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벚꽃 잎이 무색했던 그날
이리저리 치이고 버티며, 첫회사를 3년 넘게 다녔다.
첫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까? 고민을 수백 번 했던 것 같은데, 이직할때즈음 뒤돌아보니 3년 반이 지나있었다. 이 정도면 오래 버티고, 잘 다녔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 선배들과도 가까워졌다. 그중 마음속 얘기를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여자 선배 두 명이 있었다. 회사에서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게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한 분은 인싸에 속하고 사회생활 정말 잘한다고 느껴지는, 본받고 싶은 강점을 가졌다면, 다른 한 분은 나와 같은 MBTI이고 독서가 취미 중 하나라는 공통점을 가진 동질적인 느낌을 가진 선배였다.
두 분이 동기이기도 하고, 실제로 친하기도 했다. 내가 두 분의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갈 수 있었던 건, 내가 직속 후배이기도 하고, 부족하지만 날 받아준 두 분의 따뜻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두 분과 마음속에 있는 회사 얘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써 더 잘 버틸 수 있었다.
선배들 또한 나에게 그렇게 마음을 터 놓았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해 봄이었다.
선배 중 한 명이 오늘 날이 너무 좋다며, 회사 근처에 벚꽃을 보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저 좋았다. '나는 좋아요~' 라며 꽃을 보러 가는 날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우리 회사는 이래저래 위치가 좋은 편이었다. 버스정류장도 가깝고, 나름 지하철까지도 많이 멀진 않았으며, 근처에 아파트와 집이 많아 주거환경이 잘 형성되있었다. 그리고 회사의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나쁘지 않은 건, 주변의 벚꽃나무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봄이 되면 분홍분홍한 얇은 꽃잎들이 나무에 한가득이다. 마치 연분홍의 깃털을 가진 딩딩한 새가 궁둥이를 보여주고 있는 듯한 나무들이, 도로와 산책로, 자전거 길을 이어 가까운 건너편 동네까지 이어진다.
그랬기에 봄에는 나름 회사 가는 맛이 있었고, 마음을 나눈 사람들과 벚꽃구경을 함께 할 수 있는 건 더욱 좋은 기회였다. 벚꽃 구경 당일, 우리는 돗자리를 준비하고, 편의점과 분식집에서 요깃거리들을 사서, 근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얘기를 오순도순 나누고, 사진도 남겼다. 강을 끼고 있는 산책로에 벚꽃이 있고, 날이 좋으니, 사진이 예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해가 떨어졌다.
우리는 밤에 보는 벚꽃이 더 이쁘다며 신나 있었고, 유리조각 같은 벚꽃들이 있는 산책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남겼다. 그러던 중 인싸 선배가 '둘이 어울린다' 며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어색했지만 어색하지 않은 척 열심히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헤어질 무렵, 다른 선배가 갑자기 표정이 굳으며, 진지하게 얘기했다.
'그냥 남자이기만 하면 되는데...'
'...! '
인싸 선배가 이전에 간간히 우리 둘을 묶으려 했고,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여럿 했음을 알고 있었다. 부끄러움에도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던 선배는 그 사이 나에게 표현을 많이 하셨던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어색하지 않게 받아주었다.
하지만 이건 예상하진 못했다. 평소에 그 선배는 나에게 과분하다는 생각과 나보다는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선배가 상처받지 않게 다시금 고백하고 싶었다.
'선배,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사랑하지 못해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건 갑작스럽고, 솔직한 표현에 당황하기도 했고, 이런 나의 마음을 얘기하는 게 내 마지막 자존감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걸까?
남을 사랑하기엔 나를 사랑하지 못해 괴로울 때가 많아 힘든 나를, 그 선배는 모를 것이다.
이런 못난 내 모습까지 사랑해주진 못할 것이다.
나는 내 본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인싸 선배가 나와 선배의 반응을 보더니 갑자기 상황을 정리했고, 우리는 그렇게 급하게, 어색하게 그날을 마무리했다.
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이 아팠다.
선배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