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에 대한 믿음
IMF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고 마음의 병이 커지기 시작했던 시점, 휴학을 하고 쉬던 때, 답답해서 무작정 무당을 찾아가서 본 점이 나의 첫 신점(神占)이었다.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지방에서 경기도 끝자락으로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지금처럼 프리미엄 고속버스도 없고, KTX, SRT도 개통되기 전이었다.
4시간 반정도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쪽에서 내려, 강변역을 시작으로 지하철을 타고 당집이 있는 역으로 갔다. 엄청 멀었다. 터미널에 내렸을 때가 저녁이었는데, 가야되는 동네에 도착하니 늦은 저녁이었다. 결국 근처 사우나에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그 당집까지 들어가는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탔다. 산을 타고 들어가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서, 마침내 당집에 도착했다.
여름이어서 더웠음에도 산 속 기운은 선선하게 느껴졌다. 산에 덩그러니 보이는 집 한 채, 그리고 뒤쪽에 있는 신당, 제대로 찾아온 건 맞네 싶어 나는 안도했다.
계시냐고 소리치니, 안에서 무당으로 보이는 분이 나오셨고, 예약도 없이 불시에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을 안으로 들여주었다.
'갑자기 화를 낼까, 안 좋은 얘기를 하진 않을까' 처음보는 신점이라 두려움이 앞섰다. 쌀알 같은 걸 쳐다보고 하얀 한지에 뿌리더니,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가족사를 다 맞추었다. 그리고 난 어렸지만 이때까지 살아온 내 얘기를 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맑다, 마음이 예쁘다'
눈물이 났다. 마치 ‘넌 괜찮은 애다' 라고 이야기 해주시는 것 같았다.
외모를 보고 좋지 않은 소리를 하던 사람들은 내 마음과 생각조차 부정하지만,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 같았다.
아직은 어렸던 내게 굳이 많은 말은 하시진 않으시며, '힘들거다. 근데 30대가 되면 해결될 것이다' 라는 한 마디 말을 듣고 먼 길을 다시 돌아왔다.
애매모호할 수도, 남들은 부정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말 한마디가 30대가 되기 전까지의 힘듦을 버티게 해주었다.
가족과의 단절과 친구들의 연락은 모두 끊고, 공장에서 일하며 용돈벌이하고 혼자 고독한 20대를 보낸 때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어 찾아갔지만 가족의 만류로 인해 무산되었을 때
입대하고 짧은 훈련소 기간에 왕따를 당해 좋지 않은 시도를 하려고 했던 때
복학하고 '대학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라며 대학원 진학을 했지만 자퇴 했을 때
나의 20대는 그늘이 많았지만, 어째저째 버티고 그 시간을 지나왔다. 대학원 자퇴 후 방향을 못 잡고 있을 때, 본래 학과에서 추진하는 취업 방향과는 조금 다른 길에 매료되어 그 길을 선택했다. 관련된 국가교육과정을 면접까지 보고 수강하게 됬고, 내가 원했던 쪽으로 취업해 평범한 직장인이 됬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힘든 때를 버티고 내가 직접 길을 만들었음에 기뻤다. 마침내 남들과 비슷한 위치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당시의 말 한마디에 대한 단순한 믿음은 30대가 지난 지금에는 효과가 없어졌지만, 30대까지 20대를 버티기에는 확실히 제겐 효과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래를 잘 설계할 수 있도록, 저의 생각과 믿음으로 30대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꼭 신점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단순한 믿음이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줄 버팀목이 될 수 있음을 글을 쓰면서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