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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킨좀비 Aug 10. 2024

천칭과 시소(1): 천칭자리가 아니어도 천칭으로 삽니다

초조의 미끄러짐 두 번째 이야기

자초로 인해 좌초된 생활에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습니다.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야 폐로 호흡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눈물을 터뜨리지만, 금세 자연스럽게 숨을 쉬게 되지 않던가요? 저 역시 처음엔 자초하는 일이 괴롭더니 이제는 적응이 되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좌초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멀미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좌초란 암초에 배가 걸려 가라앉는 것과 같은 하강 운동이니 덜컥 내려앉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 울렁거림을 느끼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저는 그게 어쩌면 ‘천칭’의 움직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천칭은 저울의 일종입니다. 나란히 벌린 양팔에는 무게 추를 올릴 수 있는 접시가 매달려 있고, 더 많은 무게가 실린 접시 쪽으로 천칭이 기울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양쪽 접시의 무게를 동일하게 맞춘다면 천칭은 수평을 유지합니다. 오늘날에는 천칭을 쓸 일은 거의 없지만 법을 상징하는 여신이 천칭을 들고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 일 년의 어느 시기에는 천칭자리 아이들이 태어나기에 천칭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저는 천칭자리 아이는 아니지만 별자리 하면 천칭자리가 먼저 생각납니다. 왜냐면 천칭의 ‘ㅊㅊ’이 별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ㅊ’은 발음 자체가 화려하여 별이 반짝이며 빛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어쨌든.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천칭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의 대략적인 무게를 비교할 때 양손에 그 물건을 올려두지 않던가요? 더 무거운 쪽으로 어깨가 기울거나 그걸 막기 위해 더 많은 팔 힘이 들어가는 감각을 이용하여 무게를 비교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 사람은 스스로의 몸으로 천칭이 됩니다. 물리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여러 가지 것들을 ‘저울질’하게 되죠. 그리고 비교적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지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 역시 계량을 통해 수치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천칭의 작용이지요. 저는 제 안에 내장된 이 과학적인 도구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두 개의 티셔츠 중에 어떤 것을 살 것인지, 양갈래 길을 만났을 때 어느 길로 산책할 것인지 등을 판단 내리기 전에 이 모든 것들은 천칭을 거칩니다. 이때, 천칭의 균형 감각은 양 팔의 접시가 모두 차 있을 때 발휘됩니다. 어느 한 접시만 채워져 있다면 천칭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고꾸라져 버립니다. 천칭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고, 미끄러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기 때문에 천칭의 접시를 모두 채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드는 티셔츠를 발견했다면 사기 전에 또 다른 티셔츠를 비교군으로 골라야 하고, 문득 어제 갔던 길로 산책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이에 비견될 만큼 매력적인 다른 길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천칭이 균형을 잡으며 기울어질 것이고, 저도 납득할만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거든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판단 과정에서 천칭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점입니다. 중국집에 앉아서 메뉴를 고르는 A씨에 대해 상상해 보십시오. A씨에게 있어서 짬뽕과 짜장면에 대한 선호는 처음엔 거의 수평을 이룹니다. 마침 옆테이블에서 짬뽕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한 A씨. 이 순간 천칭은 짬뽕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러나 A씨가 확신을 얻기 전에 물컵과 단무지가 먼저 서빙될 것입니다. 단무지는 A씨의 침샘으로 하여금 짜장면과의 조화를 떠올리게 할 것이고, 그게 천칭을 짜장면 쪽으로 기울게 합니다. 위장을 얼얼하게 만드는 짬뽕 국물의 냄새가 천칭을 수평까지 복원시키지만, A씨가 입고 나온 흰 옷이 국물 없는 짜장면 쪽으로 다시 천칭을 기울게 만듭니다. 점원이 다가와 ‘주문하시겠어요?’라고 말한 순간, A씨는 천칭이 기울어져 있는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중국집에 앉아 있는 A씨의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천칭의 최종 기울기를 얻어냈지만 일상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는, ‘고기를 싫어하는 팀장님’과 ‘생선을 싫어하는 사수 선배’와 아무래도 좋은 저, 셋이서 식사를 하러 가는 일이 생깁니다. 이 셋은 어쩌다 백반집으로 흘러가 고등어정식과 제육정식 두 가지뿐인 메뉴판을 보게 됩니다. 메뉴 아래에는 ‘모든 메뉴 2인분 이상 주문’이라는 붉은 글자가 적혀있군요. 다시 말해서 ‘고등어 둘, 제육 하나요’ 같은 주문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팀장님과 선배는 제게 좋아하는 메뉴로 시키라고 말할 것이고, 제 등에서는 이내 식은땀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그 말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라는 뜻을, 더 정확하게는 누구의 식사를 망쳐버릴지를 고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이 두 사람은 뒤끝이 긴 타입. 고등어정식을 고르면 생선을 싫어하는 사수 선배로부터 당장 오후부터 매몰찬 대응이 돌아올 것이고, 제육정식을 고르면 고기를 싫어하는 팀장님으로부터 긴 무관심이 돌아올 것입니다.


주문을 받으러 점원이 걸어오는 짧은 사이에 제 안의 천칭은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때 천칭이 무게를 달고 있는 것은 단순한 식사 메뉴의 선호도가 아닙니다. 누구를 존중하고 누구를 존중하지 않을 것인지, 누가 그나마 회복 탄력성이 더 높을 것인지, 그리고 내게 돌아오는 당장의 매몰참과 기다란 무관심 중 무엇이 더 힘들 것인지와 같은 문제들이지요. 천칭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감각에 더 집중해 봅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한 끗 차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르락, 내리락.


그나저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천칭이 내장되어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제가 느끼는 멀미가 천칭의 움직임 때문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멀미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 한 번쯤은 들어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의 변형 기출들을 인생에서 마주했을 때, 궁지에 몰린 듯한 현기증을 느낀 적이 있지 않은가요?


제게 있어서 천칭의 존재는 축복 같기도 하고 저주 같기도 합니다. 이 섬세하고 과학적인 도구는 저울질을 통해 혼란스러운 외부 세계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엄마가 좋고 아빠가 좋은 건 너무나 단순한 사실이지만, 그걸 비교하여 누구 하나가 더 좋다고 선택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럴 때 천칭은 그 어려운 문제를 측량을 통해 명확한 기울기로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천칭의 저울질에 맛이 들리면 사람은 맹목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일단 뭐든 천칭에 달아보고 흔들리지 않는 기울기를 볼 때까지는 성이 차지 않는달까요. 그렇기에 제 안의 천칭은 쉴 새 없이 멀미를 일으키며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마치 ‘시소’를 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2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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