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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는즐거움 Feb 01. 2022

3부-현실과 타협한 부자/포기의 즐거움

포기의 즐거움

나는 49세에 현실과 타협한 부자가 된다. 

이 생각과 계획은 나의 삶을 새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로 나는 포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현실과 타협한 부자가 되기 전 나는 누군가 어떤 문제에 대해 나에게 물어보았을 때 "모르겠다"라는 말을 잘하지 않았다. "모르겠다"라는 말 대신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라는 말로 대신했었다. "확인해보고 알려줄게"라는 말은 나에게 다른 업무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업무만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나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였다. 왜 "모르겠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 때문인지 성공이나 승진에 대한 욕심 때문인지, 타인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 정확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부자가 된다는 계획을 세운 이후로 나는 "모르겠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예전의 습관이 남아있어 시니컬하게 "모르겠다"라고 툭 뱉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모르겠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의 태도는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서 엔지니어로서 기술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내가 타인의 관점으로 나의 태도를 결정한 그 순간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부자 계획을 세운 이후 나는 마음에도 없는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라고 말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내가 포기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포기일 수도 있고, 승진과 회사에서의 성공에 대한 포기일 수도 있다. 어떠한 것이 되었건, 내가 포기한 그 말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누군가 술자리나 회식을 제안해 오면 거절하지 못했다. 술자리 또한 업무의 연장이라는 생각과 거절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나에게 억지로 참석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러한 술자리가 대체로 싫었었다. 그리고 참석한 술자리에서 나는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술이 세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고주망태가 되어도 술을 마셨다. 나를 잘 알지 못했던 회사 동료는 코로나로 술자리를 잘 못 하는 것이 아쉽지 않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었다. 코로나 시대라는 상황으로 술자리를 갖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가끔 누군가 나에게 술자리를 제안했을 때 그냥 가기 싫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나는 "NO"라고 정중하게 말하게 되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코로나로 인해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나의 의지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 그 소심한 용기는 내가 부자가 된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SNS를 즐겨하지 않는다. 또한 의무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안부 인사를 묻는 것도 귀찮아한다. 그렇지만 나는 때때로 안부 인사를 묻고 내키지 않는 약속을 잡기도 하였다. 나의 부자 계획이 완성된 이후 나는 의무적인 안부인사를 보내지 않는다. 안부인사를 보내지 않고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은 나의 인맥을 점점 좁히긴 했지만 전혀 싫지가 않았다. 인맥은 사회 생황에서의 성공을 위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그 인맥관리라는 것이 너무나 귀찮다. 나의 부자 계획 항목 중 인맥으로 인한 소득은 없다. 나의 계획상 부자가 되기 위한 인맥관리는 필요 없다. 누군가에게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귀찮은 형식적인 인맥관리가 싫을 뿐이고 이제 그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타협한 부자계획이 완성 된 이후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나에게 부담이 되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 되기, 의무적인 안부인사, 내키지 않는 술자리, 내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회사에서의 성공 등등..

그냥 듣기에 너무나 당연히 안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이렇게 포기한 것들은 결과적으로 더 좁혀진 인간관계, 회사에서의 낮은 승진 가능성 등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 틈을 부자 이후의 삶에 대한 상상의 즐거움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키지 않는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된 작은 용기는 코로나와 함께 내가 계획한 부자 설계로 인하여 가능해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 눈에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포기한 것들에게서 얻는 즐거움이 너무나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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