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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Aug 09. 2019

Let's fall in love

Even lazy jellyfish do it


결혼, 즐거움






    언제부턴가 밝은 LED 빛 말고 자그마한 노란 전구 불빛 아래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온통 깜깜한 가운데 식탁에만 좁은 빛이 내리면, 그 자리는 비밀스럽고 사랑스러워진다. 스테이크가 아니라 떡볶이를 먹어도, 된장찌개를 끓여 둬도 상관없다. 가끔은 유튜브로 웃긴 영상을 보며 저녁을 먹기도 하고, 또 가끔은 대화 없이 조용히 먹기도 하지만, 그것도 뭐든 상관없다. 빛 아래로 몸을 약간 기울인 채 저녁을 먹는 시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늑하다. 밥을 다 먹으면, 여전히 좁은 빛 아래에서 냉장고에서 꺼내 온 요맘떼나 메로나를 먹거나 과일을 먹는다. 그러다가 흥이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한다. 춤, 말이다.






    춤이라니! 깍쟁이인 내가 다른 사람(물론 남편이지만) 앞에서 춤을 추다니. 중학교 수련회 때 캠프파이어 앞에서 춘 것과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때 선배 손에 이끌려 나가 억지로 춘 것 말고는 춤을 춰 본 일이 없었다. 그마저도 내겐 이불킥을 몇 번이고 해댈 만큼 창피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클럽이나 파티 내 인생에서 전무했으니, 말 다했다.


    그런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고 있다니. 가끔은 스스로도 깜짝 놀라지만, 곧 내 옆에 서서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곤 안심하기를 자주 했다. 음악은 샹송도 좋고, 가요도 좋았다. 너무 빠르지 않고 또 너무 느리지 않은 박자의 음악이면 어떤 장르든 너끈했다.


    왜 춤을 출까. 저녁식사 후의 만족감과 어두컴컴한 공간, 그리고 노란 불빛이 흥이 오르게도 했을 거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밝은 대낮에도 흥은 올랐으니까. 맛있는 음식이 없어도 됐다. 치토스를 먹다가도 춤을 추고 싶어 졌으니까.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기쁠때나 행복할 때,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은 언제든 내 안에서 피어 올랐었다. 체면과 상황, 부끄러움 때문에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결국 내가 춤을 출 수 있게 된 건, 아마 사랑 때문인 것 같다. 춤을 추고 싶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 잘 추든, 못 추든, 어떤 춤을 춰도 부끄럽지 않은 것도. 상대방의 막춤마저 귀엽게 바라봐 줄 수 있는 것 역시 사랑 때문일 거다.






    오늘 혼자 영화를 보다가 춤 추기 딱 좋은 노래를 듣게 됐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듣기 위해 플레이 리스트에 얼른 넣어 뒀다. 요즘 남편의 춤 솜씨가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 같아 은근히 신경 쓰이지만, 깍쟁이 탈을 벗고 막춤을 추는 나를 예뻐해 주는 것에 만족하며 함께 춤을 춰야지, 생각했다.


    아, 그리고. 자꾸 춤 얘기를 하니까, 우리가 마치 엄청난 걸 추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이 된다. 음음, 우리가 추는 춤은 그냥 손을 맞잡고 거실을 삥삥 돌거나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흔들어대는, 하지만 꼭 박자만은 잘 맞추는 그런 춤이라는 걸 고백해 둔다.










Romantic sponges, they say, do it
Oysters down in Oyster Bay do it
Let's do it, let's fall in love
Cold Cape Cod clams, 'gainst their wish, do it
Even lazy jellyfish do it
Let's do it, let's fall in love
Electric eels, I might add, do it,
Though it shocks 'em, I know,
Why ask if shad do it?
Waiter, bring me shad roe!
In shallow shoals, English soles do it
Goldfish in the privacy of bowls do it
Let's do it, let's fall in love

- Conal Fowkes <Let's do it>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OST)

매거진_소박한 결혼산문

2018.05.05.~

@john.and.molly

Photo. ⓒMadhukar Kumar,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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