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물'짜릿한 투자의 결말
운이 좋았던 나는 두 번째 외국계 회사의 한국 연구소 철수 이후 다시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기업에서의 생활은 5개월이 전부였다. 펌웨어(하드웨어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였던 나는 펌웨어 지식이 전혀 없었던 팀장 밑에서 무리한 펌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포함되었다.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도 적은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그 팀장은 직원을 부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짧은 회사생활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고려하던 나는 지인의 추천으로 외국계 기업에 다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외국계 회사에 차츰 적응이 되어 나갈 무렵, 나는 '올바른 투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경제 유튜브가 막 활성화되는 시점에 여러 유튜브 채널과 책을 통해서 어떤 투자가 '올바른 투자'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동매매를 개발했던 동료에게서 “해외선물” 투자에 대해 듣게 된다.
'해외선물'은 그동안 고민하던 '올바른 투자' 방법과 거리가 멀었다. 더군다나 대학교 동기중 친한 친구가 해외선물 투자 실패로 개인파산 신청까지 했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해외선물 투자에 조심스러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말처럼 나는 이미 해외선물 계좌를 개설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외선물이라는 짜릿한 투자가 시작되었다'
해외선물은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투자 상품으로, 상품의 가격이 오를 때뿐만 아니라 내릴 때도 방향을 맞출 수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 투자상품이다. 당시에 원유와 나스닥을 기초로 하는 해외선물 상품에 투자했는데 레버리지가 약 8배에 달하였다. 1000만 원을 투자했으면 실제로는 8000만 원을 투자한 것과 같은 폭으로 지수의 1% 등락은 내 계좌의 8% 등락으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짜릿한 투자였다.
해외선물에 선택된 전략은 마틴 게일을 응용한 전략으로 처음 소량의 금액이 투자되고, 투자 수익이 나면 매도, 떨어지면 이전 투자금액의 2배씩 물타기 하는 전략이다. 동전의 홀짝을 맞추는 게임에서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한 번만 맞추면 돈을 버는 구조지만, 모두 틀렸을 경우 전부를 잃는 구조이다. 또한 물타기를 2배씩 하기 때문에, 물 타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단점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돈의 한계가 있어서, 2배씩 물타기를 할 수는 없었고, 볼린저 밴드를 보고 적정시점에 계속 물을 타서 평단가를 낮추는 방법으로 투자하였다.
해외선물은 하루 24시간 중 23시간 투자가 가능하다. 하루 종일 호가창을 볼 수밖에 없다. 낮에는 거래량이 활발하지 않다가 미국장이 열리는 저녁부터는 거래가 활발해진다. 거래가 활발한 시점에 높은 변동성으로 지수의 방향을 맞출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확률도 높았다. 그래서 새벽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극도로 높은 레버리지로 모든 나의 관심은 해외선물 계좌에 쏟아부었고,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거래하기 때문에 점점 폐인이 되어갔다. 잠이 부족해 회사에서는 멍한 상태로 일을 하다가 다시 저녁이 되면 초 집중 모드로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말에 장이 열리지 않아 부족한 잠을 주말에 보충했다.
해외선물 투자를 계기로 자동매매를 개발했던 동료들이 다시 모였다. 모두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이 주로 모임의 시간이었다. 스터디 카페의 작은 방을 빌려 금요일 늦은 밤까지 해외 선물 투자 방법에 대해 활발히 토의를 했다. 첫 일주일이 지났을 때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했던 친구의 투자 이익이 2천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도 투자 금액을 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투자 금액은 1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8배의 레버리지이기 때문에, 8억을 투자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모든 금액을 한 번에 투자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물타기를 하면 할수록 금액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익으로 매도가 되지 않으면 거의 모든 금액이 투자된 상태가 되었다. 드라마라도 한편 보면 천만 원이 없어졌다 생겼다 하는 수준이 되었다. 짜릿한 투자를 넘어서 그야말로 도박이었다.
