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엔 이름 없는 빵집이 하나 있다. 간판이 있긴 하지만 그게 빵집 이름이라고 부르기에는 뭐한 것이 그냥 하얀 기본 간판위에 ‘케이크 XXX’ 이라고만 덩그러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있는 모든 빵집 메뉴판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빵집 이름이라니. 요즘 같이 개인들도 자기 홍보에 열을 올리는 시대에 빵집 이름 치고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이 어설픈 느낌이다.
매장의 분위기도 어두컴컴하다. 반투명 시트지가 붙여진 창문 때문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오늘 빵집이 문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빵집 문 앞에 다다라서야 천장에 달린 조그만 백열전구가 켜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여는 날도 정해져 있지 않다. 평일에도 문이 닫혀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어떤 날은 늦은 오후에 열기도 한다.
이 정체 모를 빵집에 시선이 가게 된 것은 이상한데? 를 품은 갸우뚱 때문이었다. 떠올릴만한 특이한 이름도 없고, 여는 시간도 불확실한 이 곳이 어느 순간부터 묘한 기다림으로 다가왔다.
다른 일을 보고 우연히라도 빵집이 있는 골목을 지나갈때면 나도 모르게 고객을 빼곰히 들고 저 멀리서부터 빵집이 문을 열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바깥문이 반쯤 열려 있고, 그 틈 사이로 작은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를 안도의 숨을 내쉬기까지 하면서. 동시에 어제 사둔 빵이 아직 냉동실에 한가득 남아있지만 언제 또 열지 모르니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기도 했다.
열린 문 틈을 비집고 들어가보니 아침에 막 만든 빵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나름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피자빵은 벌써 팔린 듯 했다. 문을 여는 날도 들쑥날쑥이고 인터넷에도 검색되지 않는 이 곳을 사람들은 어떻게 알아본 것일까?
매장을 한 바퀴 돌아 남은 빵 중에 몇 개를 골라 담아 돌아왔다. 유명제과학교 출신의 파티쉐가 천연발표종으로 만드는 곳이여서 그런지 베이커리의 기본 반찬 격인 소보루빵과 팥빵도 푸석푸석한 맛 없이 식감이 쫄깃쫄깃하다.
팥빵 안에는 희끄무레한 팥 대신 진한 색의 팥이 빈 공간없이 빽빽히 들어있었다. 가격은 여느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저렴하다. 우와 하는 맛은 아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생각나는 맛이 이 집 빵 안에 들어있다.
맛도 괜찮고 가격경쟁력도 있는데 왜 홍보를 안할까? 궁금해졌다. SNS만 열면 각종 이벤트와 홍보 피드가 난무한 세상에서 불안하지는 않을까? 아마 나였다면 다른 빵집들을 죄다 찾아보며 벤치마킹을 하겠다고 했을 것이고 인스타, 블로그 마케팅 하는 법을 알려주는 강의를 찾아보고 있었을 텐데.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꼭 마케팅을 해야만 할까? 마케팅을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언제부터 이게 당연한 진리가 됐지? 빵집 사장님은 그저 자신이 세운 방식대로 일하고 있었을 뿐인데.
아마 사장님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만 일하기로 마음먹지 않았을까? 자신만의 일에 대한 태도를 찾은 사장님이 갑자기 부러워졌다.
어찌됐든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거니까. 어떤 기준이 다른 한 기준보다 더 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누군가에게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우선 일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는 내 생활과 일 사이의 균형의 추를 기울지 않게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까지 빵집이 유명해지길 바랬던 마음은 사라지고 대신 동네의 세월을 품은 곳으로 곁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빵빵거리며 글을 썼더니 살을 뺀다고 며칠간 꾹꾹 눌러왔던 빵심이 슬그머니 다시 올라온다. 생각한 난 김에 이따 가봐야지.
조금 유명해졌다고 가격도 올리고 신식 인테리어로 바꿔서 낯선 분위기가 풀풀 나는 대신 왠지 이곳은 10년이 지난 후에도 이 모습 이대로 남아있을 것 같다. 모든 것들이 순간마다 휙휙 바뀌는 세상에서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타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가끔은 세월이 훅 지나갔다는 사실을 잊고 싶은 때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