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미림 Jun 11. 2019

왜 우린 좋은 날에만 싸울까?


결혼, 다툼






    나와 남편의 연애 기간은 짧았다. '알고 지낸' 기간은 십 년 가까웠지만, 말 그대로 '사귄' 기간은 6개월. 그렇다. 우리는 반년만에 결혼한 부부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많이 겹쳤고, 그래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결혼을 결정하는 데에는 몇 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깊이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깊이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리는 꽤 격렬히 싸웠다.






    우리의 첫 부부싸움은 결혼식을 끝낸 바로 그 날 오후에, 그러니까 부부가 된 지 약 네 시간 만에 벌어졌다. 글로 적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사소한 문제로 토라진 우리는 저녁 내내 크게 싸우며, 결혼식의 피로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버금가는 피로를 더 얻고야 말았다.


    그로 인한 충격은 꽤 오래갔다. 결혼식 후 삼 주가 지나서야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었데, 그 삼 주의 시간 동안 나는 리가 너무 서둘러 결혼한 건 아닐까, 하는 께름칙한 생각을 자주 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또 그렇게 행복하고, 좋고, 사이좋게 잘 지내기를 반복했다. 혼란스런 날들이었다.


    신혼여행은 참 신기한 여행이었다. 아름다운 유럽에서 정말 평안하고 행복하다가도 느닷없이 찾아오는 부부싸움에 모든 평화를 빼앗기기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감정의 양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모양. 싸울 때면 그 눈부신 부다페스트의 야경도 눈에 안 들어왔고, 탄식에 가까운 감탄을 연발하던 맛있는 굴라쉬도 모래알이 섞인 것 마냥 목에서 까끌거렸다. 반대로 사이가 좋을 때면 사람에 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프라하의 거리에도 낭만이 흘렀고, 돈 내고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뻣뻣했던 닭고기 구이도 꿀맛 같았으니, 신기, 아니 기묘한 여행이 바로 우리의 신혼여행이었다.


    그렇게 기묘했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일상도 역시, 기묘했다. 마냥 사랑스러웠던 남편의 얼굴이 어느 날은 너무너무 얄미워 보일 때도 있었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행동이 갑자기 눈에 거슬리고 밉살스럽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나에게만 보이는 고유의 것은 아니었다. 남편도 똑같았던 거다.


    그렇게 꾹꾹 참으며 속에 조금씩 조금씩 쌓이고 있게 한 번에 터지고를 반복했는데, 요상하게도 그렇게 크게 싸운 날은 꼭 좋은 날이었다. 결혼기념일이나, 오래간만에 쉬는 날이나, 내 생일 같은 날들 말이다.






    지난 토요일은 결혼하고 두 번째 맞이하는 내 생일이었다. 첫 번째 생일은 친정에서 다 함께 보냈으니, 이번 생일은 남편과 단 둘이 보내는 첫 번째 생일인 셈이었다. 괜히 기대하는 마음이 쫑긋 솟았다. 마침 그날이 토요일이니, 근사한 곳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싶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이곳저곳을 SNS로 둘러보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하지만 생일날, 우리는 또 싸웠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에 너무나도 큰 의미를 부여하며, 서로 속이 상해버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 크다는 건 정확한 사실이었다. 나는 바람 빠진 풍선, 아니, 땅에 떨어져 와장창 깨져버린 수박 같이 조각난 마음을 모아 들고 집을 나와버렸다.






    혼자 카페에 앉아, 우울하고 외로운 생일날을 보내고 있다니. 친정 식구들도 친구들도 모두 인천에 있으니 만날 사람도 없었다. 어휴, 이게 뭐야. 책도 눈에 안 들어오고, 커피도 맛이 없었다. 턱을 괴고 앉아서 창밖을 보는 내가 처량게 느껴졌다.


    그때, 지이이잉-. 카톡이다.

    '내가 미안해. 얼른 들어와.'


    저 열 글자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게 느껴졌다.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어떻게 이토록 빨리 마음이 풀릴까.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웅'이라고 할까, '응'이라고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응'이라고 도도하고 짧게 답을 했. 하지만 답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애인과 꽁냥대는 모습이었을 거다.






    삐빅 삐비빅 삑, 띠로리. 문을 열었더니, 남편이 아직이라고 소리를 친다. 뭐야~,하며 거실로 가니 풍선이 한가득에, HAPPY BIRTHDAY 가랜드가 걸려있다. 꽃다발과 케이크가 식탁 위에 놓여있다. 그리고, 얼굴에  맺힌 남이 보였다. 겸연쩍고, 어색하고, 설레고, 반가운 표정이었다.


    내 표정도 남편과 같았을 거다. 우리는 어색하게 마주 앉아 초를 다. 내가 나간 사이, 남편은 다이소로 뛰어가 장식할 거리들을 사고, 다시 파리바게트로 뛰어가 케이크를 사고, 또다시 꽃집으로 뛰어가 꽃을 샀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뛰어와 풍선을 불고, 준비한 선물을 꺼내고, 그 옆에 엎드려 편지를 썼다 했다.


    자, 이게 제일 중요한 거야. 나중에 읽어봐요. 편지를 건네며 말을 덧붙이지만, 나는 홀랑 봉투를 열고 편지를 읽어버렸다.





사랑하는 ㅁㄹ

우리는 왜 좋은 날은 싸우지 않고는
맞이할 수 없는 걸까?
아마 나의 좁은 속 때문이지 싶어.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자기를 생명 다 해 사랑해야 하는데,
잘잘못을 따지고,
내 기분만 따질 때가 많은 것 같아. 미안해.

조금 더 자기를 생각하고,
조금 더 자기의 마음을 헤아리고,
무엇보다도 자기를 사랑할게.
매번 확인해야 하지 않게,
매번 궁금하지 않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예쁘다고 말하고,
또 그렇게 느껴지도록 사랑할게.

생일 축하해. 사랑해.

ㅎㄱ






    그의 편지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편지를 쓴다면 꼭 그렇게 써 내려갔을 것 같았다.


    왜 우린 좋은 날에만 싸울까?


    아마, 너무 좋아서. 서로를 가장 많이 사랑해주고, 또 서로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날을 보내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 기대로 부푼 마음은 작은 가시에 톡 하고 찔려도 터져버리기 쉬우니까, 꼭 커다란 풍선 같으니까.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남편이 출근을 한 사이에 그의 편지를 곱씹어보니, 그 안에 정답이 다 들어 있었다.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마음을 헤아려주고, 조금 더 사랑해주고. 또 그런 마음들이 상대방이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주고. 결국 나의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주면 싸움은 잦아들 거 같았다.


    나는 그 편지를 거실에서 가장 눈에 잘 띄 곳에 붙여 놓았다. 남편은 그걸 보고, 이런 걸로 협박하다니!, 했지만 사실 나 보려고 둔 거다. 나중에 우리가 딸을 낳든, 아들을 낳든, 자식이 생기면 꼭 가보로 전해주고 싶은 오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너희 아부지가 아니, 내 남편이 얼마나 따뜻하고 지혜로운 사람인지 아니?, 하며 아이들에게 자주 자랑할 거다. 편지 낡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더 좋다. 우리가 연습하고, 익히고, 삶에 게 해서 우리의 인생으로 사랑을 알려주고 싶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매거진_소박한 결혼산문

2018.05.05.~

@john.and.molly

Photo. @drawing.molly.kwon

이전 05화 결혼서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