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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그레 Oct 21. 2024

못난 남자의 '첫 번째 썸'

고구마 같았던 나의 썸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앞서 나는 내 외모에 자신이 없었음을 얘기했다.


그럼에도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모두 연애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친구들 입에 오르내릴 썸 정도로 끝났고, 그마저도 살아오면서 손에 꼽을 정도이긴 하다.

고백에 가까운 고백까지 받아봤었다.(이 이야기는 추후 소개하겠다)


그때마다의 이유가 있었지만, 공통적인 이유는 '내가 나를 좋아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함'이었다.


내 인생의 첫 썸은 사춘기가 오면서 외모를 가꾸고 싶은 시기이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시기인 고등학생 3학년때였다. 워낙 소심했지만 친구들을 사귀고 싶기도 해서 3학년이 되어서야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말이 정말 없었지만, 최대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한 학년 아래의 친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운동도 못하고, 조용하게 공부만 하던 내가, 그 와중에 귀여운 친구를 좋아하는 게 티가 나긴 했나 보다. 이걸 알고 친구들이 이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와 인생이 걸려있는 시기라는 점이 너무 마음에 걸려 망설였다. 막 등 떠밀어서 억지로 만들어 줌에도 사귀자는 얘기는 정작 하지 못했고, 아직은 내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자격지심만이 더 커져갔다.


되돌아봐도 그 친구 또한 연애 생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이 매점에 가서 맛있는 것 사주고, 내가 전에 봤던 필기 교과서를 챙겨주기만 하고, 말도 제대로 한 번 못 해보고 썸이 끝났다.


그리고 고3 수능이 마무리된 추운 졸업식 날


동아리 후배들이 졸업식이 마무리된 강당으로 찾아왔다. 저 멀찍이서 꽃을 들고 부끄럽게 나를 향해 다가오던 그 친구가 잊히지 않는다.


'졸업 축하드려요'

'어... 고마워, 공부 열심히 하고'


답답했던 내가 싫을 법도 했을 텐데... 졸업식 날 굳이 나를 찾아와, 다른 친구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 꽃을 나에게 전해준 그 친구


예쁘고 은은하게 향기 나는 꽃보다 그 친구의 마음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참 순수하기도 하고, 순진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면, 내가 했던 행동들이 참 귀엽게만 보인다. 그리고 목에 고구마가 맥히는 것 같다. 무튼 이때부터 내재돼 있던, 시작도 해보지 않고 생겨버린 자격지심과 낮은 자존감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사춘기 시기에 내 인생에서의 행인 몇 천 번째에 해당되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못생겼다'는 말이 머리와 가슴에 박혔고, 애인과 있을 때 또 그런 소리를 혹시나 애인이 듣고 거기에 흔들릴 것 같아, 쪽팔릴 것 같아, 상상으로 걱정했다. 그리고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받은 이 상처를 어떻게 감내해야 할지, 이겨내야 할지를 몰랐다.


실제로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땐, 얼굴이 시뻘게져서 부끄러워했다.


차라리 귀가 멀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이런 마음과 생각들이 많아지고, 커져, 대학생 때부터 공황 같은 증상이 시작된 것 같다. 휴학을 길게 하고,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당시에 정신과는 생각도 못했다. 워낙 정신과에 대한 인식 자체도 좋지 않았고, 마음을 치유해 주는 에세이 책들도 적었다. 누구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내 마음을 다스리고 싶었지만, 내 마음 하나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물론 남이 나를 무시해도, 못 들은 척 넘어가고, 나도 무시하려 하지만... 나도 귀가 열려있다 보니 그들이 하는 말들이 모두 들린다.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지만, 그들이 했던 말들은 기억한다.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건 아직도 어색하고, 뚝딱거리는 것 같다.


무튼 대학교 휴학을 하고,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 당시의 나의 유일한 낙은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치킨을 먹으며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거나 무속 신앙을 다룬 공포 프로그램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티비에 나왔던 그 당시에 유명했던 무당을 지방에서 경기도 끝자락까지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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