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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도그린 Aug 14. 2019

참새에게 쫒겨서 그만

덕수궁 돌담길에는 맛있는 와플집이 하나 있다. 갓 나온 뜨거운 와플을 호호 불어 한입씩 베어먹으며 돌담길을 따라 세상 여유로운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 것. 평일 낮에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소소한 사치이다.


오늘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요량으로 벤치에 앉아 먹기로 했다. 12시가 되자 건물 밖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가씨들, 혼자만 먹지말고 여기 참새들한테도 좀 나눠 주고 그래”

“...............................?”


발 밑에 참새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그만게 귀엽네 라고 생각하고 와플을 다시 먹고 있는데나이 지긋한 공무원 아저씨가 가던 길을 멈추고 계속 우리에게 참새에게 한입만 달라고 한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못들은 척 했겠지만, 옆에 동료가 있어 최대한 참고 있는 중이다.

웃으면서 할말 다하는 이 아저씨, 끈덕지게 참새편이다. 하는 수 없이 와플을 조금 떼어 참새에게 던졌다.

”......................후드드득”

순식간에 근처에 있던 참새들이 떼거지로 우리에게 몰려왔다. 그새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벤치 주위를 빙 둘러싸고 도통 갈 생각을 안한다. 이러다가는 이 근방 참새의 사돈에 팔촌까지 다 모여 잔치를 벌일 판이다. 앉아서 좀 쉴려고 했더니 이게 뭐람 에잇 도망가야겠다.


참새에게 쫒기다보니 무서워(?) 오금이 저렸나보다. 화장실을 찾다 근처에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급한불 끄고 나오니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동료가 로비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나 보다 . 여기 전망대가 있나봐


정동 전망대에서

전망대 안의 까페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큰 창이 시야에 들어왔다. 와 여기 뭐지? 서울 한복판에 이런곳이 숨어 있었단 말이야?!


큰 창을 통해 내려다 보이는 덕수궁의 뷰를 보고 나는 그만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가 내가 방금 지나온 그곳이란 말인가. 하늘위에서 바라본 덕수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망망대해 태평양의 탁 트인 바다가 내 앞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게 현실인지 상상인지 아니면 내가 더위를 먹어 눈앞에 일렁이는 신기루를 보는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 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을 다 담아내고 싶어 눈을 최대한 크케 떴다.

발 아래 펼쳐진 경치에 감탄하며 나도 이런것에 감동하는 사람이었구나 (야경을 야.경 따.위.로 치부하며 모르쇠했던 무쇠신경임에도) 새삼스럽게 내 자신이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깜깜했던 머리속이 짠하고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마치 무한한 힘이 주입된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그리고 뭐든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나를 휘감았다.



점심시간 전과 후의 나는 여전히 나였다. 단지 내가 ‘어디에’ 있었느냐가 달라졌을 뿐. 

새삼 공간이 주는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나야, 주위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주장해왔던 나의 생각에 이제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사람은 정말 자신이 있는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사람이 어디에 있든 공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데.

문득,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내 주변을 돌아본다. 이제껏 내가 거쳐왔던 그 공간들을 조용히 이제는 다른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 공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적어도 그 일부는 되지 않았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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