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킨좀비 7시간전

할머니는 늘 나를 두 번째로 사랑했다

비끗의 미끄러짐 세 번째 이야기

내 사무실 책상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얼마 전 정년퇴임을 마치고 회사를 떠난 사람의 자리가 있다. 모두의 축하와 인사를 받고 홀가분하게 떠나간 사람의 자리에 뒤늦게 장미꽃 한 송이가 도착했다. 누가 두고 갔는지 선물한 사람의 손을 이미 떠나왔는데 선물의 주인공에게 제때 도착하지 못한 바람에 그의 텅 빈 책상 위에 홀로 남아버린 것이다.

어떡하지. 주인을 잃어버렸네. 꽃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말이 새어 나왔다. 선물을 준 사람과 받을 사람의 사이 그 어딘가의 시공간에 갇혀 기쁨이 되지도, 함부로 시들어버리지도 못한 채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중인 꽃. 그 작은 혼잣말은 내가 아니라 꽃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나 어떡하지. 주인을 잃어버렸네.


꽃의 혼잣말을 듣고 떠오른 건 엉뚱하게도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유독 혼잣말을 많이 했다.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한마디 혼잣말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마치 독백하는 연극배우처럼 어떤 말들을 끊임없이 줄줄 내뱉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한 낮의 거실에 홀로 앉아 자기만의 리듬으로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면서 노래처럼, 기도처럼, 놀이처럼 혼잣말을 했다. 그 말들은 주로 머릿속의 생각을 풀어 정리하는 말이거나 이해가 가지 않았던 누군가의 입장을 가만 되짚으면서 비로소 그를 이해하게 되는 말, 누구 앞에서 쉽게 꺼낼 수 없는 마음 속 원망과 섭섭함의 말, 나이가 든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의 말 그래서 결국은 모두 ‘내사 마 우짜겠노.’(내가 뭘 어쩌겠어, 어쩔 수 없지)로 귀결되는 것들이었다.

시간의 물결에 수신자 없는 말들을 종이배처럼 띄워 보내는 혼잣말의 시간을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일과 중 하나로 보냈다. 할머니가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 응답 없는 대화를 할 때 가끔 그 내용을 엿들을 뿐 나는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면서 또 미워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역시 나를 사랑했지만 늘 두 번째로 사랑했다. 할머니는 그 시절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전형적인 가부장제 여성으로 여자인 나보다 남자인 남동생을 더 아꼈다. 나를 미워하거나 천대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동생에게 사과를 깎아주고는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동생에게만 몰래 딸기 한 알을 물려주는 식으로 동생을 더 예뻐했다. 눈치가 빠른 나는 그 사랑의 차이를 모를 리 없었고 동생만 딸기를 먹은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끝까지 티를 내지 않다가 대뜸 사과를 하수구에 모조리 집어넣고 울어버렸다. 나는 왜 덜 사랑 받는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마음에 깊이 품은 채 할머니를 노려보면서 할머니를 사랑했다.


누군가 내게 왜 글을 쓰기 시작했냐고 물으면 나는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나는 왜, 나는 도대체 누구길래와 같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 같은 질문들과 세상엔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울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실은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많은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어렴풋한 느낌들. 언어화가 되지 않아서 그저 캄캄하고 그저 두려운 느낌으로만 남아있던 그 감각의 상자로부터 지금까지 나의 문장들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밤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할머니를 떠올리며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말들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혼잣말은 언제나 허공을 떠돈다. 말을 보낸 사람의 메시지를 말의 주인공(수신자)에게 제때에 알맞게 전달하는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사라진 언어들이 자기 삶을 성공적으로 살고 떠나간 말들이라면, 혼잣말은 어떤 이유로 미끄러져 임무에 실패한 후 이승을 맴도는 말들이다. 마치 테트리스처럼 말의 블럭이 알맞은 구멍에 제대로 꼭 끼워맞춰질 때 말은 짠 흩어질 수 있는데, 제자리에 안착하지 못해 흩어지지 못하고 그만 쌓여버린 말의 덩어리가 바로 혼잣말인 것이다.


그리고 나의 글이 있다. 오늘의 미련이 담긴 사소한 말보다 더 강하게, 누군가를 향해서건 이건 꼭 내뱉고 싶다고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받아 적은 것이 글이 된다. 가닿지 못하더라도(못했더라도)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뱉는 말들 또 글들.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말들, 글들, 이야기들. 창 너머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이 천장에 무늬처럼 일렁거렸다. 그만 까무룩 잠이 쏟아지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이전 06화 천칭과 시소(1): 모든 선택은 멀미를 일으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