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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단지 Sep 27. 2021

그 골목길


"다음에 보세"

어머니가 더는 따라오지 않으셨다. 손만 흔들고 뒷모습만 보고 서 계셨다. 주말 동안 어머니가 해주신 밥으로 배를 넉넉히 채웠고 밤이되어 어머니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머니 집을 나와 골목으로 걸어 나왔다. 드문드문 가로 켜진 어둑한 골목길에서 헤어졌다.

한 손은 어머니가 싸주신 나물이랑 반찬, 식혜를 들고 한 손은 어머니를 향해 흔들었다. 그러곤 등을 돌려 걷던 골목길을 다시 걸었다.


걷다 걷다 뒤돌아본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계신다.

가던 발길이 또 돌아본다.

걷던 걸음이 자꾸 멈춘다.

뒤가 당겨 다시금 돌아본다.

이제 들어가셨으려나 돌아봐도 아직 그 자리 그대로 서계셨다.

이젠 가셨겠지 돌아봐도 여전히 그 자리다.

이젠 골목 끝. 꺾어서 큰길로 나가야 한다.

'이젠 영 보이지 않을 건데... 어서 들어가셔요 어머니'

오톡 하니 서계신 모습이 어둑한 가로등 불만큼 희미해졌다.

손을 한번 더 흔들고 골목을 꺾었다.


배웅해본 사람은 안다.

떠난 자리가 얼마나 허전한지.

방금까지 같이 있던 빈자리가 얼마나 허지.

아직 식지 않은 온기로 마음 달래는 시간이 얼마나 헛헛한지.

그렇게 쓸쓸하게 서 계셨을 어머니가 눈에 밟혔다.

어머니는 멀어져 가는 우리가 눈에 밟히셨겠지...


언제까지나 저리 서 계실 줄 알았다.

언제까지나 저리 있어 주실 줄 알았다.

골목 구석구석 어머니 모습이 배어있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그 모습이 툭툭 튀어나와 어딜 봐야 되나 싶어 시선 둘 곳이 없다.

같이 걷던 골목길은 아무 일 없는 듯 여전히 그대로다.


바로 집 앞 어머니랑 시금치를 사던 채소가게다.

"남해시금치 맛난 걸로 한 봉지 줘"

"아이고 딸인갑네?"

"아니 우리 며느리"

"시어매랑 며느리가 자그마니 닮았네 닮았어"

낀 팔짱을 더 당기며 날 보시던 어머니 눈이 웃고 있었다.


시금치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어머니랑 걸었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주전부리할 게 없다며 늘 군밤을 사주셨다.

골목을 꺾어나가 도로변으로 가면 뻥튀기집 앞 졸졸이 놓인 소쿠리가 보였다.

노릇노릇하니 잘 구워진 군밤이 소복이 담겨있었다.

"우리 애들 먹일 군밤 좀 주소"

"아이고 손주들 왔나 보네 그람 더 줘야지"

굵다란 밤 몇 개를 잡아 봉지에 더 넣어 주셨다

"이것도 같이 담아줘"

옆에 있는 강정 두 봉지도 손에 잡으셨다.


걸어 걸어 옆 골목으로 꺾었다. 다닥다닥 붙은 생선가게들을 지나 자그마한 가게 앞에 섰다.

고등어, 갈치, 명태, 오징어가 자판에 깔려있었고 그 틈에 노르스름한 조기가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도톰한 조기가 참하게 보였다.

"이거 한 소쿠리 아니 두 소쿠리 담아봐"

"이거 비싼데"

"비싸 봤자 우리 손주보다 비쌀라고"

"손주들왔다고 할매가 신났구먼 자 몇 마리 더 주게"

덤으로 생선 몇 마리도 더 얻었다.


맞은편 가게를 지나 다시 골목길로 들어갔다. 집으로 가는가 했더니 발걸음을 또 멈추셨다.

"겨울초 들어왔나?"

"새벽에 들어와서 싱싱한 거 있지 주까?"

"한 박스 줘봐. 애들이 된장국을 얼마나 잘 먹는지..."

수북수북 담은 봉지 두 개가 손에 들렸다. 그러고서야 집으로 가셨다.


어머닌 신이 난 게 맞았다. 손주들 오면 해먹이고 싶은 게 많아 들썩들썩 가만 계시질 못하셨다. 생선 굽고 나물 볶고 국 끓이느라 보글보글 냄비가 신났고 또각또각 무를 서는 도마가 신났다. 간 맞추는 숟가락이 신났고 밥솥에선 추돌아가는 소리마저도 신났다. 여차하면 어깨춤까지 나올 거 같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신나게 하던 골목이었다. 먹을 것 잔뜩 담은 장바구니를 신나게 들고 다니시던 골목이었다.


그 골목길을 이젠 혼자 서본다.

그날 밤 어머니가 서 계시던 그 자리에 서본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이렇게 보고 계셨구나.

손 흔들며 보내는 마음이 허전하셨겠구나.

뒷모습마저 사라진 텅 빈 골목을 볼 땐 서운하셨겠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이 쓸쓸하셨겠구나.

어둑한 골목길 너머 어머니 모습이 희미해온다.


골목을 바라본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까, 그날의 모습이 어제처럼 선명하고 깨끗하다.

걷던 걸음마다 돌아보고 어여가라 손 흔들던 이별은 길게 늘어선 가로등 길처럼 오래오래 이어졌다.

그러다 이내 꿈처럼 몽롱하게 멀어진다. 난 안타까이 기억을 더듬어 저 구석에서 그날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들춰본다. 가로등 불이 내려앉은 골목은 조용하고 소리 없는 기억만 가득하다.

저 속에서 한때 다정했던 어머니와 나의 뒷모습이 섞여 들리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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