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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단지 Sep 30. 2021

더덕무침이 뭐라고

"아이고 이를 어쩌냐"

어머니께서 발을 동동 굴리셨다. "터미널에서 안 가져왔나 보다" "어머니 지갑 두고 오셨어요?" "차라리 지갑이면 낫겄다. 화장실 간다고 더덕 봉지를 두고서는 그냥 와버렸네. 아이고 아까워라 큼직하니 좋았는데..." 부스럭 부스럭 봉지들을 이리뒤저도 저리뒤저도 더덕은 보이지 않았다. 빨간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 더덕무침은 큰애가 좋아해서 늦가을이면 어머닌 늘 사 오셨다. 어머니가 더덕을 사들고 오시면 이제 곧 겨울이 오겠구나 알 수 있을만치 더덕 사랑이 남다르셨다. 시집을 와서 더덕껍질을 처음 깠었다. 방에 신문을 깔고 더덕을 펼치고선 한 손엔 더덕 한 손엔 칼을 들고 더덕껍질을 깠다. 도라지는 뱅그르르 돌리면 껍질들이 술술 벗겨지는데 이놈의 더덕은 껍질 벗기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결도 없고 우둘투둘 억센 데다 끈적끈적 진액까지 달라붙어 껍질을 까려면 애를 먹었다.


어머니랑 같이 더덕을 까고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려 이걸 뭐하러 하고 앉았나 싶어 입이 점점 튀어나왔다. 얄팍하던 껍질은 점점 두꺼워지고 나중엔 귀찮아져 끝은 댕강댕강 잘라버렸다. 더덕 봉지를 두고 오셨다기에 속으론 더덕껍질 안 벗겨도 되겠다 싶어 반은 좋아했었다. 손이 큰 어머니가 얼마나 많이 사 오셨을진 안 봐도 선했기에 내심 반기는 마음도 있었다. 내 맘과 다르게 어머닌 그저 놔두고 온 봉지에 애가 타고 속이 상하셨다. 저녁밥상이 차려지니 더덕무침의 빈자리가 더 아쉬워졌다.


겨우겨우 껍질을 다 벗긴 더덕은 콩콩 찢어지지 않게 살짝살짝 찧어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다. 빨간 더덕무침은 생으로 먹어도 좋지만 참기름에 구워 먹으면 더 맛 좋았다.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좀 두르고 앞뒤로 뒤집어가며 약한 불에 살짝살짝 익히면 기름내 섞인 매콤한 양념 익어가는 냄새가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했다. 하얀 쌀밥에 빨갛고 노릇하니 익은 더덕구이 하나 올려 밥을 뜨면 입속으로 퍼지는 더덕향과 고소함과 적당히 익은 양념 맛은 한데 어우러져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어머닌 손주 입으로 넙죽넙죽 들어가는 더덕이 보고 싶으셨는데 그걸 못 보셔서 연거푸 한숨이셨다. "아이고 그걸 왜 두고 왔을꼬. 에그 정신도 이리 없어서야. 밥에 걸쳐먹으면 얼마나 맛나겄냐..." 밥상 가운에 올려져 솔솔 냄새 풍기며 있어야 할 더덕이 빠진 밥상을 아무래도 허전해하셨다. 혀까지 쯧쯧 하며 아까워하셨다. 그 반찬 한 가지를 그리도 아쉬워하셨다.


작년 추석이었다. 장을 보러 시장을 돌다 "더덕 1kg 만원" 이 눈에 띄었다.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더덕 1킬로 주세요" 하며 돈을 내밀었다. 봉지에 담기는 더덕을 보고서 이내 후회했다. '저렇게 많았어? 저걸 다 까야해? 괜히 샀나?' 하지만 벌써 내 손엔 봉지가 들려있었고 그걸 들고서 집으로 왔다. 혼자서 신문을 펴고 더덕을 부었다. 바닥에 쌓인 더덕은 어머니가 말한 대로 통통하고 큼직했다. 어머니가 보셨음 "아이구 좋은 거 잘 샀다" 하셨을 거다. 거실에 혼자 앉아 얍삭얍삭하니 껍질을 깠다. 이젠 입도 튀어나오지 않고 '아고고 다리야 허리야' 앓는 소리도 없다. 들어줄 이도 없고 말 걸어 줄 이도 없으니 혼자서 더덕만 까고 앉았다. 그래도 도란도란 어머니랑 마주 앉아 더덕 깔때가 좋았구나... 기억 너머 너머의 생각들이 흘러가다 지나가다 떠올랐다 했다.


터미널에 세워져 있었을 봉지를 한번 떠올려보다가, '누가 가져갔을까?' 전혀 본적 없는 이를 생각해보다가, 아까워하시며 한숨 쉬던 어머니도 생각해본다. '더덕을 들고 오셨음 얼마나 좋았을까? 그게 마지막으로 사 오신 더덕이었는데...' 짠한 마음과 가슴 한 귀퉁이가 아린 듯한 애타는 마음이 날 파고들었다. 콩콩 찧다만 더덕을 하나 주워 입에 넣는다. 쌉쌀한 맛과 향이 위로처럼 달달하다. 뜨끈하고 묵직한 것이 목안으로 차오른다. 더덕을 하나 더 씹으며 삼켜 내린다. 더덕무침 하나에 그리 아쉬워하던 어머니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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