국말을 몰라서 필요시 영어로 안내합니다. 에티오피아 장관 하다 유학 온 행정학 박사 과정생이 아파트 전기 요금 고지서 들고 와서 어떻게 납부하냐고 묻더라구요. 은행은 안 받는 데가 많으니까 고지서에 쓰인 은행으로 송금하는 게 낫다고 하구요. 화장실 뻥 뚫어, 말벌 잡는 법 등 이런저런 한국 생활 애로 상담이나 해결해 줍니다. 외국인이라 좀 더 신경 씁니다.


좋은 인상 심어주면 나쁠 거 없잖아요. 생활 외교라고나 할까요. 우리나라에 유학 와서 돈 써 주는 게 고맙구요. 지방이라 이들 유학생 없으면 대학뿐 아니라 상권도 위태하거든요. 당장 이들이 비행기 타고 안 오면 편의점 문 닫아야 하고 제 일자리 사라집니다. 원룸형 아파트 400여 세대인데 유학생이 거의 반, 그중 중국 학생이 거의 반이랍니다. 베트남, 엘살바도르, 인도 사람도 있구요. 미국인도. 말년에 제가 무슨 복인가 지구 마을의 서비스 촌장이 되었습니다.


국적 구분 없이 학생들에게 칠성사이다, 오란씨 등 장수 상품 히스토리 제공합니다. 먹어 본 상품 중 맛난 것 추천하구요. 고구마과자 한두 개씩 고객에게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시식시켜 줍니다. 장수 상품인데 맛나고 가성비 굿이라고 상품 홍보하구요. 가성비 좋다를 외국인에겐 뭐라 할까요. tasty, good quantity and low price. 알아들으면 되지요 머. 빼빼로데이에 남친 없는 여학생에게 빼빼로 한 가닥씩 나눠 주는 작은 이벤트 열구요. 생일인 걸 알게 되면 초코파이 한 개 선물합니다. 음료 병 떨어뜨려 깨거나, 도시락 뜯다가 바닥에 쏟아져 못 먹고 버리면 110원짜리 요구르트라도 한 개 주면서 위로합니다. 한국 학생들도 고맙기는 마찬가지. 서울, 경기부터 대전, 충청, 부산, 경상, 광주, 전라에 제주도까지. 전국에서 다 옵니다.


졸업 시즌 학부생들은 가끔 취업 지도. 얘기 듣다가 자기소개서에 그 얘기 쓰라하면 긴가민가 그런 거도 쓰냐고 합니다. 채용자는 바로 그런 학생만의 스토리,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면접에 부를 확률 높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끄덕 꼭 자기소개서에 넣겠답니다. 영문과 학생은 영문과에서 학점 따는 비법 알려줍니다. 제가 영문과 나왔거든요. 알려주고 비법 맞냐고 하면 그렇다고 합니다. 일부러 비를 맞는 졸업반 물리학도와는 청춘과 대학의 낭만을 함께 그리워해 봅니다. 고객과 대화는 대개 카운터에서 계산 직후나 매장 밖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이루어집니다.




ㅡㅡㅡ




빼빼로데이 시즌 때였어요.


와장창 깨지는 소리. 깜짝 놀라서 카운터에서 뛰어가 보니 바닥에 와인 한 병이 깨졌습니다. 한 학생이 몸을 비튼 채 주저앉으려는 진열 칸을 어깨로 누르고 버티면서 와인 한 병을 위태위태 붙들고 있었습니다. 얼른 한 병을 받아 들고 진열 칸에 와인 두 병을 안전하게 옮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학생 얘기를 들어 보고 정황을 살폈습니다.


