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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도그린 Aug 28. 2019

한여름에 밤을 새며 7시간동안 걸어보았다

한강에 가면 돗자리 깔고 치맥 밖에 할게 없다구요?

“우리 또 걸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여전한 회사생활이었다.

윗사람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자기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힘없는 사원들은 점점 소외되고 있었다.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동료도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답답한 마음에 훅 던진말에 덥썩 받아쳤다.

“얼마전에 보니까 한강 나이트 워크 대회 같은게 있더라, 안그래도 나도 걷고 싶어서 알아봤거든. 근데 한강길 걷는데 몇만원의 참가비를 내야되는거 있지”

그냥 툭 아무생각없이 걷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감정을 이용해 여기에도 자본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다니. 그게 영 몸마땅한 눈치였다.


내가 주최하는 한강 나이트 워크!


그렇다면 까짓것, 내가 주최하지 뭐!

주최자는 나, 참가자도 나 포함 동료 1명!

그렇게 30대 여자 둘의 결코 흔치 않은 불금 보내기가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새벽 지하철 첫차 운행할때까지 걸어야할텐테. 그 전에 배를 든든히 채워놓는게 걷기의 첫 시작이징~!  하며 서촌의 음식점이 문을 닫는 저녁 10시까지 25금 무한 토크로 시동을 걸었다. (대화내용은 사회 초년생이 들으면 충격을 받을까봐 차마 적지는 못하겠다)


한강길에 만난 친구, 오소리야 안녕!


이 얼마만에 온 여의나루역인가!

2년전에 한창 러닝한다고 크루활동할때 이후 오랜만에 만난 한강이었다.

이미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조용하겠네 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논지 오래된 언니들만의 착각이었네.....

한여름밤의  한강공원은 그야말로 대낮처럼 밝았다.

각종 푸드트럭은 문전성시였고 잔디밭은 돗자리를 펴고 맥주 한잔에 한강을 안주삼아 낭만을 즐기러 온 청춘들로 북적거렸다.

발디딜틈없이 사람들로 꽉차 있는 곳을 벗어나 걸을 수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 원효대교를 건넜다.


그래! 여기가 내가 생각한 한강이지!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내 앞에 또 다른 한강의 모습이 펼쳐졌다.

길 양쪽으로는 짙푸른 잔디와 풀이 우거져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이라곤 저녁산책을 즐기는 사람들과 간간히 보이는 자전거 라이딩 부대 뿐이었다.

오른편 옆구리에 밤이 까맣게 드리운 한강과 그 위로 반짝이는 야경을 끼고 힘차게 출발~!


얼마나 걸었을까.

“저쪽에 뭔가 있는 거 같아!”

“...................?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아니 저기........ 우~~~~~~악!!!”

순간,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가 어둠속에서 툭 튀어나와 내 앞을 후다닥 지나갔다.

너네 친구들은 어디에 있니

이마에 하얀색 가로 줄무늬와 반짝거리는 두 눈을 가지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넌,

그것은 야생 오소리였다!

한강에서 오소리를 보다니! 그래도 생각만큼 한강의 자연환경이 훼손되지 않았나봐 라고 순간 내쉬는 안도감.

그나저나 어디 가지도 않고 코앞 덤불밖에서 우리를 맹렬히 쳐다보는 오소리!

어머 이건 찍어야돼!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한명은 후다닥 핸드폰 후레쉬를 켜고 또 한명은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풀썩, ..............................우아악!!!!”

오소리 눈에는 자기 앞에 얼쩡거리는 두 인간이 맘에 안들었나보다. 거참 조용히 산책 좀 하려고 했더니 이 인간들 뭐야? 에잇 귀찮아 쫒아내버려야겠어

우리 앞으로 급 돌진하는 오소리에 혹시나 잡혀먹힐까봐(?) 운동회날 반 대항 릴레이 계주 이후 다시 없을 속도로 전속력으로 날았더랜다. (지금 생각해보니 덩치값을 못한거 같아 민망스럽네)

겨우 한숨을 돌리고 나니 드는 생각, 오소리랑 친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응?)

 

무박 야외취침 생존기


숨막혔던 추격전을 마치고 다시 뚜벅이길.

한바탕 뛰었더니 이제는 솔솔 잠이 오기 시작한다.

번갈아 가며 하품을 하던 중 때마침 놀이터가 나타났다.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누울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매의 눈으로 스캔.

“우리 여기서 잠시만 눈 붙이고 갈까?”

때마침, 놀이터 한쪽에 트램벌린 같이 둥그런 그물막처럼 생긴 기구가 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올라가 털썩 몸을 내맡겼다.


이 정도급이면 야외에서 자는 것 쯤이야

까만 밤하늘을 지붕삼아 나란히 누워 스스륵 잠이 들었다. 천장도 없고 벽도 없는 곳에서 자는데 이토록 편안할 수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스쳐지나가는 시원한 여름 밤 공기와 풀벌레들의 노랫소리. 뭐 무릉도원이 별건가!

한참을 자다가 서늘한 한기에 잠을 깼다. 무려 40분동안이나 꿀잠을 자다니. 겉옷만 더 챙겨왔어도 동틀때까지 여기서 자는건데!  아쉬웠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진짜 입 돌아갈 것 같아 다시 반 수면 상태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걷다가 벤치가 보일때마다 주저없이 등부터 갖다대고 누웠다.

나이트 워크 시작하기 전 우리가 유일하게 간과했던 것이 있었으니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새벽2시, 별세계였던 이태원 나이트


나의 의지로 걷고 있는 건지, 내 다리가 움직이니 나도 거기에 맞춰 끌려가는 것인지.

우리는 결국 잠과의 싸움에서 항복을 선언했다. (여러분 잠을 잘자는게 보약이라는 이유가 있었어요...)

까페에 가서 달달한 것도 먹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발길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이태원.

“............여긴 어디......나는 누구?......”

새벽 2시의 이태원. 누가 경리단길이 한풀 꺾였다고 하는가. 펍과 펍 사이의 경계는 이미 오래전에 허물어진듯 보였고, 흥에 취한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클럽의 입간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네온사인은 지나가는 패피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었으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와 섞여 경리단길의 메인 거리는 그야말로 젊음의 뜨거운 열기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해가 떨어지고 별이 뜨면 곧바로 잠자리에 드는 잠만보 일당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정도급의 별천지! 문화 충격 받은 티 안내려 (등산가방에 운동복 차림으로 누빈다는 것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요인중에 하나였다...) 서둘러 빠져나왔다.

물론 호기심 많은 나는 조만간 경리단길 밤마실을 실행할 수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주 주말에는 더 이상 안놀아도 되겠어! 생각할 정도로 온힘을 다해 논 날이었다.





별책부록

늦은 저녁, 한강에서 야생동물을 보고 싶다면

야생동물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만큼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한강에서 즐기는 것 못지 않게 그 책임도 다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노루와 함께 놀게 될수도!

개마고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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