처음 한 달 정도 원유 가격이 거의 박스권에서 움직였다. 박스권에서 지수가 움직였기 때문에, 물을 타는 전략은 적중할 수밖에 없었다. 물을 탄 금액은 더 큰 수익이 되어 돌아왔고, 레버리지 효과로 수익은 극대화되고 있었다.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이 상태로 수익이 몇 달간 이어지면 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아파트를 매수하지 않았었던 동료는 이미 주변 아파트 가격을 알아보고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풍족했다. 저녁이라도 한번 먹게 되면 서로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모든 투자 실패가 그렇듯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9년 12월, 매도(유가가 떨어지면 돈을 버는 것에 배팅)에 걸렸던 투자금액은 유가상승으로 인한 물타기로 점점 금액이 늘어났다. 나의 바람과 달리 유가는 급락 없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어서 이익으로 매도가 되지 않았다. 물타기로 인하여 마침내 거의 모든 자금이 투자되었다. 하루 등락률이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금액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유가는 비록 2-3프로 올랐을 뿐이지만 나의 계좌는 2천만 원이 넘는 손해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게 약 이틀을 거의 뜬 눈으로 버티다 결국 모두 손절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해외선물의 높은 수수료 때문에 키움 증권의 VIP가 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VIP지만 다른 말로는 ‘호구’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안녕하세요 호구님. 이번에 저희가 준비한 상품을 보내드렸습니다"
키움증권에서 다양한 상품을 집으로 보내왔다.
해외 선물을 투자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 20만 원 버는 게 너무 쉽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뒤에 덧붙는 말을 그때는 몰랐다.
하루 20만 원을 벌면 200만 원을 벌고 싶은 욕심이 나를 결국 실패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손절을 하고도 10일 정도는 더 투자를 했었다. “하루에 10만 원을 벌면 그날 배팅을 그만두자” 이런 생각으로 투자를 더 했지만, 10만 원을 벌든 20만 원을 벌든지 상관없이 계속 배팅을 하는 내 모습을 보았고, 그렇게 하면 할수록 이익이 아닌 손해만 더 늘어갔다.
마지막으로 투자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둔 12월 20일경의 어느 날, 휴가로 인하여 낮부터 해외선물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이미 큰 손실을 기록해서 1000만 원 정도의 투자금으로만 투자를 하고 있었다. '20만 원만 벌면 그만두자'라는 생각은 그날도 하고 있었다. 몇 번의 클릭으로 20만 원을 벌었다. 그렇지만 나의 다짐과 달리 나는 투자(클릭질)를 계속하고 있었다. 뭐라도 홀린 것처럼 투자를 멈출 수 없었던 찰나에 나스닥 지수가 대가 투자했던 방향과 반대로 급등을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손실로 전환되었다. 손실액이 점점 커지자 나는 짜증이 섞인 감정이 강하게 들었다. 급등하는 지수를 쫓아 상승에 배팅을 걸었다. 내가 상승에 배팅을 하자 귀신같이 지수가 급락했다. 동전의 앞, 뒤만 맞추면 되는 50% 게임인데 나는 정확히 반대로 배팅하고 있었다. 2시간 정도 투자로 150만 원이 사라졌다. 내 인생에 다시는 하지 않게 될 '해외선물'투자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다행히 이전 회사를 나올 때 받은 퇴직금을 해외선물에 투자하지는 않았다. 퇴직금은 퇴직연금 IRP에 넣고 주식(ETF) 투자로 수익을 보고 있어서, 해외선물의 손해를 주식투자의 이익으로 대부분을 상쇄시킬 수 있었지만, 같이 했던 동료는 그 이후 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은 상상하기 힘든 액수의 손해를 보고 해외선물을 포기하게 되었다
'올바른 투자'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던 시기에 접했던 해외선물은 나에게 상당한 손해를 입혔지만 어떤 투자 방법이 올바른 지에 대해 더욱더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해외 선물을 계기로 나의 투자에 대한 불나방 기질은 너무나 많이 수그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