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라틴어 수업
라틴어는 뭔가 특유의 멋이 있어요. 노는 걸 좋아하던 전 주로 영화나 소설, 게임등으로 접했는데 라틴어 특유의 독특한 억양과 영어와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오래된 언어라는 점에서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라틴어를 배우겠단 생각은 해본 적 없었어요. 워낙 어려운 언어이기도 하고, 영어도 할 줄 모르는 내가 라틴어는 접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죠. 간혹 외국어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듣긴 해도 라틴어를 배운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요.
실제로도 현대에 라틴어를 쓰는 경우는 잘 없어 실용성, 효율성을 따지자면 차라리 스페인어나 다른 언어를 배우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라틴어과의 수강신청이 인기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라틴어가 학생들에게 그렇게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 안 했으니까요. 대체 무엇이 학생들이 순수하게 배우고픈 열망에 이끌렸는지 궁금했습니다.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 모로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니까요.
(Summa Cum Laude = 수석 졸업생)
젓가락질을 잘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사소한 것 마저도 비꼬는 사람들 때문이래요.
이런 비난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쉽지 않아요. 자만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돌아보려 하지만 수많은 모진 말에 괜히 위축되고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결국 내가 하는 일들이 믿음이 가지 않고 의욕이 떨어지죠.
그래서 그러나 봐요.
조금 더 좋은 말들을 하려는 것도.
그게 아부처럼 느껴지더라도.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든 사랑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는 뭔가를 만나고 그만큼 노력을 한 다음에 찾아오는 이 우울함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아마도 또 다른 세계가 여러분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부끄럽지만 바라는게 없어 그런지 간절히 뭔가에 매달려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저도 처음 공모전을 준비했을 땐 열정적이었어요.
그때도 그렇게 열심히 하진 않았고요. 참가에 의미를 두자. 한 편의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경험 정도만 바랐어요. 그래서 작품이 완성되고 나선 어느 정도 만족한 상황이었죠.
그러던 중 사고가 생겼어요. 파일이 깨져버린 통에 완성된 글을 날려버린 거예요. 급히 백업했던 파일을 찾아봤는데 그게 한 달 전에 작업한 것이었어요.
포기하려 했어요. 3일 남았는데 분량은 1/3이 날아갔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준비해 둔 기획서와 작품을 보니 아깝더라고요. 무엇보다 제출까지가 목표였기에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쓰기 시작했어요. 한 번 써서 그런지 마감이 닥쳐서 그런지 몰라도 평소보다는 빨랐어요.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했죠. '잘 안되면 자야지.'라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해 에너지드링크를 6병이나 마시 3일을 밤샜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6시가 마감이었는데 5시 45분에 메일을 보냈죠.
미완성이었지만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아쉬울 것 같았는데 막상 끝내니 후련했어요.
좋았던 건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인데 스스로 집착하고 이뤄냈다는 점이었죠.
제게 상처 준 사람에게 마음속 깊이 화를 내고 분노했어요. 그의 무례함에 섭섭한 감정을 넘어 치욕을 느끼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가 과연 나에게 상처를 주었나?’ 하고요. 제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니 그가 제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제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가 아팠던 거예요. 다시 말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그때부터 저는 상처를 달리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타인과의 선이 굉장히 좁은 사람입니다.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또 누군가 속내를 드러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타인의 비밀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었거든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개인사를 떠벌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선을 지키려 노력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A, B와 술을 마시던 중 개인사를 듣게 되었어요. 원래 가정환경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날은 그 가정사를 더 깊고 세세히 듣게 되었죠. 물론 전 불편했습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지만 섣부른 말을 하면 친구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 최대한 그의 마음을 공감하려고 애썼죠. 그렇게 시원하게 속내를 털어내던 친구가 한바탕 털어내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뜻밖의 말을 했어요.
"고맙다. 이야기해 줘서."
저는 좀 당황스러웠어요. 실컷 한풀이를 들었는데 그게 왜 고마운 건 지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A도 마찬가지였나 봐요. 걔도 헛웃음을 치며 되묻는데 B가 말했어요.
"그래도 부끄러웠을 텐데 우리니까 이런 이야기도 한 거잖아."
B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친구였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사소한 것도 곧 잘 꺼내곤 했죠. 그런 면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알고 싶지 않은 면도 알게 되니까요. 또 그만큼 자신도 남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니 부담되기도 했습니다. 근데 그게 B에게 있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애정표현, 친근감의 표시였죠.
B의 말은 어쩌면 좁은 선의 기준으로 사소한 것들까지 상처로 만들지 않았나 다시 생각해 본 계기였습니다.
무엇을 위해 달릴 때 존재의 만족감을 느끼는가.
과거에 얽매여 후회만을 하지 않았는지
미래를 걱정하며 망설이고 도망치지 않았는지
과연 전 오늘을 위해 충실이 살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낯선 언어를 통해 옛사람들의 지혜를 배우고 삶을 돌이켜보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