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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Sep 16. 2024

"행복에도 '유통기한'이 있을 수 있다고?"

즐거움의 반감기: 쾌락 적응 이론이 말하는 행복의 비밀

행복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어떨까?


처음 들으면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쾌락 적응 이론'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우리의 행복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설명한다. 오늘은 이 흥미로운 이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이 이론의 기원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리학자 필립 브릭먼(Philip Brickman)과 도널드 캠벨(Donald Campbell)이 "쾌락적 상대주의와 행복의 계획(Hedonic Relativism and Planning the Good Society)"이라는 논문에서 이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당시 심리학계에서는 인간의 행복과 만족도가 객관적인 생활 조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더 많은 돈을 벌거나 더 좋은 환경에서 살면 당연히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릭먼과 캠벨은 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겪은 후에 일시적으로 행복이나 불행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인간의 행복이 절대적인 조건보다는 상대적인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것이 쾌락 적응 이론의 핵심이 되었다.



이 이론은 이후 많은 연구를 통해 검증되었고, 현대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대표적인 예로 1978년 브릭먼, 코츠, 자노프-불먼이 수행한 연구가 있다. 이들은 복권 당첨자들과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들의 행복도를 비교했다. 연구 결과, 초기에는 복권 당첨자들이 더 행복했고 하반신 마비 환자들은 불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그룹의 행복도가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했다.


이처럼 쾌락 적응 이론은 인간이 극적인 긍정적 변화나 부정적 변화를 겪은 후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정서적 기준선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설명한다. 즉, 우리 뇌는 새로운 상황, 심지어 기적 같은 상황에도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하여 그것을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쾌락 적응의 메커니즘은 우리 뇌의 '쾌락 중추'와 관련이 있다. 이곳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여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 좋은 일이 생기면 도파민이 급격히 증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뇌가 이 높은 수준의 도파민에 적응하게 되어 같은 자극에 대해 덜 민감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새 옷을 샀을 때의 흥분, 새 집으로 이사했을 때의 기쁨, 혹은 연인과의 첫 데이트에서 느끼는 설렘 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옅어지는 것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는 인간이 새로운 자극에 빠르게 적응하는 본성을 보여준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한 사례들이 있다. 이는 단순히 쾌락 적응 이론을 활용했다기보다는, 이 이론이 설명하는 인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지속적인 만족을 제공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Lush)'는 고객들이 같은 제품을 반복 사용하면서 느끼는 효과나 향에 대한 둔감화를 고려했다. 이에 '신선한' 화장품이라는 콘셉트를 도입했다. 제품에 유통기한을 명시하고, 계절마다 한정 제품을 출시하며,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를 통해 고객들에게 지속적인 신선함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을 펼쳤다.


미국의 '달러 셰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은 면도기에 대한 고객들의 초기 흥미가 시간이 지나며 감소하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단순한 면도기 판매를 넘어, 매월 새로운 면도 용품을 배송하는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기에 유머러스한 마케팅과 개인화된 제품 추천을 더해 지속적인 새로움과 즐거움을 제공했다. 이 전략으로 대형 브랜드가 장악한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Dollar Shave Club


독일의 온라인 안경 판매업체 '미스터 스펙스(Mister Spex)'도 주목할 만하다. 안경은 보통 장기간 사용하는 제품이지만, 그들은 고객들이 시간이 지나며 안경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가상 피팅' 서비스를 도입했다. 고객들은 언제든 새로운 안경을 가상으로 착용해볼 수 있어, 지속적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탐색하고 구매 욕구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정기적인 새 디자인 출시와 개인화된 스타일 추천으로 고객들의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쾌락 적응 이론은 우리의 행복에도 일종의 '유통기한'이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경험이나 성취로 인한 기쁨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일상의 작은 기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고객의 만족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혁신과 새로운 가치 제공이 필요하다. '행복의 유통기한'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행복의 유통기한을 아는 것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현재의 행복을 더욱 깊이 음미하고, 동시에 새로운 행복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삶. 이것이 바로 쾌락 적응 이론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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