빼빼로데이 특선 상품을 진열하기 위해 마련한 임시 진열대로 인해 통로가 좁아졌습니다. 학생은 복사기에서 볼일을 마치고 좁은 통로에서 뒷걸음치며 몸을 돌려 방향을 바꾸다가 그 진열대를 건드렸고 와인 한 병이 바닥에 떨어지고, 다른 한 병은 떨어지는 걸 낚아채서 학생이 붙들었던 거. 진열대의 와인 진열 칸이 무너져내리는 건 몸으로 받치고. 그러니까 몸이 뒤틀려 이상한 자세가 되었던 겁니다. 학생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한 병에 25,000원 편의점 물건으로는 최고가 수준이었고, 진열대도 망가졌고, 자신이 건드려서 벌어진 일이니까요.  


원칙은 학생이 원인이니 학생 부담. 허나 학생은 최선을 다해서 피해를 줄였습니다. 학생이 방치했다면 와인 세 병이 더 깨졌을 상황. 학생을 진정시키고 사장님과 상의해서 전화 줄 테니 핸드폰 번호 적어 놓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께 전화. 사장님은 당연히 학생 부담이라고. 현장 사진과 함께 정황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한 병값을 요구할 권리 있고 받아낼 수는 있겠지만 학생 반발이 예상되고, 학생이 단골이고 특히 추가 피해를 막았다는 점을 들어 사장님을 설득했습니다. 학생이 온몸으로 막지 않았다면 와인 네 병이 다 깨졌을 텐데 그나마 한 병만 깨진 게 다행이라고. 진열대는 조립식이라 다시 끼워  맞춰 놓았으니 피해 없다 했구요.


25,000원이 부담되지만 학생은 더 부담일 거고 일부러 친구들 데려와서 다른 거 더 사가는 조건으로 봐주면 서로 이익일 거라고 사장님을 설득했습니다. 억지로 학생에게 물어내라 하면 아는 친구들 다 못 오게 할 거라는 점도 덧붙이구요. 사장님 오케이. 학생에게 전화해서 전달하니 감사하다고. 가격이 세서 손해가 크니 경쟁점 가지 말고 여기서 사고 친구들도 데려오라고 하니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이렇게 석 달 되니 학부생, 대학원생에 이어서 박사 과정, 교수들, 주민들까지 마음을 열고 저보다 먼저 인사하는 이가 늘어납니다. 굳은 얼굴을 펴고 웃으며 말 붙이기도 하구요. 제 일 덜어 주려고 상품 바코드가 보이도록 가지런히 카운터에 놓아주는 학생도 있고, 증정품 우유나 커피를 제게 선물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전과 달리 한 개라도 더 사려하는 사람, 한아름 사거나 바구니 들고 쇼핑하는 사람도 눈에 뜨입니다.


사장님 경영에도 도움됩니다. 매일 한 명 고객을 만족시키면 1년 후 365명의 단골과 그 단골이 끌어오는 손님이 가세해서 매장이 눈에 띄게 활성화됩니다. 매일 한 명 고객을 실망시키면 1년 후 365명의 단골과 그 단골이 내쫓는 손님까지 합해서 매장은 크게 위축됩니다. 고립된 아파트라도 주위와 학교에 경쟁점들이 있기에 고객 한 명 한 명을 마음으로 반기는 매장과 그렇지 않은 경쟁점 차이는 하루, 일주일은 표시가 안 나지만 달이 가고 해가 지날수록 커질 것입니다. 대개 다른 편의점들은 불친절, 고객에 무관심이 기본이니까요.


저 또한 좋습니다.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니 회춘하구요. 시간 잘 가고요. 돈은 부수적으로 얻는 거. 무엇보다도 출근할 때 누군가 저를 기다리고 있고, 근무 중에는 서로 반갑게 맞이한다는 겁니다.


여기는 행복을 파는 편의점! 저는요, 월드 베스트 편의점 알바!

행복을 파는 편의점이 행복을 어떻게, 얼마에 파는지 아시겠죠?

 

행복이 머 별건가요? 그때그때 만들어 쓰는 거지요. 줄임말로 마음 씀씀이.



2019. 12. 01


이전 06화 (추억) 슬픈 얘기네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