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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Jun 30. 2020

싸구려 텐트와 호텔

태안

    차 트렁크에 넣어둔 삼만 원짜리 그늘막 텐트면 충분했다. 담요는 보드랍게 우리를 안았고, 비와 습한 바깥공기는 싸구려 텐트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해지기 전에 바다에 나가 캐온 동죽을 모닥불에다 구워 먹고 막 누운 참이었다. 타닥타닥, 틱, 다시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모양은 잔영으로 남아 좁은 텐트 안을 채웠다.


    "해 지는 걸 보고 싶었는데."


    모닥불의 잔영이 수평선에 걸친 낙조처럼 보일 때, 두 팔 머리 고이고 누운 남편이 한 말이었다. 우리는 그날 낙조를 보러 서해에 갔지만, 흐린 날씨 탓에 보지 못했었다.





-

    안면도에 오기 전, 제대로 된 호캉스를 누려보자는 마음에 서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틀을 보내고 있었다. 조식을 주고 애프터눈 티도 주고 저녁식사도 챙겨준다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어딨냐 싶었다. 어두컴컴한 조명에 눈이 침침했지만, 파삭파삭한 이불의 감촉이 좋아 발가락으로 이불을 자주 툭툭 차며, 우리는 그 호텔방을 좋아했다. 그렇게 누워서만 시간을 보냈다. 책도 보지 않고. 발가락만 까딱거리며, 결국엔 아무것도 안 하고.


    호텔에서의 둘째 날, 두 번째 프터눈 티를 마시고 두 번째 저녁 식사를 먹고 나서 속이 느글거렸다. 분명 맛있는 것들이었지만 속에서 음식을 받지 못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속은 나아지지 않았다. 파삭파삭한 이불도 무겁게만 느껴졌다.


    "우리 해 지는 거나 보러 가자."


    우리는 다음 날, 조식도 먹지 않고 짐을 싸서 나왔다.


    "네비 어디로 찍어야 하지?"

    "서해."

    "서해 어디?"

    "안면...도?"

    "태안, 거기?"


    우리는 무작정 서해안 고속도로를 탔고, 빠져나왔다. 바다 쪽 도로를 따라 해수욕장 푯말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몇 번 했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라 차를 세웠다. 바닷물이 빠지고 있었고, 몇몇 가족이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있었다. 우리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맨 손으로 갯벌에 들어가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넉넉한 바다. 깊이 파지도 않았는데, 바다는 제법 실한 조개 몇 개를 우리에게 선물로 내어주었다. 동네 아주머니가 지금 우리가 캔 조개는 동죽이라는 조개고, 맛조개는 맛소금으로 잡아야 하니까 내일은 소금을 가져오라고 알려주셨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르고 조개만 캐다가 다리가 저려 일어섰다. 까맣게 뻘이 낀 손톱과 헝크러진 머리카락, 눅눅히 젖은 온 몸은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이 가려주었다. 우리는 근처 슈퍼에서 장작과 캠핑 화로와 초장과 집게를 샀고, 겨우 찾은 무료 야영지에 차를 댔다. 우리의 어설픈 첫 번째 캠핑이었다.





-

    그렇게 우리 조개를 구워 먹고 싸구려 텐트에 누운 것이었다. 해송에 고여있던 빗방울이 텐트 위로 떨어질 때마다, 탁, 탁, 탁 하는 소리가 났다.


    "내일은 해가 날까?"

    "몰라."

    "근데, 해 지는 거 안 봐도 좋다."

    "응. 호텔보다 훨씬 좋아."

    "맞아."


    새벽녘엔 너무 추워서 도망치듯 차로 들어가 불편한 잠을 자야 했다. 뒤로 젖힌 운전석에 누워 다시 잠에 들락말락 할 때, 나는 파삭파삭한 호텔 이불과 고급스러운 저녁식사보다 이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여행이라면 호텔보다 더 좋았다.


2019, 태안, 대한민국


ⓒGrant Durr,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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